홍석만의 Not Today.
홍석만의 Not Today.

‘공정’이라는 귀신이 한국을 떠돌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의 정규직 전환(인국공 논란)이나 최근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파업까지. 비정규직 노동자가 시험 등 공정한 경쟁 없이 정규직이 되면 MZ세대의 신규채용 축소로 공정의 가치 훼손되고, 임금상승으로 공단의 재정적자가 늘어 국민 부담이 커져 공정하지 못하다며 비판한다.

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정년 연장 투쟁에 대해서는 노년 노동자의 정년 연장은 청년의 신규고용을 가로막고 MZ세대 노동자의 임금을 억제하는 수단이 된다며 반대한다. 반면, 임금피크제에 대해서는 노년 노동자가 청년노동자의 임금을 ‘갈취’하는 현재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며 ‘공정’을 위해 어서 빨리 도입하라고 하고, 임금체계도 성과와 능력에 따라 분배되는 직무급제가 ‘공정’하다며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SK이노베이션, 삼성전자, KT, 네이버 등 대기업의 성과급 분배 문제도 MZ세대의 ‘공정’ 문제로 관철하고 있다.

MZ세대의 이른바 ‘공정’ 담론은 여성의 군입대 의무화 요구와 이주노동자들의 취업 조건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은 능력주의와 공정성에 기초한 MZ세대 특히 이대남의 정치적 결집으로 이루어졌다며 MZ세대 정치세력화의 표상으로 보기도 한다.

자유시장 질서와 공정

이 공정이라는 귀신은 ‘기회의 공정’이며 ‘과정의 공정’이다. 취업에서는 '시험과 스펙'만이 ‘공정’이며, 이를 왜곡하는 모든 조건은 불공정하다. 부정한 방법으로 시험을 보거나 스펙을 조작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결과를 왜곡하기 때문에 불공정한 것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외주화된 비정규직이라도 시험 없이 정규직이 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기 때문에 불공정하다. 이처럼 ‘시험과 스펙’이라는 능력, 그 능력을 보여줄 기회의 공정이 바로 실체다. 그런데, 이런 능력주의, 기회의 공정이 과연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하는 점은 별개의 문제다. ‘시험과 스펙’이라는 능력주의가 공정한지, 시험을 잘 보고 좋은 스펙을 쉽게 잘 딸 수 있는 여러 조건과 능력의 차이가 과연 공정한가 하는 점은 전혀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능력 위주 사회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을 떠들어도, 그들이 진정으로 보상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은 기여한 내용이나 업적이다. 노동윤리를 갖는 게 노력의 결과든 아니든, 우리가 기여한 것들은 어느 정도는 공을 내세울 수 없는 타고난 재능에서 나온다”라고 강조한다. 여기에는 타고난 재능이란 신체적, 유전적인 재능뿐 아니라 부모의 경제적 조건도 타고난 재능이 된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했던 대통령의 비선 실세를 엄마로 두었던 전직 승마 선수의 일갈처럼 말이다.

능력주의, 기회의 공정에는 부모의 재력조차 타고난 재능과 같아서 공정의 가치를 훼손하는 조건이 아니다. 인국공 논란처럼 비정규직이 시험이나 스펙을 쌓지 않고 정규직이 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자녀들이 부모의 재력에 힘입어 해외 유학과 고학력, 외국계 기업 경력 등 일반인들은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엄청난 스펙을 갖고 시험도 보지 않고(공채도 아닌 수시모집으로) 그룹에 입사해도 타고난 능력, 개인의 재능 또는 노력으로 인정된다. 이것은 불공정이 아니라 ‘부러우면 지는’ 공정의 조건이다.

