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전환에서 공동결정이라는 착각

홍석만의 Not Today.
홍석만의 Not Today.

국가 주도 친기업적 산업전환 : ‘투자 혹은 손실의 사회화’

코로나 위기, 기후 위기 및 디지털 전환에 따른 산업 전환과 구조조정이 몰려오고 있다. 코로나 위기를 거치면서 더욱 낮아진 시중금리로 기업을 연명하던 기업들과 과잉투자, 과잉경쟁, 과잉생산으로 생산성을 회복하지 못한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코앞에 몰려 있다. 또한 2030년까지 탄소 중립을 위한 탈 탄소 전환과 디지털 전환 속에서 산업 전환이 급속화하고 이에 따른 각 방면의 일자리 위기도 시시각각 닥쳐오고 있다.

이런 산업전환은 개별 기업의 구조조정을 포함하지만, 일반적인 기업구조조정과는 그 질이나 양상을 달리한다.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나 탈 탄소 전환은 개별 (산업)자본이 아니라 국가 차원으로 정부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정부는 한국판 뉴딜에 이어 한국판 뉴딜 2.0을 발표하며 “위기 극복을 넘어 경제‧사회 구조 대전환 과정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한국판 뉴딜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25년까지 인프라 등에 220조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하고 뉴딜로 창출되는 직‧간접적 일자리 수가 250만개가 될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의 경우 바이든 행정부의 3조5천억 달러(4,000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계획을 제출하며 산업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이미 국가 주도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는 중국도 지난 3월 ‘국민경제 및 사회발전 제14차 5개년 규획(2021~2025년)에서 사회 전체 R&D 투입 비용을 연평균 7% 이상씩 늘려 산업별 핵심기술의 업그레이드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도 2,650억유로(3,549조원) 규모의 경제회복기금(Recovery and Resilience Facility)을 마련해 녹색경제 전환과 디지털 전환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산업전환에서는 이윤이 없거나 (매몰)비용이 많이 들어 시장성이 없어 민간투자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민간 자본을 대신해 인프라 등 국가투자를 통해 시장을 형성하고 확대해 나간다. 이처럼 산업전환에는 투자의 사회화가 선행되는데, 그 목적은 ‘시장형성’이며 민간자본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국가투자로 대체해 비용을 낮추고 이윤(율)을 개선해 시장형성을 촉진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때의 국가투자 또는 정부 보조금은 ‘시장의 마중물’이며, 이를 ‘자본주의적, 시장적 투자의 사회화’라 할 수 있다(이와 반대로, 생산의 공적 공급과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위한 국가투자를 ‘사회적 투자의 사회화’라고 할 수 있다). 민간자본의 축적(1인당 자본축적률)이 낮은 저(低)개발국이나 수요만큼의 이윤이 나지 않아 시장이 형성되지 못한 영역, 대형 장치산업이나 중화학공업처럼 설비나 인프라 투자비용이 매우 높은 영역 그리고 산업 전환 국면 또는 경제위기(구조위기) 시에 이런 (시장적) 투자의 사회화가 일어난다.

