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만의 Not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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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팀, “우리가 남이가”

대장동 개발 비리의혹, 고발사주의혹, 주술의혹, 하다못해 항문침 전문가가 측근이냐 아니냐는 의혹까지 난무하는 가운데, 여야 각 당의 대선 후보를 정하기 위한 막바지 경쟁이 치열하다. 물고 뜯는 대권경쟁에서 분열이라도 할까 봐 각 선본, 여야 정치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말끝마다 ‘원팀(one team)’을 강조한다. 경선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는 곳에서는 이래가지고 우리가 ‘원팀’이 될 수 있겠냐는 협박도 줄기차다.

상대가 죽어야 승리하는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에 ‘깐부’가 등장하면서 외래어인 원팀 대신 순우리말(?) 깐부도 회자하고 있다. “우리는 깐부잖아. 깐부 사이에는 니꺼내꺼가 없어.” 오징어게임 속 대사처럼 대선후보 경선에서도 “우리 깐부 아닌가요”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대장동 개발이익 수천억 원을 챙기기 위해 정관계를 넘나드는 ‘대장동 깐부’들의 활약상도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원팀과 깐부는 대선 승리의 요술 방망이처럼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수십 년 전 골목에서 아이들이 구슬치기하며 맺던 ‘깐부’가 새로운 것이 아니듯 ‘원팀’도 새로운 것은 없다. 원팀은 이미 1992년 대선에서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으로 알려진 “우리가 남이가”가 먼저다. 원팀과 깐부는 “우리가 남이가”의 21세기 버전에 불과하다.

알다시피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은 정부 여당이 대선 승리를 위해 정부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원팀을 구성한 사건이다.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의 주역이기도 한 김기춘 당시 법무장관이 부산시장, 부산경찰서장, 부산지검장, 안기부지부장, 부산교육감, 부산상공회의소장 등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모아 은밀히 관권선거를 기획했다. “우리가 남이가”는 여기서 외쳐졌고 이들은 그렇게 원팀이 됐다.

2022년 대선에서는 정부 기관장들이 아니라 정당 내부에서만 원팀을 구성하고 깐부 맺고 있으니 그래도 이걸 정치적 발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21세기 원팀도 민주적 발전, 정치개혁을 이루기 위한 깐부 맺기가 아니다. 이들의 원팀은 기득권 유지를 위해 어떻게든 이겨야 하는 ‘대선 승리’를 위한 편먹기, 깐부하기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드루킹 사건처럼 선거 과정에 각종 불법과 비리를 내포해 있고, 선거 이후에도 각종 이권 다툼과 정치적 논공행상인 낙하산, 심지어 매관매직도 일삼게 된다. 집권 이후 정책 방향도 누가 됐든 노동자와 서민보다는 자신들을 지원해 준 재벌을 향한다.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같은 당 내부에서 깐부 맺기지만, 이들의 숨어 있는 깐부는 재벌과 자본이다. 시끄럽게 떠드는 원팀, 깐부보다 드러나지 않는 깐부들이 더 중요하고 무서운 법이다.

원팀 민주당, 국민의힘 깐부가 대장동 원팀·깐부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위기가 찾아오고 실패가 눈앞에 보이자 원팀은 깨져 두 팀이 될 상황이고 의리의 깐부, 희생의 대명사 깐부는 어디 가고 비리의 핵심이나 대선 실패(할)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는 모습도 그대로 닮았다.

원조 원팀, “노동자는 하나다”

170년도 더 전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선언한 이후 “노동자는 하나다”는 노동자들의 큰 외침이 됐다. ‘우리가 남이가’보다 ‘노동자는 하나다’가 훨씬 더 오래된 것이니 사실 ‘원팀’의 원조는 노동자인 셈이다. 노동자 원팀은 하나의 사업장에서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국가에서 그리고 국경을 넘어 전 세계 노동자의 공통 바람이고 숙원이기도 했다. 노동자 원팀은 기성 정치 세력과 같이 기득권 유지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공통 이해와 착취와 억압받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해를 지키기 위한 것이 원팀의 목적이다.

그 때문에 자본은 노동자가 원팀이 되고 서로의 깐부가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했고 이를 분열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등을 운영하는 SPC그룹은 파리바게뜨 제빵 노동자들이 만든 노동조합을 시작부터 방해하고 노조설립 이후에도 노조파괴 공작을 기획하고 시행했다. 특히 민주노조 외에 다른 노조를 만들어 사측의 문제를 노노 갈등 문제로 몰아갔다.

또한, SPC그룹은 화물 운송 노동자들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기로 합의를 맺고도 이를 파기해,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파리바게뜨 등 SPC그룹 사업장에 대한 운송거부를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도 SPC그룹은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를 유포하고 파리바게뜨 가맹점주와 가맹점 노동자, 제빵 노동자의 피해를 운운하며 운송노동자와 대립시켰다. 던킨도너츠의 환경위생 문제를 폭로한 동영상이 나오고 식약처가 이를 점검해 식품위생법을 위반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SPC는 노동조합이 의도적으로 조작한 영상이라고 적반하장 식으로 노조 혐오를 부추겼다.

