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22일 고용노동부에 안전보건시스템 점검 촉구 기자회견 열어

금속노조는 22일(금) 고용노동부 보령지청 앞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한국지엠 보령공장사고에 대해 안전보건시스템을 철저히 점검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조는 10월 20일 故 이OO 노동자(금속노조 충남지부 한국지엠보령지회 조합원)는 19년동안 자신의 젊음을 바친 공장에서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아야 했다며, 20일 22시경 이OO 노동자는 자신이 담당하던 설비에 협착된 채 발견됐고 끝내 사망했다고 밝혔다. 당시 이OO 노동자는 한국지엠 보령공장 가공부 TM Case 2차라인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담당하던 설비에서 이상이 발생했다는 알람이 울렸다고 한다. 이를 조치하기위해 설비 안으로 들어가 조치를 하던 중 갑자기 설비가 가동됐고 제품을 이송하는 설비(젠트리 로더)와 제품 사이에 상반신이 협착됐다고 한다.

노조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설비를 정비하거나 청소, 검사, 수리 등의 경우 반드시 전원을 차단한 뒤 작업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설비가 가동될 가능성이 없도록 전원 자체를 차단해 설비를 중단시켜야 하고, 만에 하나라도 있을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기계 기동장치에 잠금장치를 하고, 작업지휘자를 배치하는 등 이중 삼중의 안전조치를 취해야 한다. 정비 작업을 하는 과정에 설비 가동으로 인한 협착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중대재해로 이어질 위험이 크기 때문에 충분히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작업하도록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OO 노동자가 작업할 당시 이러한 안전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OO 노동자뿐 아니라 같은 부서의 동일, 유사한 설비를 다루는 노동자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노동자들은 설비에 이상이 발생해서 점검이나 정비가 필요한 경우 설비 문을 열고 인터락을 해지한 상태에서 작업해야 했다. 인터락을 해지하면 일단 설비 작동이 멈추기는 하지만 전원이 차단되는 것은 아니다. 작업지휘자도 배치되지 않고 모두 1인 작업을 진행했다. 전원이 차단되지 않은 설비가 언제 어떤 이유로 작동할지 알 수 없는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혼자서 조치를 하고 설비가 제대로 가동되는지 확인해야 했다. 

