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차별금지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이유는?

명숙의 인권프리즘
명숙의 인권프리즘

최근 교육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에서 금지사유에서 ‘학력을 이유로 한 차별’을 빼자는 의견을 내서 논란이 됐다. 한국 사회에서 학력은 노동영역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차별사유다. 오죽하면 보수정권이었던 이명박 정부 때도 학력차별금지가 나왔겠는가.

2010년 여당인 한나라당은 학력차별금지법안(김기현 의원 대표 발의)을 발의했다. 그 후에도 2016년 나경원 의원이 학력차별금지법안을 발의할 정도였다. 법안 취지에는 헌법 제11조 1항의 평등원칙과 국가인권위원회법과 고용정책기본법에 명시된 학력 또는 출신학교를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들었다. 학력차별을 받았을 경우에 구제할 방법과 차별을 한 사용자에 대한 처벌 규정도 있었다. 18대 김기현 의원 안이나 19대 국회 때인 2012년 홍영표의원안 모두 “사업주가 이를 위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하는 처벌규정까지 넣었다. 당시 대학진학률은 80% 안팎인 현실에서 고학력 실업자만 양산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2007년 학력별 임금격차는 고졸을 100으로 할 때 전문대졸 106.3, 대졸 154.4에 이르다보니 대학에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도 ‘모든 공공기관의 채용과 승진에서 학력요건을 폐지하거나 완화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2011년 신속한 의결을 촉구하는 여론 때문에 황우여 당시 국회의장도 학력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했다. 물론 민주당에서도 김한길의원안 외에도 김해영 의원의 대표발의안인 공공기관 학력차별금지법안도 발의했다. 학력·학벌 지상주의의 극복은 이미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분야였다.

학력차별의 문제의식까지 잠식해버린 공정담론

이러한 문제의식은 20대 국회까지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에는 ‘학력·학벌주의 관행 철폐’를 국정 과제로 제출하고 블라인드 채용 등을 권고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21대 국회에서는 학력차별금지법이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최근 노동 분야에서 ‘차별적 공정담론’이 우세하다고 보아서인지 입을 꾹 닫고 있었다. 급기야 최근 교육부에서 학력차별은 합리적 차별이라고 정당화하는 퇴행적인 입장을 내기에 이른 것이다.

이는 교육부가 낸 의견에서 알 수 있다. 교육부는 “(학력은) 성, 장애처럼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했다. 이른바 ‘능력주의 공정담론’의 입장인 것이다. 논거 부족에 대한 여론이 세서인지 교육부는 ‘검토’로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을 완전히 철회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때와 지금 태도가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 학력차별의 내용이나 대상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김기현 의원의 안에서는 “학력차별이란 합리적인 이유 없이 학력을 이유로 고용, 국가자격 등의 부여, 직업교육훈련 및 법령과 정책의 집행의 영역에서 분리·구별·제한·배제 등에 의하여 불리하게 대하는 것을 말하며, 업무의 성격 또는 업무수행의 상황에 비추어 특정 학력이 해당 업무의 정상적인 수행을 위하여 불가결하게 요구되는 경우나 현존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하여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경우에는 이를 학력차별로 보지 아니함”이라고 정의하였다. 2016년 나경원 의원 안에서도 “모집·채용 과정에서 업무의 정상적인 수행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합리적인 기준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여서는 아니 됨”이라고 채용과정에서의 차별이 포함됐다.

그렇다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노동시장의 변화다. 달라진 것은 비정규직 고용형태의 급증이다. 10년 동안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이에 따른 차별시정이 우리 사회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초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공약했던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고용으로 많은 이익을 본 기업주의 입장에서 학력차별을 없애자는 것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과 맞물린 것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기업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시에는 학력인플레로 인한 불합리시정, 즉 학력에 따른 차별이 시정돼야 노동시장이 합리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면, 지금은 합리적인 노동시장 개편으로 얻는 이익보다 블합리하더라도 비정규직 채용으로 얻는 이익이 크기 때문에 ‘학력차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기업주와 정부여당에게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차별적 공정담론이라는 든든한 이데올로기까지 생겨 둘러댈 핑계가 많아졌다.

연쇄적이고 교차적인 임금격차를 불러일으키는 학력차별

그러나 기업주의 이해에 따라 법의 취지가 왜곡되거나 바뀔 수는 없다. 학력차별금지법이나 최근 발의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법안발의 취지로 내건 헌법적 가치인 평등권은 장식용이 아니다. 누구나 평등하게 존중받고 공부하고 일할 권리가 보장받아야 한다.

더구나 학력 차별은 노동시장에서의 단지 고용형태에 따른 임금격차만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문영만의 <기업과 중소기업 임금격차 및 결정요인> 논문에 따르면, 기업 규모별 임금격차에서도 학력의 차이가 크다. 임금격차 때문에 좋은 인재들이 대기업으로 이직해버리는 경우가 많아 더 심해진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학력 및 학벌지상주의는 이렇게 노동자들의 격차를 심화시키고 왜곡시키는데 그치지 않는다. 고학력, 좋은 학벌을 위해 무한 경쟁과 대학입시과열과 청소년인권침해까지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 문제는 드라마 ‘SKY캐슬’에서 드러나듯, 학력과 학벌은 불법과 편법을 낳을 뿐 아니라 계급세습, 신분화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교육부는 학력이 “개인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표준화된 지표”라는 신화를 내세우며 과도한 규제라고 말하며 차별금지 사유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앞서 말했듯이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여전히 학력 간 임금격차가 여전히 높고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학력차별 보다 기업규모의 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8년 이후 구조조정으로 외주화와 하도급이 급증하고, 이로 인해 원청·대기업의 영업이익과 그곳에서 일하는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은 증가하는데 반해, 중소기업과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소득은 제자리다. 즉 학력차별 시정과 함께 중소기업·하청기업 임금인상을 포함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즉, 학력차별 금지와 함께 기업규모별 임금차별 시정이 필요하다. 같은 일을 해도 중소기업이냐, 대기업이냐에 따라 임금차이가 크다. 최근 중대재해처벌법이나 대체휴무일제도에서 확인됐듯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겪는 제도화된 차별은 임금만이 아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국내외인권기준을 지킬 수 없는 노동시장에서의 차별의 요소가 이렇게 복합적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다양한 차별 사유에 의한 교차하는 복합차별을 시정하기 위해서 필요한 법이다. 이제 노동자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 서야 할 때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