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 개혁의 경로를 이탈한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을 보며

조선일보는 1938년부터 1월1일이면 1면에 ‘천황폐하의 어성덕’ ‘천황폐하의 어위덕’ 등 제목 아래 일왕 부부 사진을 대대적으로 실었다. 사진은 2020년 3월 조선동아청산시민행동이 일제강점기 일본 왕실을 찬양하는 기사를 냈던 조선일보 지면을 두루마리 휴지 형태로 만들어 조선일보 인근 광화문 거리에 전시했던 상징의식이다. 당시 민주노총 중앙 임원과 산별노조 위원장들은 시민행동이 주관한 릴레이 1인시위에 참여했다. Ⓒ 송승현 기자 / 노동과세계 자료사진
조선일보는 1938년부터 1월1일이면 1면에 ‘천황폐하의 어성덕’ ‘천황폐하의 어위덕’ 등 제목 아래 일왕 부부 사진을 대대적으로 실었다. 사진은 2020년 3월 조선동아청산시민행동이 일제강점기 일본 왕실을 찬양하는 기사를 냈던 조선일보 지면을 두루마리 휴지 형태로 만들어 조선일보 인근 광화문 거리에 전시했던 상징의식이다. 당시 민주노총 중앙 임원과 산별노조 위원장들은 시민행동이 주관한 릴레이 1인시위에 참여했다. Ⓒ 송승현 기자 / 노동과세계 자료사진

“악의적 언론은 전두환을 찬양하고 그 억울한 5.18 광주의 희생자들을 폭도로 비난해 2차 가해했을 뿐 아니라, 가짜뉴스로 선량한 국민을 속여 집단학살을 비호하는 정신적 좀비로 만들었습니다. 그 죄는 집단학살범죄 그 이상입니다.”

지난 9월 23일,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선후보가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언급한 내용이다. 전두환 신군부의 권력 찬탈 과정에서 벌어진 광주 학살을 은폐, 왜곡한 언론의 책임을 언급한 것으로 이런 비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다.

이어 이재명 후보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언론의 이른바 가짜뉴스에 대해 강력한 징벌 배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민주당이 강행처리를 시도했던 언론중재법 개정 필요성을 언급하며 강조했던 논리의 반복이다. 그리 틀리지 않은 말 같다.

그런데 정말 최고 5배의 징벌 배상을 강조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통해 과연 이른바 ‘가짜뉴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답은 ‘ 아니다’이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 주도하고 대선 후보까지 지지 엄호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의 방향이 언론개혁의 본질과 지속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향한 오랜 진보 개혁의 경로에서 이탈해 버렸다는 점이다.

순서가 잘못됐다.

신군부의 광주학살을 은폐하고 시민을 폭도로 매도하고,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했던 1980년 대한민국의 언론 보도는 어떤 구조에서 이뤄졌는가? 당시 사실이 아니라 소설을 써댄 것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만이 아니다. 모든 신문과 방송은 앵무새처럼 군부의 검열을 통해 맞춤 생산된 원고를 전파와 지면으로 수동적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언론사 편집국 내부에 기관원이 상주하며 서슬 퍼런 검열의 칼날을 들이대고 말 안 들으면 음습한 고문실로 끌고 가는 일이 가능했던 시절이다. 권력에 의한 통제와 검열이 일상이었고, 언론 민주화 운동의 핵심적 가치는 당연히 권력이 빼앗은 말과 글을 되찾고 지키는 일이었다. 이후 일부 진전이 있었으나,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 국가권력이 직접 인사에 개입할 여지가 남겨졌던 KBS, MBC 등 공영방송사와 YTN, 연합뉴스 등 공영언론들은 친정권 낙하산 인사들로 쑥대밭이 돼 버렸다. 언론의 공정성과 독립성이 무참히 짓밟혔고, 권력의 입맛에 맞는 친정부 보도가 남발됐다. 세월호 오보 사태를 거치면서 권력을 비호하느라 국민의 생명을 외면한 언론에 대해 ‘기레기’라는 명칭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대규모 촛불 시위와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언론개혁의 핵심 과제는 다시 언론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는 제도 개혁 문제로 귀결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문재인 정부도 이를 대선 공약으로 약속했으나, 단 한 발짝도 진전을 이루지 못했으며 故 이용마 기자의 유지였던 정치권 배제와 국민참여 공영 방송 사장 선출 제도는 민주당 정권의 대표적인 허언으로 남아 있다. 2022년 대선 국면이 전개되면서 정권 잡으면 공영방송 사장을 갈아치워야 한다는 정치권의 시대착오적 발언이 다시 나오고 있다. 배경에는 언론개혁의 본질이자, 1호 과제인 정치적 독립의 문제조차 해소하지 못한 180석 거대 여당의 무능과 내로남불이 자리하고 있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제도로 확립하는 일은 ‘은폐’와 ‘왜곡’으로 시민의 삶을 위협했던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권력형 가짜뉴스’의 생산 경로를 제도적으로 완전히 폐쇄하는 지난 세기의 과제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며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세력이 이 해묵은 책무는 제쳐두고 엉뚱한 지점에서 가짜뉴스 청산을 외치는 것은 지독한 자기부정이며, 그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국회가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통해 언론중재법 논의를 이어가기로 결정한 가운데, 언론노조를 비롯한 언론현업 5단체가 지난 9월 30일 언론노조 대회의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언론개혁 특위는 시민사회 문제의식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며 사회적 합의기구로 구성할 것을 당부했다. ⓒ 언론노조 제공
국회가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통해 언론중재법 논의를 이어가기로 결정한 가운데, 언론노조를 비롯한 언론현업 5단체가 지난 9월 30일 언론노조 대회의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국회 언론개혁 특위는 시민사회 문제의식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며 사회적 합의기구로 구성할 것을 당부했다. ⓒ 언론노조 제공