심지어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이런 기사가 올랐다. 이제 하다 하다 빵을 공급받는 다른 노동자와도 갈라치기를 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16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간식 담당 부서에 비상이 걸렸다. “잔업하는 일부 직원들에게 간식으로 제공하던 파리바게뜨 후레쉬크림빵이 제때 배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급히 구한 것은 오리온 다이제샌드. 이날 일부 생산직 사이에선 ‘왜 갑자기 빵 대신 샌드를 먹으라는 것이냐’며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크림빵’ 간식 때문에… 현대차 울산공장 발칵 뒤집힌 사연, 한국경제신문, 2021.9.25.)

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것은 노동자 ‘원팀’이다. 지난 7월 금속노조 산하 복수노조 사업장 35개 노조에서 “힘내라 파리바게뜨 노동자! 빵터져라 민주노조 함성!”이라며 파리바게뜨 노동조합에 대한 지지와 연대 성명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구두선을 넘어가는 그 이상의 연대는 나오지 않았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바로 이 원팀 의식과 실천에서 나온다. 원팀 의식이 희미해지고 노동조합의 힘이 약화하면서 노동 문제를 노동자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게 됐다. 의회와 보수 기득권 정치 세력에 문제해결을 의탁하게 되고,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호소하게 되면서 원팀 의식은 더욱 희미해졌고 노동조합의 힘은 더 약화했다.

맥도날드, 덴마크 노동자 원팀의 결과

덴마크 맥도날드는 세계에서 가장 시급이 높은 곳인데, 맥도날드 노동자 최저 시급이 시간당 약 22달러(2만6천 원) 수준이다. 여기에 덴마크 맥도날드 직원들은 1년에 6주의 유급 휴가, 생명 보험, 1년의 유급 출산 휴가 및 연금을 받고 있다. 게다가 모든 덴마크인과 마찬가지로 무상 의료 보험과 유급 병가를 누리고 있다.

시간당 22달러를 받는 덴마크 노동자가 만든 빅맥(Big Mac)은 미국보다 그렇게 비싸지 않다. 빅맥 가격은 매장마다 다르지만, 덴마크가 미국보다 평균 27센트 더 비싸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이 27센트를 ‘존엄성의 대가’라고 불렀다. 빅맥이 27센트 비싼 대신 덴마크 노동자들이 미국 노동자보다 최저시급을 최소 60% 이상 더 받기 때문이다.

한편, 이코노미스트의 ‘빅맥지수’(BigMac Index)를 보면, 빅맥은 미국에서 5.65달러로 덴마크 4.65달러에 비해 오히려 1달러 정도 더 비싸다. 물가 차이를 배제하더라도 최저 시급 22달러 받는 덴마크 노동자가 13~15달러 받는 미국 노동자보다 더 값싼 빅맥을 만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 맥도날드는 노동자를 구하지 못해 이제야 시급을 15달러까지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맥도날드는 1980년대 초에 덴마크에 첫 매장을 열었지만, 덴마크 맥도날드 노동자가 처음부터 세계 최고 시급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 당시 맥도날드는 20개국 이상에서 운영되고 있었고 스웨덴을 제외하고는 어떤 곳에서도 노조를 허용하지 않았다. 맥도날드는 덴마크에 매장을 열면서 호텔·레스토랑 노동조합의 협약을 거부했고 자체 급여 수준과 근무 규칙을 만들어 따르도록 했다.

이후 맥도날드가 노조와의 협약을 따르게 하려고 노동자들은 10년 가까이 투쟁을 지속했다. 맥도날드는 그 시간 동안 협약을 맺지 않고 버텼고 결국 맥도날드의 행태를 무력화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인접한 산업 노동자들의 동맹파업(동정파업)을 조직했다. 16개 부문의 노동조합이 동맹파업에 참여했다.

부두 노동자들은 맥도날드 장비가 들어 있는 컨테이너의 하역을 거부했다. 인쇄 노동자들은 맥도날드의 메뉴와 컵과 같은 인쇄물을 상점에 공급하는 것을 거부했다. 건설 노동자들은 맥도날드 매장 건립을 거부했고, 심지어 이미 진행 중이지만 아직 완공되지 않은 매장 건설을 중단하기까지 했다. 그래픽과 디자인을 하는 타이포그래퍼 노조는 맥도날드의 광고를 출판물에 게재하는 것을 거부했고, 이로 인해 맥도날드의 인쇄 광고는 사실상 없어졌다. 트럭운송 노동자들은 맥도날드에 음식과 맥주 배달을 거부했고, 매장 음식을 준비하는 시설에서 일하는 식음료 노동자들은 맥도날드 제품 작업을 거부했다. 그뿐만 아니라 노조는 맥도날드 매장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전단을 나눠주며 보이콧 캠페인을 벌였고 소비자들은 자발적으로 보이콧에 동참했다.