사고 설비
사고 설비

사고가 발생한 설비에 붙어있는 ‘장비청소 및 보전작업 안전작업절차서’에는 정비작업 시 법적으로 취해야 하는 구체적인 안전보건조치 내용이 명시돼있지 않았다. 적절한 공구를 쓰라거나 작업절차를 숙지하라는 부실한 내용으로 작성돼있었고, ‘정비작업 시 에너지원을 차단’하라거나 ‘청소 및 보전작업 완료 후 시운전할 때 사전에 장비 기동사실을 관리자에게 알린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 그와 같은 조치는 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또한, 매뉴얼 상으로 설비 이상 발생 시 조치 방법이 명시돼있다고는 하지만 설비 전원을 끄고 작업할 수 있는 노동자는 아무도 없었다. 설비는 적으면 하루에 2~3번, 많게는 하루에 20번이 넘게 경보 알람이 울렸다. 설비가 노후됐고, 작업 시 사용하는 가공유로 인해 센서에 이물질이 껴서 오류가 자주 발생했다. 가공부가 다른 부서에 비해 생산량이 적다는 이유로 물량압박을 받고 작업은 늘 밀려 있는 상황이었다. 전원을 끄고 설비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만 5분 이상 소요되는 데 하루에도 숱하게 발생하는 설비 이상을 점검하기 위해 매번 그 시간 작업을 중단할 수 있는 노동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OO 노동자는 혼자서 10대 이상의 설비 운전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 모든 설비가 제대로 작동되는지 확인하면서 경보알람이 울릴 때마다 달려가 설비가 제대로 가동되도록 조치를 취하면서 정해진 물량을 맞춰야 하는 노동자는 설비 전원을 끌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바이패스키(센서에 꽂아서 문이 열려있어도 기계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 장비)를 사용하도록 했고, 그로 인해 노동자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했다. 자잘한 이상이 수시로 발생하는 상황에서 조치를 끝내면 설비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문제가 해결됐는지 바로 확인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센서에 바이패스키를 꽂아두고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이 바이패스키는 노동자들이 임의로 제작한 것이 아니었다. 회사가 지급했고, 해당 설비를 담당하는 모든 노동자가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자동으로 가동되는 설비에 의한 위험을 전혀 방지할 수 없게끔 만드는 살인행위와도 같다. 동일‧유사한 설비로 작업하는 타 사업장에서는 바이패스키 사용을 원천적으로 금지시키고 있다. 하지만 한국지엠 보령공장 사업주는 노동자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빠르게 설비를 가동하고 물량을 빼기 위해 알면서도 방치하고 용인했던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전원 차단 조치도 할 수 없어 설비가 언제든지 가동될 수 있는 상태에서 정비 작업을 해야 함에도 추가적인 안전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자동설비 주변에 작업자가 있으면 무게를 인식해서 가동을 멈추는 안전매트도 깔려있지 않았다. 수시로 설비 안으로 들어가 상태를 점검하고 작업해야 하는 조건임에도 기계 주변 공간이 너무 협소해 노동자들을 기계로부터 차단시킬 별도 안전설비를 설치할 수도 없었다. 쇳덩어리 기계가 360도로 회전하며 사람이 들어갈 틈도 없는 그 공간에, 생명을 보호해 줄 최소한의 조치도 없이 노동자를 밀어 넣는 한국지엠 자본의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심지어 회사는 사고가 난 설비를 포함해 가공부 설비가 숱하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해당 설비 가동 시에 문제가 발생하고 경보 알람이 울리는 일이 잦았다. 노동자들은 설비 정비가 필요하다고 보고했고,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했다. 잦은 고장이 발생하고 노동자들이 위험한 상태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을 알면서도 회사는 아무런 조치 없이 설비를 돌리면서 생산을 하는데만 급급했다. 

문제가 있다고 노동자들이 외칠 때 제대로 점검하고 수리를 했더라면, 설비 운전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이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설비 정비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을 방치하지 않았더라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작업방식과 시간, 인력을 보장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지만 회사는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하고 생산제일주의를 앞세운 회사가 만든 결과물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노동자의 죽음이었다며 분노했다.

노조는 더 이상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며,  ▲ 노동자들에게 물량압박과 작업속도로 인한 위험작업을 강요하는 작태를 중단 ▲정비작업 시 전원을 차단하고 협착 방지를 위한 추가적인 안전조치를 시행 ▲안전작업매뉴얼 및 안전작업절차서를 보완, 개정하고, 실질적인 안전작업이 이행될 수 있도록 인력과 물량 등 구조적인 대책을 마련 ▲동료를 잃고 자신도 언제 위험에 처할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에게 상담과 치료를 즉각 시행 ▲책임자를 징계하고, 유가족과 한국지엠 보령공장 노동자들에게 사과등을 촉구했다. 

고용노동부 보령지청 앞에서 항의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단
고용노동부 보령지청 앞에서 항의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단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고용노동부 보령지청을 만나 한국지엠 보령공장의 안전보건시스템을 철저히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 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수십 년 동안 위법을 자행하고, 노동자들을 위험천만한 현장으로 내몰았던 구조적인 원인을 낱낱이 밝혀내고 이제라도 노동자를 보호할 방안을 마련하도록 노동부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지금껏 수많은 노동부 지청들이 해왔던 것처럼 몇 개의 설비를 3~4일 중지시키고 형식적인 회사의 개선계획만 받으면서 할 일 다 했다는 식의 파렴치한 행태를 자행하는 것을 금속노조는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동일, 유사설비에 대한 즉각적인 작업중지 명령과 철저한 감독,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한 근본 대책 수립을 강력히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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