신자유주의 시조로서 자유 시장경제를 부르짖은 밀턴 프리드먼은 부유한 가정에서 유수의 학교에 다닌 학생은 그보다 못한 환경에서 자란 학생보다 불공평한 혜택을 누린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불공평은 수정할 문제가 아니라, 이를 인정하고 불공평과 더불어 사는 법을 터득해 그 결과의 이익을 즐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하마드 알리가 위대한 권투선수가 될 수 있는 기술을 타고났다는 사실은 결코 공평치 못하며, 무하마드 알리가 하룻밤에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능력을 갖췄다는 사실도 분명 공평치 못하다. 하지만 알리가 하룻밤 경기에서 벌 수 있는 돈이 비숙련 노동으로 벌 수 있는 돈보다 많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알리를 보며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불공평한 일이 아니겠는가.” 밀턴 프리드먼이 <선택할 자유>에서 주창한 것이 바로 이런 자유시장의 불공평한 ‘공정’이고 이것이 시장적 ‘정의’다.

그러므로 ‘기회의 공정’이란 (노동)시장의 불평등한 조건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전제되어 있고 그 때문에 ‘(자유)시장주의 공정’이 된다. 이런 ‘시장주의 공정’에 따르면, 시장에서 능력에 따른 주택 공급이 아니라, 정부가 특정 계층을 상대로 공공임대주택을 짓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 아파트 청약 조건에 한 부모, 청소년 가장,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 등을 우대하고, 신혼부부나 다자녀 가구 등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은 모두 공정성을 훼손하는 이유가 된다. 이것들은 내가 아파트를 살 공정한 기회를 빼앗는 불공정하고 불의한 조건들이다. 또한 대학 입시에서 소수집단 우대정책이나 사회배려자 전형 때문에 다수의 학생은 대학에 들어갈 공정한 기회가 박탈되었고 소수 특수계층의 학생들은 특혜를 받았다며 이를 폐지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외주화된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면, 시험이라는 공정한 시장경쟁을 거치지 않아 다른 취준생들의 취업 기회를 빼앗기기 때문에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공정, 과잉대표와 왜곡

최근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제기된 문제들은 대부분 공기업, 대기업의 취업 및 임금 조건과 관련된다. MZ세대의 보편적인 취업이나 노동 현실에 비하면 이런 문제들은 작고 특수한 문제에 속한다. MZ세대의 보편적인 노동문제는 공기업이나 대기업의 취업 경쟁 문제가 아니다. 청년 고용률 자체가 줄어 실업이 만연하고 있고, 구의역 사건의 김 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평택항의 이선호가 웅변해 주듯이 MZ세대의 노동 현실은 비정규직, 저임금, 불안정 노동으로 집약된다. 심지어 인국공 논란에서 인천국제공항 보안요원들은 대부분 MZ세대들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MZ세대다. 다시 말하면,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은 MZ세대의 보편적인 노동문제를 ‘공정’ 문제로 호도해 이를 ‘노노갈등’으로 만들어 버렸다.

정년 연장이나 임금피크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가족 간 상호부조 성격을 지닌 ‘가구 간 이전지출’은 2016년 4.61%로 하락했으나 이후 계속 상승해 2019년 5.86%까지 크게 상승했다. 이는 친족 간 금전적 의존도가 2016년 이후 급속히 확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청년 중심의 1인 가구의 폭발적 증가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의 생활비는 부모 세대로부터 상당수 이전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 구조에서 정년이 축소되고 임금피크제가 확대해 노년 노동자인 부모 세대의 임금소득이 줄면, 청년 1인 가구 또는, 가구 내 청년들의 (이전)소득이 줄게 된다. 간단히 말하면, 청년 임금을 늘리기 위해 노년 노동자의 정년을 축소하고 임금피크제를 확대하는 것은 ‘윗돌을 빼서 다시 아랫돌로 괴는 일’이 된다.