‘가짜뉴스’는 정말 ‘가짜뉴스’인가?

언론중재법 개정을 추진하는 민주당 인사들을 포함해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가짜뉴스’라는 표현은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의 반인권, 반노동적인 정책을 비판하는 언론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언어로 ‘fake news’를 말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이런 표현은 트위터 등을 기반으로 트럼프가 직접 확산시켰고 지지자들에 의해 대량으로 확대 재생산되며, 강력한 정치팬덤으로 이어졌다. 언론 표현의 자유를 신줏단지처럼 중시하는 미국이지만 이런 환경 때문에 최근 로이터가 조사한 언론신뢰도는 한국보다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언론에 대한 징벌배상제도를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지만, 거꾸로 언론신뢰는 뒷걸음질 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징벌 배상을 도입하면 ‘가짜뉴스’ 문제가 해결되고 언론신뢰가 회복될 것처럼 주장하는 일각의 주장이 미국의 예를 보면 전혀 설득력 없는 것임을 쉽사리 알 수 있다.

이처럼 정치인과 권력자들의 거짓말을 맹신하는 미디어 사용자들은 정작 멀쩡한 사실보도라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어긋나면 ‘가짜뉴스’로 치부하고 SNS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팬덤끼리 확증을 강화해 나간다. 이들은 권력이 과거처럼 직접 언론을 검열하지 않아도 비판언론을 ‘가짜뉴스’로 자의적으로 규정해 공격하는 군중검열(mob censorship)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면서 SNS상에서 강성 지지층에 의해 가짜뉴스로 지목된 언론보도 내용의 상당수는 이후 법정에서 명백한 증거에 의해 사실로 판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지층 결집이 필요한 정치인들은 실체적 진실과 관계없이 지지층을 흥분시킬 ‘가짜뉴스’ 프레임을 지속해서 확산한다. 이런 현상은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으로 누구나 미디어가 되는 세상이 일반화되면서 정보의 확산속도는 광속화하고 확증편향은 더욱 강화됐으며 이와 동시에 권력을 견제하는 정통 언론을 정치적 목적에 의해 공격하는 군중검열은 더 광범위하게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폭력적인 정치권력에 맞서온 필리핀과 러시아의 언론인이 나치 시대 이후 86년 만에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것은 권력에 의한 언론혐오가 세계적 차원에서 확산하고 있다는 경고와 다름이 없다. 유네스코도 이러한 위험을 인식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의 비판 기능을 질식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가짜뉴스’(fake news) 개념의 오남용을 경고하고 나선 상황이다. 언론 신뢰 하락으로 민주주의 위기를 겪고 있는 수많은 국가가 있지만 어느 누구도 함부로 ‘가짜뉴스 처벌법’을 만들겠다고 덤비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민주화의 적통을 잇고 있다는 정당에서 전 세계 어떤 정치세력도 하지 못한 ‘가짜뉴스’의 개념을 법률로 정의하고 이를 근거로 언론을 징벌하겠다는 무리수를 두는 것은 명백한 퇴행의 지표일 뿐이다. 대한민국을 민주화 모범국으로 여겼던 국제사회의 우려는 너무 당연한 일이다.

