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 다룬 애니메이션 <태일이>, 12월 1일 개봉
이은 명필름 대표이사, 양기환 질라라비 대표이사 인터뷰
“‘전태일’ 백신으로 자본주의 바이러스에 집단면역 만들자”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에서 타올랐던 작은 불꽃. 전태일 열사의 삶과 죽음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수많은 노동자의 연대와 염원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태일이>가 12월 1일 드디어 개봉한다.

<태일이>는 홍준표 감독이 연출했고, 장동윤·진선규·염혜란·권해효·박철민·태인호 배우가 목소리 출연했다. 명필름과 스튜디오루머가 제작했고, 전태일재단, 질라라비, ‘영화 태일이 1970인 제작위원’이 공동제작했다. 배급사는 리틀빅픽처스다.

<태일이>의 첫 관객은 다름아닌 민주노총 조합원이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활동가는 개봉에 앞선 지난 9일, 씨네큐브에서 상영회를 가졌다. 상영 한 시간 전, 이은 ‘명필름’ 대표이사와 양기환 ‘질라라비’ 대표이사를 서울 정동의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카페에서 만났다. 아래는 영화로 연대하는 두 동지의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왼쪽부터) 양기환 질라라비 대표이사, 이은 명필름 대표이사 ⓒ 조연주
(왼쪽부터) 양기환 질라라비 대표이사, 이은 명필름 대표이사 ⓒ 조연주

▶2020년 개봉에서 1년이 늦어졌다. 무슨일이 있었나.
이은 (이하 이) – 전태일 열사 50주기에 맞춰 개봉할 목표를 가지고 진행했는데, 코로나19와 애니메이션 제작의 현실로 인해 미뤄졌다. 50주기라는 시기도 중요하지만, 개봉연기를 단행한 이유는 늦더라도 더 나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아야겠다는 판단이 앞서서다.

우선 애니메이터들이 부족해 인력수급에 어려움이 있었다. 예전에는 애니메이터들이 영화판에 많았는데 요즘은 다 게임 쪽으로 가는 추세다. 감독이야 혼자서 새벽까지 작업한다지만, ‘태일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애니메이터들한테 철야를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웃음).

코로나19로 회의와 협업이 힘들어졌던 것도 이유다. 드디어 개봉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적은 있지만 극장 개봉버전은 오늘 처음 상영한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활동가 앞에 첫 선을 보인다고 하니 긴장돼서 어제는 잠을 설쳤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나와의 약속이기도 하다.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을 마무리할 때 즈음 만화책 ‘태일이(최호철 作)’를 보고 이번 영화가 성공하면 태일이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만화 ‘태일이’를 90분짜리 시나리오로 옮기는 작업도 오래 걸렸다. 이후 2018년 전태일재단을 찾아가서 공동제작하기로 했고, 50주기에 맞춰 개봉하겠다는 목표로 달린 것이다.


▶민주노총이 첫 관객이다. 이들에게 전태일은 어떤 의미라고 보나.
이 – 코로나19 시대니까, 이렇게 정리해 보겠다. 신자유주의라는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 전태일 백신을 맞자. 노동자 정신을 지키는 백신으로 <태일이>는 기능할 것이다.

양기환 (이하 양) – 민주노총의 역사는 그야말로 수많은 전태일들의 피로써 지켜왔던 역사다. <태일이>를 보게되면 적어도 전태일 정신이라는 면역을 갖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삶을 갈라치기하고 피폐하게 만든다. 노동자성을 거세하려 들고, 끊임없는 경쟁으로 내몰며 우리를 갈라 놓는다. 이런 사회에서는 온전한 인간으로서 품위와 제대로 된 모습을 간직하기 쉽지 않다. 110만 조합원들은 <태일이>로 집단면역이 돼서 신자유주의 광풍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노동자의 전통성을 지키는 것이다.

일례로, ‘1020 민주노총 총파업’ 당시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조합원 9500여명은 115개 상영관에서 <태일이>를 관람했다. 상경하기 힘든 조합원들이 <태일이> 관람으로 총파업을 지낸 것이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이후 조합원 교육을 진행했다고 한다.

전태일 열사의 산화 이후로 5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사회는 개량됐을 뿐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삶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수많은 질곡을 거쳐 만들어진 노동조합을 통해 노동자는 권리를 외친다. 전태일 정신이라는 것은 숭고함이다. 동물의 본성을 뛰어넘는 이타심. 아쉬울 게 없는 ‘넘버투’인 재단사가 시다들을 위해 분신하는 숭고함을 아로새기는 작업이다. 


▶<태일이>는 마냥 밝거나 행복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소 우울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온 가족이 다같이 보기에 무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 - 제작의도 중 하나는 노동하는 나의 엄마, 아빠가 당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노동존중이 없는 사회에서, 노동자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 일이 쉽지는 않다. 어린이와 청소년도 전태일 정신을 이해하고, 노동을 설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역사를 바꾸는 주체로서의 노동자, 당당하게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로서의 프라이드를 갖는는 것이다.  