당장 전기차 보조금이 중단되면 수요가 감소해 전기차 생산에 차질이 발생한다. 전기차 생산가격이 시장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보조금이 없으면 전기차 생산이 중단되거나 생산가격이 더 내려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전기차로의 전환은 그만큼 늦어진다. 각종 인프라 투자도 마찬가지다. 수소차나 전기차 수요에는 꼭 필요하지만, 상업적인 이윤이 현재 거의 없는 인프라,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는 민간기업에서는 일종의 추가적인 ‘비용’이다. 이런 높은 비용 때문에 생산단가 즉, 이윤이 남지 않아 투자하지 않고 그 때문에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생산할 수 없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프라 비용이 충분히 낮아져 생산이 가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또한 ‘손실의 사회화’와 같이 산업전환에 따른 각종 비용과 폐업 등 매몰 비용을 국가가 전적으로 부담하며, 산업전환에 따른 민간자본의 비용부담을 완화하여 전환을 돕는다. 민간자본이 부담해야 할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여 투자의 사회화를 통해 ‘손실의 사회화’로 전환된 형태이므로 이러한 산업전환을 ‘친기업적 산업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한국판 뉴딜사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듯이 재벌 독점기업 중심으로 구산업 독점에서 신산업 독점으로 이어주는 산업전환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친재벌 독점적 산업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산업전환의 많은 부분은 비시장 영역에서 시장영역으로의 전환이기 때문에 초기 국가투자를 통해 시장의 기초를 닦을 뿐만 아니라 시장화를 위한 제도의 설계에 따라 시장성이 결정된다. 당장 정부의 한국판 뉴딜 사업을 보더라도, 디지털 전환과 그린뉴딜의 제도적 설계에 따라 규제의 방향과 기술발전의 방향이 결정되고, 정부가 주요 인프라 등 초기투자나 정부 보조금이 주어지지 않으면 산업전환이든, 디지털 전환이든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타다’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타다의 운행방식(렌터카의 운전기사 제공)을 불법으로 규정했고 국회는 여객운송법을 고쳐(타다 금지법) 아예 타다식 운행을 못 하게 만들었다. 반면, 카카오T는 지난해 3월 ‘타다 금지법’ 통과 이후 택시 기사를 상대로 택시 호출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다. 가입자 수 2800만명, 전국 택시 기사 25만명 가운데 23만명이 이용하고 있는 카카오T의 시장 점유율은 89.4%에 이른다. 정부가 카카오T 플랫폼의 운행을 그대로 용인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다른 예로 카카오뱅크를 들 수 있다. 기존 은행은 금산분리가 어느 정도 관철돼 산업자본의 은행소유가 제한되지만, 인터넷 은행법에는 금산분리가 해제되어 산업자본인 카카오가 인터넷 은행인 카카오뱅크의 대주주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카카오는 플랫폼 네트워크 기반 회사의 장점을 살려 기존 은행을 능가하며 빠른 속도로 금융 플랫폼을 장악해 들어가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상장 하루 만에 시가총액이 40조원이 넘어 대형 금융지주회사들의 시총을 넘겨 금융대장주로 등극했다.

친기업적 녹색·산업 전환과 공동결정

금속노조는 산업전환에 따른 대응을 ‘희생과 파괴 없는 노동참여 산업전환’으로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산업전환협약, 공동결정법 도입, 산별교섭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협약의 핵심 내용은 노사가 공동 결정을 통해 산업전환 대응 계획을 함께 설계한다는 것이며, 공동 결정할 의제는 고용안정 및 양질의 일자리 확보, 교육·훈련, 노동안전 및 인권보호, 기후위기 대응, 공정거래 등이라고 밝혔다.

금속노조는 산별교섭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교섭권을 확보한다는 의미 또는 산업전환에서 자본과 대등한 주체가 된다는 의미로 이런 대응계획을 제시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런 공동결정, 산별협약 등 노조가 자본과 대등한 위치로 올라서기 위한 이런 계획은 기업 단위 구조조정이나 일상적 노사관계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몰라도 산업전환에서는 사실 별 의미도 없을뿐더러 거의 힘을 갖지 못한다. 앞서 얘기대로 국가투자와 제도에 따라 산업전환의 방향과 시장성이 결정되기 때문에 개별 자본도 산업전환의 결정 주체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수용의 대상이 된다. 기업 구조조정에서도 사업전환이나 재배치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채권단 관리 또는 법정관리에 들어갈 상황이라면 이때에도 기업의 경영권이나 소유권 자체가 구조조정 대상으로 올라와 있기 때문에 개별 자본은 구조조정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자본은 노동자와 같은 위치에 나란히 선다.

물론 재벌과 같은 대자본은 국가 정책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산업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전환의 방향을 자신 위주로, 대자본 중심으로 재편하는 것을 당연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여전히 대자본은 국가의 독점적인 지원을 받고 산업전환을 수용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이때 자본은 정부의 정책을 수용할 뿐만 아니라 정부에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자본과 동일 선상에 선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가령, 화력발전소와 원전 설비 중심이었던 두산중공업(두산그룹)은 신재생에너지, 풍력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해야 했다. 여기에 두산그룹은 경영진의 오판으로 총체적인 재무위기를 맞아 3조원대의 공적자금을 받았고 이를 갚기 위해 자구책도 마련해야 했다. 두산그룹은 핵심인 두산중공업을 살리기 위해 산하 계열사를 매각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가장 알짜 기업으로 알려진 두산인프라코어를 현대중공업지주-KDB인베스트먼트(KDBI) 컨소시엄에 매각했다. (이 매각도 기막힌 것이, 산업은행이 자신에 빚진 돈을 갚으라고 산업은행(KDBI는 산업은행의 100% 자회사다)의 돈을 두산중공업에 주고-정확히 말하면 그냥 빚을 까고- 두산인프라코어는 현대중공업에 안겨준 셈이다.)