징벌배상으로 조·중·동을 때려잡는다고?

그러나, 민주당 강성 지지층과 스스로 진보라 규정하는 일부 인사들이 마치 언론중재법 개정으로 ‘가짜뉴스’ 징벌 배상해야 조·중·동 등 이른바 ‘언론적폐세력’을 척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니 언중법 개정에 반대하는 세력은 모조리 조·중·동 때려잡기에 반대하고 보수에 투항한 변절자들이라는 단순한 등식으로 개정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양심적 진보세력까지 공격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주장은 언론 표현의 자유 확대를 위해 피 흘려 온 언론 민주화와 진보 개혁의 도도한 역사적 흐름을 민주당에 대한 지지와 반대의 틀로 가두고 왜곡하는 시대착오적이며 맹목적인 추종 행위에 불과하다.

물론 필자는 조, 중, 동으로 대표되는 족벌 언론과 보수 경제지 등 재벌 매체들의 일상적인 노동 폄훼, 각종 통계에 대한 왜곡 보도 등에 대한 민주노총 동지들과 진보 진영의 분노를 잘 알고 있으며,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문제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

문제는 우리를 열받게 하고 사회를 망치는 조·중·동과 보수 경제지 등의 기사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시장만능주의에 기반한 의견 보도에 해당하는 것들로 징벌배상의 성긴 그물로는 잡을 수 없는 것들이다.

더구나 거대 로펌과 대형 자본의 엄호 속에 조·중·동 등 언론재벌들은 징벌 배상을 5배 아니라 10배 한다고 해도 대부분 유유히 빠져나갈 것이며, 오히려 열악한 조건 속에 산업현장의 노동파괴와 거대 종교집단의 인권침해 등을 감시해 온 양심적 언론들이 거꾸로 사회 기득권 세력의 징벌 배상 소송 협박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위험을 초래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한마디로 이른바 ‘가짜뉴스’라는 빈대는 못 잡고 ‘언론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보호’라는 초가집만 태우는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14기 서울지역 자주통일선봉대가 2020년 7월 25일 조선일보 앞에서 조선일보 폐간 실천행동을 진행했다. ⓒ 송승현 기자 / 노동과세계 자료사진
14기 서울지역 자주통일선봉대가 2020년 7월 25일 조선일보 앞에서 조선일보 폐간 실천행동을 진행했다. ⓒ 송승현 기자 / 노동과세계 자료사진

다시 미디어 공공성을 외치자!!!

필자는 대한민국 언론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 언론의 본질적 기능은 조·중·동을 필두로 한 심각한 보수 편중과 포털에 의한 시장 왜곡 속에 새로운 미디어의 확산으로 인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다. 말라가는 광고 유치를 위해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는 더 높아지면서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감시와 비판의 칼날을 점점 더 무뎌지고 있다. 클릭 경쟁에서 뒤처지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인터넷 환경 속에 ‘확인 취재’보다 ‘일단 베끼기’가 다수 언론의 관행이 된 상황이다. 이런 시장 환경을 방치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징벌 배상을 강화해도 저널리즘의 품질은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징벌 배상을 피하기 위해 거대권력에 대한 탐사 고발보다는 안전한 보도자료 베끼어 쓰기만 더 확산할 것이 자명하다.

언론 이용자들이 정보를 접하는 통로가 신문 지면과 방송 화면으로 한정됐던 시절에는 허위 정보를 걸러내는 과정과 방식도 비교적 단순했으며, 무엇보다 유통되는 정보량 자체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했다. 수십 년 동안 신문법과 방송법상의 문제로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 문제가 축소된 사이 콘텐츠와 정보 유통 시장은 이미 소수 재벌과 거대 자본에 완전히 포획돼 버렸다.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른바 ‘가짜뉴스’가 정치인과 팬덤, 다양한 미디어 이용자에 의해 더 많이 생산되고 유통돼야 자본 이익이 극대화되는 구조적 환경을 방치하고는 ‘가짜뉴스’ 문제는 결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결국 우리에게는 더 많은 민주주의와 노동존중, 인권신장을 위해 해로운 정보를 신속히 가려내 비판하고, 공동체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건강한 저널리즘에 기반한 정보를 더 많이 생산해 정보 왜곡 폐해를 상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현실적인 대안일 수밖에 없다.

