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 누구나 차별없이 근로기준법 입법 촉구 기자회견 열려
근기법 11조 ‘적용범위’ 폐지하고 2조 개정으로 노동자 정의 넓혀야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근로기준법을!
근로기준법을 빼앗긴 노동자들의 외침이 국회 앞에서 울려퍼졌다.
직종, 계약 형태,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없이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개정해야한다는 입법 촉구 기자회견이 17일 오전 국회 앞에서 열렸다.
이들이 촉구하는 입법안을 살펴보면, 근로기준법 2조 ‘정의’에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모두를 노동자로 추정’하는 조항을 신설해 노동자의 정의를 확대하고, 사용자가 특정 조건을 입증해 노동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방식으로 개정된다. 또한 11조 ‘적용범위’를 폐지해 사업장 규모와 상관없이 모두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다는 내용이다.
현재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의 핵심 조항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근로시간, 연차휴가, 연장근로 부당해고구제 등의 권리가 없다. 사업자는 이 혜택을 받기 위해 서류상으로 사업장을 쪼개거나, 4대보험 대신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방식으로 사업장을 축소한다.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고 노임을 받음에도, 법적으로 노동자가 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근기법 2조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은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사장님'으로 위장되거나, 법망을 피해간 노무계약 체결로 사업소득자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4대보험, 실업급여, 퇴직금 등의 보장받을 수 없게 된다. 또한 이들이 노동자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장기간 고비용 소송이 필요하다.
이날 기자회견은 근로기준법 밖의 노동자들과, 노동조합대표, 시민사회의 대표들이 대거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회견은 근기법 2조와 11조로 인해 직접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의 생생한 발언으로 시작했다.
제 상사는 고용노동부에서 오래 근무한 노동법 전문자이고, 법인설립 전문가입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혜택이 사용자에게 얼마나 대단하길래 전 노동부 직원까지 동원되는 것일까요. 21세기의 합법적인 노예제도가 5인 미만 사업장에 있습니다. 마음대로 괴롭히다 당일 해고돼도 억울함을 다툴 수 없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닙니까? -김민정 사무직 노동자
취업의 기쁨도 잠시, 계속되는 업무압박과 야근을 하고도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4대 보험도 없었고 계약서에는 결근 시 급여 200%삭감 등의 내용도 있었습니다. 이는 근로기준법에 위반되지만, 5인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했던 회사였기에 어떤 조치도 없었습니다. 저같은 사회초년생이 더 이상 피해를 입지 않도록 모든 노동자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 강여름 디자이너
업계 관행으로 근로계약서 없이 개인사업자로 일했던 부동산상담 노동자입니다. 얼마 전 지노위에서 노동자로 인정받았지만 사측은 제가 개인사업자라고 얘기하며 재심청구를 했습니다. 내가 개인사업자가 아닌 노동자성을 주장하는 것도 개인이 입증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 김소연 분양상담사
피아노 레슨업체와 업무위탁계약 계약서를 작성하고 1년정도 일했던 노동자입니다. 퇴직을 하려고 한달쯤 미리 얘기했는데, 후임이 구해지지 않았습니다. 후임을 구하는 업체의 태도가 미적지근하길래 답답한 마음에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근로계약서가 아니라 노동부에 도움을 구하기도 애매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똑같은 노동자인데 계약이 다르다는 이유로 노동자로 보호받지 못하는 게 너무 억울했습니다. - 한주연 피아노강사
노동시민사회단체,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없애고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 쟁취하자"
이어 노동조합 대표자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의 발언이 나왔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몰려있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며 자화자찬하지만 이는 노동현장에서 차별받는 이들을 착취함으로 인해 자본의 이윤을 극대회시킨 것이다. 야만의 사회는 이제 당장 멈추어야 한다”고 말했고, 우다야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작업장의 규모에 따라 노동의 가치와 임금이 차별당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이 실시된 지 5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노동자들이 노동법을 적용하라고 외친다. 5인 미만 사업장 사장이 힘들다면, 노동자는 더 힘들다. 사장만 배불리는 근기법을 개정하라”고 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전태일 열사가 51년 전 근로기준법 책을 불태웠다면, 오늘날의 노동자들은 불태울 노동법조차 없다. 배달산업의 사용자는 노동자를 통해 이윤을 얻고 데이터를 소유하고 투자를 받지만, 오토바이값 400만 원, 연간 보험료 800만 원,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그리고 사회적 책임까지 모두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상균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은 “노동조합도, 단결도 연대도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체념을 끝내고 새로운 길에 섰다. 이 자리 많은 당사자들이 자기를 드러내며 용기 내고 있다. 더 많은 용기가 나올 때 책임을 회피하는 국회가 비로소 말을 들을 것이다”라며 “불평등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 근로기준법의 전면적용임을 깨달은 무권리 상태의 노동자들이 좀 더 힘을 내서 체념을 박차고 투쟁해야 한다”고 했다.
현린 노동당 대표는 “낡은 법이 사회변화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목적과 취지는 사라지고, 근기법을 악용해 노동착취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낡은 법을 바꿔야한다”고 했고, 김응호 정의당 부대표는 “세계 경제강국 10위 대열 대한민국의 노동 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1000만에 달하는 일하는 시민들이 법 밖으로 내팽개쳐 져있다. 시민사회와 함께 근기법 2조와 11조를 개정하는 입법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류하경 민변 노동위 변호사는 “해마다 근기법은 시민사회단체 등의 요구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법이 나아지니, 법에 적용받는 노동자 수를 줄이려고 한다. 현재 노동자들이 자기의 노동자성을 인정 받으려면 법원에 갖가지 증거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근로기준법이 소용이 없다. 사용자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증명하는 의무를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들은 강은미 정의당 국회의원과 함께 오전 10시 40분 국회소통관에서 입법촉구 기자회견을 가지기도 했다. 이들은 오는 24일 근기법 개정 토론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다음달 2일에는 5인미만 차별폐지 공동행동을 진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