아무튼, 두산그룹의 재무위기는 물론 탈탄소-탈원전 전환도 정부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는데, 정부는 그린뉴딜 사업의 해상풍력발전에서 두산중공업이 온전히 수혜를 입도록 만들었다. 그럼에도 재무위기에서 비롯된 구조조정은 탈탄소-탈원전의 대안으로 마련된 그린뉴딜의 수혜로도 일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신재생에너지와 해상풍력 발전사업을 유치하더라도 당장 중단된 일자리를 단기간에 채울 수 없었고,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관련 일자리의 규모도 전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산그룹은 재무위기 하에서 계속 산하 계열사를 매각했고, 두산중공업의 인력 구조조정도 지속했다.

재무위기 때문에 정부의 대규모 자금지원을 받은 두산그룹 자본은 탈원전에 대놓고 저항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자본과 노동조합의 위치와 이해는 일치했기 때문에 결국 노동조합이 나섰다. 애초 두산중공업 노조도 구조조정의 책임을 잘못된 경영 문제로 보았고,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찬성했다. 그러나 재무위기가 지속하면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끊이지 않고 그린뉴딜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고용보장이 이루어지지 않자 태도를 바꾸었다. 그렇게 두산중공업 노조를 비롯한 원전 관련 기업 노동조합은 기업 위기와 고용불안의 책임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돌리며 탈원전에 저항하고 있다. 원전 관련 자본이 탈원전에 저항하는 것과 같다.

한편, 이런 모습은 대기업 구조조정의 최종 국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최종 결정권이 채권단, 주로 산업은행, 정부에 있기 때문에 사측이 매각과 인력감축 등 자구안을 마련하면 마지막에는 ‘노조 동의서’, ‘무파업-무쟁의 각서’를 받아 오라고 압박한다. 실로 노동조합이 자본과 함께 구조조정의 공동주체로 나서게 되는 순간이지만, ‘공동결정’이라기보다는 ‘공동수용’의 주체가 된다. 그래서 이 경우도 위기가 찾아오면 산업은행 앞에서 노동조합은 자본가와 똑같은 요구를 한다. “정부는 긴급 자금을 조속히 지원하라.” 이처럼 공동결정제를 시행하지 않더라도 이 국면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는 같은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똑같이 정부에 요구한다. 이제 자본은 뒷짐을 지고 노동조합의 대정부 투쟁을 그윽하게 바라본다.

산업전환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금속노조는 노동참여 산업전환을 ‘정의로운 산업전환’이라 부르고, ‘정의로운’ 이유로 기후위기와 산업전환의 피해자로서 노동의 주체적 참여와 사회공공성 또는 원하청 수평적 관계와 공정거래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의’에 대한 의미를 축소하거나 왜곡한 것이다. 무엇보다 ‘정의’라고 하는 것은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의 핵심은 기후위기 피해 당사자들의 주체화만이 아니라 기후위기의 책임을 묻는 것이기 때문에 ‘정의로운’ 전환이 되는 것이다. 특히 기후위기를 가중시킨 개인, 기업에 그 책임을 묻고 전환비용을 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기업 기후악당들이 여태껏 지구의 기후를 악화시키며 벌어들인 수익은 무시하고 현재의 위기를 빌미로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고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산업전환에서 투자의 사회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기업 친화적 산업전환’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로운 산업전환’이 말하는 대기업과 하청의 수평적 관계 또는 대기업 독점시장에서 경쟁적, 과점적 시장으로 만드는 것은 ‘정의로운’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이다. 원하청 수평적 관계 이전에 기후악당인 독점 대기업과 자본이 져야 할 책임을 지는 것, 그게 ‘정의’다.

금속노조는 지난 7월 22일 ‘노동자 참여 빠진 반쪽짜리 정부 대안’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미래차 시장 선점을 위해 정부가 대기업에 막대한 지원을 하는 만큼, 공정한 노동전환과 배치되는 이 같은 대기업의 행태를 바로잡고 부품사의 공정한 노동전환에 대한 대기업 역할을 강제할 장치가 필요하다”며, “당장은 어렵더라도 자동차산업의 독점 구조를 해체 또는 완화하는 기조의 대책이 연동돼야 노동전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기존 독점구조를 사실상 용인하면서 수평적 관계 또는 ‘공정거래’를 강조하는 것으로 대기업의 책임을 대신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