'태일이' 포스터
'태일이' 포스터

▶목소리 출연한 배우들의 이름도 눈에 띈다. 섭외과정이 궁금하다.
이 – 진선규 배우 같은 경우는 <태일이>가 만들어진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연기하고 싶다고, 어떤 일이든 시켜달라고 하면서 달려왔다. 이 친구가 학창시절에 ‘전태일 평전’을 읽고서는, 단순히 감동한 게 아니라 전태일 정신을 인생에 새겼더라. 무보수로 출연한 것을 넘어서 음악극 ‘태일’에 출연해서 받은 개런티를 전태일재단에 기부하기도 했다. 내가 봤을 때, 진선규 배우는 일종의 전태일 같은 친구다.

장동윤 배우 같은 경우에는, 편의점에서 강도를 잡은 사건의 주인공으로 알고있었다. 의로운 이미지가 맞다고 생각해서 연락 했는데, 매니지먼트와 배우 모두 선뜻 하겠다고 말했다.

염혜란 배우도 실력과 이미지를 보고 연락을 드렸다. 흔쾌히 하겠다고 하시더라. 태인호 배우는 우리 회사 작품들을 워낙 많이 해 기쁘게 출연하겠다 했다. 권해효 배우같은 경우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출연 서사를 이해하실 거라고 본다. 뜻있는 작품이라면 늘 적극적으로 출연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영화배우를 캐스팅 한 것은 우리나라에는 애니메이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조금 더 친근감 있는 목소리가 필요하지 않겠냐는 마음이었다. 즐겁게 작업했다.


▶제작 후원자가 3000명을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후원자를 모집중이다. 
이 - 애니메이션 제작비만 30억 원, 여기에 홍보비까지 하면 15억원이 추가로 든다. 보통 이쯤되면 배급사를 찾아서 광고를 맡기고, 이익을 나누는데, 지금은 코로나로 대기업들도 투자를 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여기까지 우리 손으로 일궈서 왔는데, 대기업한테 모든 영업권 주는것도 애매하더라. 여기까지 왔으니 노동자, 시민사회단체의 힘으로 가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앞으로 있을 시사회에서도 그 점을 계속 강조할 예정이다. 시민사회 힘으로 끝까지 갈것이니 도와달라고.

‘태일이’ BP(손익분기점)가 관객 100만 가량이다. [기자 - 민주노총 조합원 110만과 숫자가 얼추 비슷하다] 그럼 딱 맞게 110만이라고 하겠다(웃음). 민주노총 조합원만 다 보면 이 사업은 성공적으로 끝난다고 보면 된다.

양 –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웃음). 민주노총 조합원만 110만인데, 이 영화 스코어가 55만밖에 안되는 악몽이다. 민주노총은 전태일정신을 따르고자 했던 역사의 총체다. 민주노총 지역본부에서도 수차례 홍보했고, 중집에서 가서도 두 번이나 홍보하는 자리를 가졌다. 민주노총 중집에서도 결의를 한 마당에, 우리 노동자의 영화라고 홍보하고 있는 마당에 스코어가 떨어진다면...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믿고있다. <태일이> 많이 봐달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욱공무직본부는 지난달 20일 총파업에 맞춰 를 단체로 관람했다. (제공 교욱공무직본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욱공무직본부는 지난달 20일 총파업에 맞춰 를 단체로 관람했다. (제공 교욱공무직본부)

▶영화 만드는 동지들이니까, 원론적인 질문을 하겠다. 왜 <태일이>는 영화로 남아야 하는가.
이 – 우리가 사는 남한 사회란 사실 굉장히 기형적이다. 분단되고 남북이 갈라진 상태에서 왜곡된 성장을 해왔다. 독재치하에서 배 곯아가며 비균형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뤘다. 그러던 중 이 사회가 균형을 갖추고 민주주의를 시작할 수 있었던 뿌리같은 존재가 전태일 열사의 노동운동이자 분신이었다. 우리가 자각하고 있는 이 세계의 시작은 1970년 11월 13일 이후라고 나는 본다. 전태일의 분신이란, 한국 현대사에서 정신적 뿌리같은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알고 넘어가야 한다. 영화란 사람들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정도는 시민들이 알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태일이 누구인지 알리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숙제같은 것이었다.

양 – 영화는 가장 강력한 프로파간다 매체다. 우리가 해방 이후 70년간 미국 미디어를 접하며 미국적 문화와 가치가 내면화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가치를 내면화시킨다’는 것만큼 강력한 무기가 없다. 전태일 영화 한편을 통해 우리는 왜 노동조합이 필요한지, 우리의 권리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제도권 교육도 제대로 못받은 전태일 열사가 어떻게 그 어떤 엘리트 지식인보다 더 숭고한 정신세계를 가질 수 있었는지를 되새겨야 한다. 노동자가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모습을 직접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양 – 민주노총은 110만의 전태일이 모인 곳이다. <태일이> 영화는 민주노총에서 시작해 대한민국 곳곳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오래 걸렸을지언정 우리  스스로의 손으로 만든 자랑스러운 우리의 작품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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