노년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으로 청년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도모하는 것은 ‘공정’이 아니라 ‘조삼모사’식 대응일 뿐이다. MZ세대의 임금소득 감소는 노년 노동자가 임금을 많이 받아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신규노동자들의 임금 하방이 지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도 MZ세대의 ‘공정’을 앞세워 ‘세대 갈등’ 문제로 바꿔 버렸다. 똑같은 방식으로 군 입대 문제를 ‘젠더 갈등’으로 만들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현재 제기되는 ‘공정’ 문제는 모두 ‘사장님들’이 바라는 일만 골라서 회자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반대, 임금피크제 의무화, 정년 연장 반대, 직무급제 확산 등 자본의 요구를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MZ세대의 입을 빌려 제기하고 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도 여기에서 공정이 시장경쟁의 공정이며, 임금 총액을 늘리는 게 아니라 주어진(정해진) 임금을 나눠 갖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세대갈등, 젠더갈등, 노노갈등으로 피상 되지만 이 문제들은 다분히 계급적이다.

(여러 공정 요구 중에 그나마 대기업의 성과급 확대 요구가 임금 총액을 늘리는 문제이기는 하다. 그런데, 여기서도 대기업의 성과급(초과이윤)을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분배하는 것이 ‘공정’이라는 것이다. 대기업 특히 재벌기업의 성과는 재벌기업 자체만이 아니라 대규모 국가의 자원과 지원이 동반된 사회적인 성과이며, 이 성과(급)는 대기업으로서 특히 ‘독점이윤’의 성격인 초과이윤이다. 그런데, 이런 대기업 독점이윤의 분배에 주주나 자본가를 넘어서 정규직까지만 참여하는 것이 ‘공정’인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독점이윤은 사회화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공정이고 정의일 것이다.)

이처럼 시장주의 ‘공정’론은 MZ세대를 과잉대표하고 있고, 관계를 왜곡하고 있다.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과 같은 MZ세대의 노동 현실 외에도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다양한 성폭력, MZ세대 특히 20대 여성의 자살 시도율의 폭증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위기, 코로나 위기 속에서 자녀가 있는 MZ세대의 자녀 돌봄과 여성 실업 문제 등은 시장주의 공정론이 제기하는 문제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문제임에도 MZ세대의 주요 문제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언론은 이런 문제들은 도외시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반대’ 청와대 국민청원만 대서특필하고 있다.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있겠냐만, 똑같은 20대 대학생의 죽음인데 한강에서 술 마시다 숨진 대학생의 사망 원인과 경찰 수사에 대해서는 생중계하듯 실시간으로 매일 수백 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반면, 평택항에서 비정규직으로 작업하던 대학생이자 20대인 이선호 씨의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몇 줄 단신으로밖에는 다루지 않았다. 죽음의 원인과 책임을 묻는 데에 대해서도 앞선 사건에서는 경찰 수사의 공정성까지도 제기됐지만, 평택항 사건에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상 경영자 책임의 적절성 또는 공정성은커녕 오히려 이 법이 과도하게 기업을 규제하고 있다고 지적했을 뿐이다.

시장의 공정을 넘어 노동의 정의를

하지만 언론이 아무리 떠들어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과잉대표든 과소대표든 어쨌든 대표할 수가 없다. 문제는 이런 시장주의 공정론을 MZ세대들도 일정 부분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에 있다. 기회의 공정, 시장주의 공정의 전제는 앞서 얘기와 같이 불공평하고 불평등한 시장경쟁 조건에 대한 인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 현재로는 신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긍정이 전제된다. 즉, 지금의 MZ세대는 신자유주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보다 더 강하게 긍정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 위기를 거치면서 MZ세대 주요 특징의 하나로 ‘자본주의화’를 꼽을 정도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MZ세대들은 경제위기와 빈곤, 성 차별, 환경 파괴의 원인을 ‘체제(system)’에서 찾았고, 주류질서인 신자유주의에 저항했다. 미국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2011년 월스트리트 점령운동(OWS)이 미국 내외에서 벌어졌고, 튀니지를 필두로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빈곤과 독재에 맞선 투쟁이 계속됐다.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Indignados) 운동에 이어 포데모스의 등장, 이탈리아 오성운동당, 그리스 시리자 집권, MZ세대 풀뿌리 당원의 지지에 힘입은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 등장 등 유럽에서는 신자유주의 저항투쟁에 기반해 주로 사민주의 정당이 회복되고 확대해 나갔다. 중남미에서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브라질 등 핑크 타이드(Pink tide)가 휩쓸고 일어났다. 아시아에서는 2014년 타이완의 해바라기 운동, 홍콩의 우산 혁명, 2015년 일본의 안보법안 반대 시위, 2016년 한국의 촛불혁명까지. 또한, 멸종 저항으로 대표할 수 있는 환경정의 실현과 미투 운동으로 촉발되어 세계적으로 확대한 여성권과 성평등 투쟁까지, 정동하는 MZ세대의 신자유주의와 기성 체제에 대한 저항은 지속돼 왔다.