또한 정의로운 산업전환에서 정의로운 것의 하나로 강조한 ‘사회공공성’은 원하청 수평적 관계와 같은 산업민주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의 공적, 사회적 성격을 확대하는 것이다. 가령, 의료의 공공성은 의료 서비스 공급의 공적 성격을 강화하는 것을 말한다. 산업전환에서 사회공공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산업전환을 통해 생산(서비스 공급)의 사회적, 공적 성격을 더 확대하는 것으로 독점이윤의 사회적 분배에서 나아가 최종적으로 사회화나 공적 공급(생산)체계를 구성하는 데 있다. 만약 상생기금이나 공정거래 심지어 투명한 지배구조 같은 것이 사회공공성이라면 현재 기업이 주창하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야말로 기업의 사회공헌을 넘어 사회공공성의 확보라고 해야 하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녹색·산업전환에서 대기업과 자본의 책임을 묻지 않고, 생산의 사회화와 공적 공급의 확대라는 사회공공성의 의미를 확보하지 않고, 수평적 관계, 공정거래에 대한 미래의 약속(협약)을 ‘정의’로 보면 안 된다. 이런 태도는 산업전환에서 실제 짊어져야 할 기업의 책임을 회피하게 만들어 ‘친기업적 산업전환’을 수용하는 것으로 결말이 날 수 있다.

독일 탈석탄 (산업)전환의 교훈과 문제점

공동결정제도의 교범으로 삼고 있는 독일에서조차 현재의 녹색·산업전환은 노사 간 또는 산업간 협약이나 공동결정 수준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독일 연방정부는 2018년에 에너지 분야의 탈탄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성장 구조변화 고용 위원회’(이하, 탈석탄위원회)를 설립했다. 독일의 주요 정당과 사용자단체, 학계, 노동조합, 환경단체, 갈탄산업 지역 정치·시민사회·경제 대표로 구성된 탈석탄위원회는 독일의 탈석탄화 및 이와 관련된 구조 변화의 실현을 위한 계획을 6개월 이상 협의해서 권고안을 합의했다. 석탄화력발전소 운영이 중지되는 지역에 2038년까지 53조원을 투입해 고용과 생활안정을 도모하고, 각 석탄발전소 운영 및 폐지 계획, 정부지원 등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탈석탄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석탄화력발전의 점진적인 감축 및 단계적 폐지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탈석탄법안을 만들었고 이 탈석탄법은 지난해 의회를 통과했다.

이 같은 독일의 탈석탄 계획수립 과정은 노사 공동결정 구조를 뛰어넘는 이해당사자들의 합의로 평화적이고 원만한 산업전환 계획이자 과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계획은 탈석탄 목표의 뒤늦고도 미흡한 계획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탈석탄 비용을 국가에 책임을 지운 ‘손실의 사회화’라는 점에서 큰 문제를 갖고 있다. 이 탈석탄 계획은 탈석탄위원회가 6개월여 논의한 후 갑자기 짠하고 내놓은 결론이 아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이어 온 석탄산업 구조조정의 최종 단계로서, 무려 60년 동안 이어온 논의의 최종적인 결론이다. 게다가 지난 60년과 마찬가지로 반환경 사업으로 이미 전환했어야 할 기업을 정부 보조금으로 계속 연명케 해 결국 최종 전환비용도 국가가 부담하게 한 것이다. 그 결과 독일의 탈석탄 계획은 유럽에서도 가장 늦고 뒤처지게 됐다. 독일의 탈석탄은 2038년이지만, 유럽 19개 국가는 2030년 이전 탈석탄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미국도 2035년까지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전력부문의 탈탄소화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독일의 탈석탄 모델의 배경에는 한국판 뉴딜이 사고하는 것과 같이 독점기업 중심의 ‘기업 친화적 녹색성장론’이 자리 잡고 있다. 가격 보조를 통해 신산업의 시장 가격을 유지하거나, 반대로 구 산업, 탄소발생 산업의 가격 보조를 통해 사업을 지속시키고, 국가의 인프라 투자를 통해 전환비용을 낮춰 기존 독점 기업의 생산체계를 저비용 녹색전환 함으로써 신산업에서의 독점구조를 유지해 성장하는 것이다. 독일의 탈석탄 모델은 이를 그대로 따랐다. 그렇게 독일의 탈석탄 계획은 가장 늦고 뒤처졌을 뿐만 아니라, 높은 정부 보조금과 인프라 투자 등으로 기존 독점구조가 유지되면서 정부 보조금과 투자비용 때문에 에너지 가격도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 이 부담은 저소득, 빈곤 계층이 상대적으로 높은 전기가격으로 부담하게 된다.