많은 노동조합이 동맹파업에 들어가자 맥도날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호텔·레스토랑 노동조합과 빠르게 협약을 체결했다. 이것이 현재에도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 중에서 덴마크가 가장 높은 시급을 받는 이유다. 덴마크 노동자들이 원팀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노동자의 깐부는 노동자다

2019년 핀란드 정부가 국영 우체국의 소화물 취급 노동자 700명의 임금을 많게는 절반까지 삭감하고 부당 전보시키려 했다. 그러자 우편·물류 노동조합은 곧바로 파업에 들어가 우편배달, 처리, 운송을 담당하는 노동자 1만여 명이 700명의 노동자를 지키기 위해 작업을 거부했다. 그런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다음에는 국영 항공사인 핀에어 노동조합이 동맹파업에 들어가 377개 항공편 중 250여 개 항공편이 결항했다. 그뿐만 아니라 철도노조, 운송노조, 선원노조, 서비스노조 등 많은 노조가 연대파업에 들어가 결국 정부는 무릎을 꿇고 700명 노동자의 고용과 임금을 이전으로 회복했다. 그 여파로 핀란드 총리는 임명 5개월 만에 사임했다.

노동자 원팀은 해외에서 혹은 머나먼 과거의 전설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1985년 해방 이후 최초로 여성 방직공들이 중심이 된 구로동맹파업이 진행된 이후 수많은 연대투쟁, 동맹파업 그리고 총파업이 진행되었다. 2011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위한 ‘희망버스’ 이후로 희망버스는 전국의 투쟁사업장으로 달려갔다. 한국 노동자들의 원팀, 동맹파업(동정파업)과 연대투쟁의 역사는 깊고도 길다.

또한 노동자의 원팀 수준은 민주주의의 척도다. 한 나라의 민주주의의 수준은 투표 참여율이나 의회에서 본회의가 얼마나 평화적으로 열리고 상임위에서 법안심사를 얼마나 열심히 했나 하는 의회정치의 활성화 따위가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보장과 노동자 원팀 의식 수준이 결정한다. 87년 6월항쟁에 이어진 7, 8, 9월 노동자 대투쟁, 96~97년 외환위기 속에서 노동법 개악과 신자유주의 저지 총파업, 2000년~2002년 구조조정 저지 동맹파업, 2006년 한미FTA 저지 총파업, 2008년 촛불시위와 함께 공공부문 사수 동맹파업, 2016년 촛불혁명과 민중총궐기 총파업. 그렇게 노동자의 권리쟁취 투쟁과 총파업, 동맹파업 속에서 한국 민주주의도 그때 전진했고 도약했다.

그런데, 정말 최근 진정한 깐부, 원팀이 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총파업을 하더라도 이제는 조기퇴근을 하던가, 휴게시간이나 교육시간을 빼서 결합한다. 조합원들 대신 노조 집행부, 상근 임원들의 ‘상징파업’으로 총파업에 갈음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 사업장이 아니라 타 사업장 문제로 동맹파업(동정파업)을 해 본 적이 언제였는지 돌아본다. 동맹파업이 불법시 되면서, 여러 부담과 사업장 현실을 이유로 파업마저 상징화된 만큼 형식적인 행사, 기계적인 연대가 된 것은 아닌지도 돌아봐야 한다.

누가 원팀이 좋은 걸 몰라서 안 하나. 한 사업장 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원팀이 못 되는데, 하물며 다른 사업장 노동자와 언제 원팀이 되겠냐는 이야기도 있다. 하청화 된 건강보험공단 콜센터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려는 투쟁에 맞서 이를 저지하기 위해 정규직 노조가 시위하고, 그런 시위조차 약하다며 더 강경한 대응을 하는 새로운 정규직 노조를 만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세상이다.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의 임단협 투쟁보다 주식과 코인시장 시황에 더 관심을 두고, 그 아파트 내가 사지 못해 벼락 거지가 됐다며 한탄하는 세상이다.

그런데도 이중 노동시장, 능력주의, 자본시장 확대, 노노갈등 조장 등 자본의 노동력 분할 정책 때문에 이렇게 원팀 되기가 힘들어졌다고만 할 건 아니다. 어렵지만 원팀이 되기 위해 부족한 것은 무엇인지, 불법이 된 동맹파업(동정파업)을 합법화하기 위해 또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 볼 수 있다.

원팀이 되는 것은 어렵다. 어떤 이의 말대로 지금대로라면 노동해방보다 노동자 원팀이 더 어려운 숙제일 수 있다. 그러나 원팀이 되는 것은 어렵지만, 원팀이 되기 위해 시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고 대단한 일은 아니다. 파리바게뜨 빵을 보면 ‘지금 이 빵을 먹어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능하고, ‘왜 크림빵이 아니라 샌드를 줬지?’하고 열 받기에 앞서 의문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다. 현대차 노조가 ‘크림빵 때문에 울산공장이 발칵 뒤집혔다’라는 기사를 보고 주저 없이 파리바게뜨 빵 거부 선언을 하면 시작되는 문제다.

10월 20일,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한다. 노동자는 원팀이고 ‘노동자의 깐부는 노동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날이다. 거대한 정치적 의제들로만 총파업을 할 이유도 없고, 단위 사업장의 작은 사안이라도 전체 노동자의 힘으로 막아내야 할 때 총파업, 동맹파업이 이뤄진다면 그때 노동자는 원팀이 되고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더 도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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