그러나 불평등과 곤궁한 경제적 현실을 극복하고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의 진전을 바랐던 MZ세대는 지난 10년간의 투쟁에서 제대로 된 성공을 경험하지 못했다.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에도 불구하고 이 저항들은 거의 대부분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왜곡되고 변질했다. 금융시장은 전혀 통제되지 않았고, 월가는 양적완화와 금융화를 앞세워 오히려 더 승승장구했다. ‘자본주의 4.0’, ‘따뜻한 자본주의’, ‘포용성장론’ 등 자본주의적 대안에 관한 이야기도 많았지만 이조차 전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생산성과 성장률은 더 떨어졌고 디지털 전환으로 직접적으로 일자리가 줄 거나 산업전환을 유발해 구조조정으로 일터에서 쫓겨났다. 그 대신 플랫폼이나 더 유연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만 늘어 노동조건은 더 불안정해졌고 임금은 줄어들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부로 표상되는 자유주의 주류정치세력(86세대)의 무능과 타락 속에서 MZ세대의 현실은 더 나아지지 못하고 후퇴만 거듭하자, 시장질서와 자본주의의 한계를 긍정하고 집단적, 진보적, 근본적 해결보다 개인주의적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시장주의 ‘공정’과 함께 공정의 실천적 결론이라 할 수 있는 ‘영끌과 빚투’는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문제를 극복할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등장했고, 과잉되고 왜곡됐지만 MZ세대의 요구를 대표하기 시작했다. 기성세대(?), 대기업 정규직 노년 노동자에 대한 청년들의 반발은 표면적으로는 임금 또는 임금자산의 축적 조건에 대한 차별을 문제 삼지만, 본질에서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대안을 보여주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기도 했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평생 빈곤하게 살아야 하는 처지를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한 반발임과 동시에 자본주의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행위가 영끌과 빚투다. 그리고 이 게임의 룰이 바로 ‘공정’이다.

애초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에는 두 가지 버전이 존재했다. 하나가 앞서 얘기한 좌파적, 진보적, 급진적 버전이고 두 번째가 반세계화(반중국), 반이민, 반노동, 반환경, 반여성 등 온갖 차별적 조건을 강화한 우익 포퓰리즘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영국 보수당을 예로 들 수 있다. 현재 MZ세대의 정치적 지향은 이 두 가지 길에서 점차 우경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MZ세대 우경화의 책임은 무능한 자유주의 세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진보적 대안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좌파, 사회주의, 노동진영에도 똑같이 주어진다.

공정, 영끌과 빚투로 나타나는 이런 시장자유주의적 경향도 현재의 사회, 경제적 조건을 보면 그리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기회의 공정을 확대하고 영끌과 빚투를 확대한다 하더라도 빈곤하고 곤궁한 MZ세대의 현실이 개선되기는 불가능하고 오히려 양극화만 더 심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전망을 상실했을 때 MZ세대가 우경화, 보수화, 자본주의화 하는 현재와 같이, 우익적인 전망조차 상실하면 (왼쪽으로 가기보다) 더 차별적 공격을 강화하고 오른쪽으로 몰려가 극우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 상황을 뒤바꿀 유일한 변수는 진보적, 노동자적 전망이 존재하는가, 이를 공유하고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는 지다. 기회의 공정 대신 ‘노동의 정의’를 세워가는 것이야말로 사실 매우 시급하고도 시대적인 요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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