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호의 88.2%
오진호의 88.2%

CCTV를 설치해 업무공간에 대해 지속적인 감시를 했습니다. 야근 시간에 제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도 언급하며 압박을 주었습니다. 잠시 쉰 것을 두고 CCTV 증거라며 시말서를 쓰라고 강요했습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다른 상사가 시말서 쓰게 해서 내보내려 한다고 얘기해줄 정도입니다.

학원에서 일합니다. 사무실 CCTV가 사무실 전체를 한 번에 감시할 수 있는 위치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원장님이 직원들의 근무 상태를 외부에서 CCTV로 확인하고 있다는 얘기를 지나가면서 언뜻 말하시더니, 이번엔 대놓고 CCTV앱의 스크린샷을 첨부하고 "일 안 하고 뭐하냐"라는 내용의 카톡을 보내왔습니다.

직장갑질119로 들어오는 CCTV갑질 사례를 보면 ‘감시’만 있는 경우는 한 건도 없다. 노동자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은 증거를 찾기 위해 CCTV를 돌려보고, 결국 트집을 잡아 징계한다. CCTV로 감시한 내용을 들이밀며, 폭언과 모욕적인 말을 뱉는다. 불법이 난무하는 회사가 CCTV까지 동원해 노동자를 괴롭힌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공공상생연대기금의 지원을 받아 2021년 8월 2일에 발간한 <디지털 노동감시 실태조사 및 법제도 개선방안>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6명(59.4%)이 직장에서 ‘CCTV’를 이용하여 작업장이나 생활공간 등을 촬영하고 있다‘고 답했다. CCTV와 관련한 안내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동의 절차가 없었다는 응답은 49.1%(‘아무 말 없었다’ 29.9%, ‘설치 후 설치 사실을 고지함’ 19.2%)였다. 직장인 10명 중 3명은 동의 없는 노동감시를 겪고 있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2.3%는 CCTV가 노동자를 관찰, 감독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응답했다. ‘불편’은 통제와 위축으로 이어진다. 디지털 전자기술 도입 후 ‘근무시간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었다’라는 응답은 11.6%, 업무량이 증가했다는 응답은 18.4%였으며, ‘회사나 상사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기 힘들어졌다’라는 응답도 14.4%였다.

개인정보보호법은 CCTV 설치요건을 제한적으로 두고 있다. 공개된 장소에 설치된 CCTV를 통해 노동감시가 이루어졌다면, 이는 개인정보보호법 제25조 제1항에서 한정한 경우 외의 목적으로 CCTV를 사용한 것에 해당하며, 법 제75조에 따라 5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 대상이다. 나아가 단순히 설치된 CCTV 영상을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임의로 CCTV를 조작하거나 다른 곳을 비추게 하고 녹음기능을 사용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이다.
비공개된 장소에 설치된 CCTV를 사용하여 ‘노동감시’를 하면서 사전에 ‘노동감시’ 목적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거나 ‘화재 예방, 시설 안전 등’ 목적으로 동의를 받았지만, 실제 ‘노동감시’를 하는 경우라면 이 또한 5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 대상이다.

문제는 ‘동의’다. 사무실과 같은 ‘비공개된 장소’에서의 노동감시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노동자의 동의만 있으면 된다. 어느 노동자가 회사의 동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을까. 개인정보보호법이 노사관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 노동관계법이 아니기 때문에 고용노동부의 감독·조사 권한이 미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근로기준법에 노동감시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신설될 필요가 있다.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노동부장관에게 권고한 내용 역시 이와 유사한 맥락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근로관계로 제약되는 사업장의 특성과 근로자의 권리침해 가능성”을 고려하여, “전자감시를 적극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별도의 법률을 마련하고, 근로기준법에 관련 내용을 신설하라 권고했다. 또한 정책적 조치로서 ▲전자감시에 의한 권리침해, 차별 등에 대하여 사업장 수준의 근로감독 강화 ▲전자감시에 대한 세부 준칙 또는 지침 마련 및 적극적 조치를 권고했다. 2007년에 나온 권고안인 만큼 현실에 맞게 수정될 필요는 있겠으나 전반적인 방향에 있어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볼 수 있다.

핸드폰 앱으로 24시간 감시도 가능한 시대. 기술은 선진국이지만 사업주의 인식은 후진국에 머물러 있고, 직장은 파놉티콘이 되어간다. 팔짱만 낀 채 방관하는 정부가 이제라도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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