혐오와 차별, 불공정과 편향을 통해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는 언론의 배경에는 포털, 유튜브, 페이스북 등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장악당한 인터넷 공유지의 독점이 있다. 이미 소비재 시장의 과점을 통해 높였던 재벌과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정확하고 깊이 있는 정보를 접해야 할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권력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제 철도, 의료, 교육뿐 아니라 정보에서도 공공성은 권력의 공세가 아닌 자본의 확대로부터 지켜야 할 보루가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재벌과 대기업에 점령당한 인터넷 환경을 포괄하는 새로운 미디어 공공성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완전히 달라진 미디어 플랫폼 영역 안에 자본과 시장 논리에서 독립된 자유로운 공공의 영역을 최대한 넓게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산업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들러리로 전락한 미디어 자본 구조에 대한 전면적 재편까지 과감하게 제안하고 논쟁해야 한다. 언론노조는 담대한 제안을 준비하고 있다.

어느 길로 걸어가 어떤 민주주의를 할 것인가?

‘가짜뉴스’ 문제로 시작한 글이 전면적인 미디어 공공성 확보의 문제로 이어졌다.

잠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른바 ‘가짜뉴스’를 일부의 자의적 희망처럼 멸종 내지 박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징벌 배상은 두더지 잡는 뿅망치 게임처럼 자극적이고 직접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루에도 수억 마리가 넘게 떠다니는 ‘가짜뉴스’라는 두더지를 뿅망치로 다 잡겠다고 덤비는 것은 우매한 일이다. 결국 ‘가짜뉴스’와의 어쩔 수 없는 공존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 될 수밖에 없다.

이를 인정할 수 있느냐 여부는 우리가 어떤 경로로 진보와 민주주의의 길을 만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매우 중대한 질문과 연결돼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다른 생각을 용납지 않는 시대를 수도 없이 경험해 왔다. 멀게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사실을 주장했다가 종교재판에 회부된 갈릴레이와 코페르니쿠스부터 가깝게는 박근혜 정부의 치부를 들춰낸 정윤회 문건을 작성했다가 처벌당했던 박관천 경정의 사례까지 말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명백한 교훈은 ‘가짜’를 권력이 규정하고 벌하면 법 제정의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오히려 대척점에 있는 ‘사실’과 ‘진실’이 질식한다는 점이다. 21세기에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

앞서 필자는 한국사회의 민주화 경로가 권력에 의해 빼앗긴 말과 글을 되찾는 언론자유 확장의 경로와 일치한다는 점을 설명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와 생각이 다른 보수세력과 자본가들에게도 언론 표현의 자유를 동등하게 보장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분통이 터지는 일이지만, 우리가 피를 흘려 싸워 쟁취한 형식적 민주주의는 그런 한계를 갖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자본과 권력의 힘으로 과점한 미디어 영역의 무게중심을 공공성을 기반으로 다시 회복하는 일이다.

이들의 역사적 악행을 단죄하려는 욕심이 앞서 수많은 자들의 피를 먹고 자라온 형식적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함부로 훼손하는 것은 당연히 진보가 아니며, 단죄의 대상인 그들과 똑같은 방식의 보복일 뿐이다. 진정한 단죄는 더 멀어지며, 기회는 날아갈 것이다. 잠깐 속은 후련할 것인지 몰라도 훼손한 언론 표현의 자유는 결정적 순간에 가장 취약하고 아픈 약자들을 공격하는 지배자들의 무기로 둔갑할 것이다. 우리가 벼린 칼날이 우리 살을 베는 일을 우리는 너무도 많이 겪어왔다.

이미 그런 과정을 수많은 대중이 목격한 결과가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대선 정국의 현실이다. 20년 집권을 말하던 촛불 권력이 허구한 날 적폐 탓, 언론 탓하다가 수구 좀비들을 모조리 부활시키고, 패배의 위기에 직면해 있지 않은가.

우리가 가야 할 진보와 민주주의 확산의 경로는 자의적 해석과 낡은 진영 논리 너머에 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불러온 논란은 우리에게 어떤 길을 갈 것인지 묻고 있다. 진보 진영은 무엇을 택할 것인가. 다시 익숙한 실패의 길로 스스로 진입할 것인가.

답은 정해져 있다.

지난 5월 25일 민주노총과 언론노조를 비롯한 125개 단체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언론개혁을 염원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청와대와 국회에 전달하기 위한 비상시국선언에 참여했던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 ⓒ 송승현 기자 / 노동과세계 자료사진
지난 5월 25일 민주노총과 언론노조를 비롯한 125개 단체가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언론개혁을 염원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청와대와 국회에 전달하기 위한 비상시국선언에 참여했던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 ⓒ 송승현 기자 / 노동과세계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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