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의 99%를 위한 노동안전보건
김정수의 99%를 위한 노동안전보건

민주노총과 고용노동부가 산재처리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합의하면서 지난 5 월 13일부터 7월 22일까지 71일간 지속된 민주노총의 농성투쟁이 마무리되었다. 고용노동부 는 이를 위해 인력 충원과 인프라 구축 방안을 마련하고, 산재처리 기간을 평균 172일에서 100일 이내로 단축하고, 근골격계질환은 내년까지 산재처리 기간을 평균 131일에서 45~60일 이내로 줄이기로 했다. 그동안 이로 인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늦어도 한 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고용노동부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하기로 한 것 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번 합의안에는 산재처리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몇 가지 실질적인 방안이 포함되었다. 특 별진찰 과정에서 업무 관련성이 확인되면 질병판정위에서 심의를 제외하고 신속하게 승인하도 록 산재보험법 시행규칙 제7조(판정위원회 심의에서 제외되는 질병)를 개정하기로 한 것이 대 표적인 것이다. 이 방안이 시행되면 근골격계질환 중 상당수가 심의에서 제외될 수 있을 것으 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 4년간 질병판정위에 참여했던 필자가 강력히 주장했던 것 중 하나이 다(“현직 질판위원이 본 산재처리 지연 개선 방안”, 노동과 세계, 2021.05.27).

재해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하면 사업주에게 이 사실을 공지하고 10일 이내 의견서를 제출하도 록 규정하고 있는 산재보험법 시행규칙 제20조(요양급여의 신청 등) 2항 뒷부분과 3항도 올해 안에 삭제하기로 했고, 부득이한 사유로 심의를 마칠 수 없으면 10일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한 차례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산재보험법 시행규칙 제8조(판정위원회 심의 절차) 2항 뒷부분도 삭제하기로 했다. 각각의 단축 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더라도 여러 방안들이 상승작용을 하면 상당한 기간 단축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산재처리 지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으로 노동계와 전문가들이 꾸준히 제기해 왔던 ‘선 보장 후 평가’를 위한 연구 용역을 내년에 착수하기로 했다. 실제 제도 도입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선 보장 후 평가’ 제도가 공식 의제가 되고 연구 용역까지 실시하기로 한 것 은 제도 도입을 위한 첫걸음으로 충분히 의미있는 조치로 판단된다.

고용노동부는 위와 같은 방안들을 제대로 실행하기 위해 인력 충원과 인프라 구축 방안을 마 련하기로 했다. 그런데 민주노총과 고용노동부의 합의가 알려지고 나서 며칠 되지 않아 기획 재정부가 2022년 정기증원 심사에서 고용노동부가 제출한 요구 인원을 거의 배정하지 않았다 는 소식이 전해졌다. 고용노동부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인력 확충 및 지역 판정위원회 추가 신설사업에 119명을 요구했는데 기획재정부는 겨우 20명을 배정했다고 한다. 민주노총과 고 용노동부의 합의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예전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종종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어떤 대접을 받 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산재처리 지연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 통을 알고 있는가? 이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는 도대체 무엇인가? 기획재정부는 이러한 결정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명확히 해명해야 할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원래 임무가 모든 정부 부처의 예산과 인력을 조정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발 물러서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이제 국정을 총괄하는 대 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정부 출범 당시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 지 산재 사고 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2017년 964명이던 산재사고 사망 자수는 2019년 855명으로 다소 주는 듯하더니 2020년 882명으로 다시 늘었다. 대통령의 공 약은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 약속을 지킬 수 없다면 산재처리 지연 문제라 도 제대로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시했 던 대통령의 진정성이 그나마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기획재정부의 이런 조치를 핑계 삼아 민주노총과의 합의를 무력화시켜서는 안 된다. 합의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인력 충원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합의 사항 중 일부는 인력 충원과 무관하게 시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를 충실히 이행하여 일부라도 산재 처리 절차를 지금보다 간소화하면 행정력의 여유가 생길 수 있고 그 여유를 필요한 곳에 적절 히 배치함으로써 추가적인 처리기간 단축을 꾀할 수 있을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주어진 여건 내에서 산재처리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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