녹색·산업전환, 정의롭게

녹색전환이든, 산업전환이든 지금은 국가의 경제개입이 전면화하고 있고 녹색전환과 산업전환을 국가가 나서서 지휘하고 있다. 이때 노동조합은 산업자본이나 개별 대자본에 대응도 중요하겠지만 주로 정부를 상대로 해야 한다. 특히 중소 조선소, 쌍용차와 같은 당면 구조조정 사업장, 대우차와 같은 구조조정이 곧 닥칠 사업장, 대우조선과 같은 산업은행 관리 하의 사업장, 전기차 전환으로 폐업 위기에 몰린 부품사 등은 다름 아닌 국가를 상대로 직접 투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가 이제껏 공기업이나 국유기업을 어떻게 운영하고 관리해 왔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발전시켜 가야 하는지도 알고 있어야 한다. 또한 자동차가 제조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진화하듯이 제조업의 서비스화에도 대응해야 한다. 그렇게 이제 공동결정은 자본과 하기보다는 바로 옆 금속노조, 그 옆의 공공운수노조와 서비스연맹 등과하고 노동조합 내부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가 동수로 공동결정하는 구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각 연맹 사업장별 운영의 차이와 현안이나 과제가 무엇인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서로 몰라도 너무 모르더라. 바빠서 그런지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산업전환 대응을 하려면, 이런 차이와 방식부터 알고 이를 넘어서는 대응이 필요하지 않을까? 가령, 대우조선이 일반적인 민간자본의 금속사업장이 아니라 (아직 매각이 완료되지 않았으므로) 산업은행이 대주주인 국유기업으로서 지금까지 이에 맞게 대응과 투쟁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이런 대응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그리고 산업전환 대응을 하기 위해서 다른 무엇보다도 금속과 공공, 서비스 사업장의 특징과 문제점, 현안과 과제 등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정리해 본다.)

그러므로 자본과 노조가 모여 앉아 결국 정부에 보조금이나 자금지원을 촉구하는 공동결정을 할 게 아니라, 당장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전환 비용을 기업과 자본에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정의로운 산업전환’의 첫걸음이다. 대기업에는 사내유보금, 경영진과 임원들에게는 성과급, 주주에게는 배당과 특별배당의 환수를, 대주주에게는 전환비용의 출연을 요구해야 한다(사내유보금은 직접 환수할 수 있고 그게 어렵다면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해서 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매년 수십조원씩 설비투자를 하고 있는데 모두 사내유보금에서 지출됐다. 또한 주주 배당을 직접 환수하는 것이 어려우면 환수액만큼의 신주를 발행해 자본금 형태로 환수할 수 있다. 환수 방법은 현재 무궁하다).

또한 전기차 등 저탄소 재화에 보조금을 주는 방식보다 내연기관차 등 탄소발생 산업과 제품에 탄소부담금을 강제하고 탄소가격을 높여 녹색과 산업전환의 비용을 마련하고 시장차원에서도 가격정책을 통해 조속히 전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이 비용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법인세 최고세율의 대폭 인상과 소득세 누진성 확대, 자본이득세와 보유세 확대 등 조세를 통한 마련도 촉구해야 한다.

녹색·산업전환은 자본의 입장에서도, 노동자의 입장에서도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하게 된다. 결국에는 이 비용을 누가 지불할 것인가의 문제인데, 대기업과 자본이 책임지지 않으면 국가가 책임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것은 결국 노동자와 서민들이 세금과 높은 이용료로 부담하게 된다.

따라서 산업전환협약도 자본이 아닌 노동조합을 포함한 기후위기와 산업전환의 피해당사자인 지역과 환경, 산업 주체들과 먼저 ‘정의롭게’ 협약을 맺고 정부와 자본의 책임을 묻기 위해 나서야 한다. 그러므로 고용안정이라는 현실적이고 구조적인 이유로 기존 대자본의 독점적 사업구조를 보장해주는 그런 합의기구, 논의기구가 아니라 녹색·산업전환의 사회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그럼으로써 고용이 보장되는 합의기구가 구성되어야 하고 노동조합이 이를 앞장서서 실천하는 것이 ‘정의로운 산업전환’의 구체적 형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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