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혐오에 관하여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지난 9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혐오표현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10명 중 7명은 온·오프라인에서 혐오표현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심지어 우리는 웹툰, 개인 방송 등 혐오를 팔아 장사하는 산업이 번창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2019년에 발표된 김지수의 논문 ‘인터넷 개인 방송에서 혐오 발언은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에 따르면 여성 혐오 발언이 등장할 때 후원 수익금은 107% 증가하고 그 발언의 공격성이 높을수록 수익률도 높아진다고 한다. 혐오는 중독성이 있어 점점 강도를 더해 가고, 폭발적으로 번져간다. 어쩌다 우리 사회는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 사회를 설명하는 열쇳말 중 대표적인 것이 극단적인 양극화와 불확실성이다. 기약 없는 취업, 불안정한 일자리,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물가와 전·월세 보증금, 늘어가는 빚. 이렇게 불안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늘 화가 나 있고, 자신의 고통과 분노의 원인을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에서 찾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타인에게서 찾는 게 쉽다. 자기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고, 자기보다 약자여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된다. 그래서 혐오의 대상은 늘 여성, 특정 지역 출신, 페미니스트,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북한이탈주민, 아동·청소년, 저소득층 등 사회적 소수자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존재 자체로 조롱이나 욕이 되는 사람들이다. 이 단어들로 각자 아는 욕을 다 상기해보시라. 조롱이나 비하의 말들은 대개 이들을 빗대어 표현된다.

그런데 이러한 혐오가 최근 우리 사회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한 번 생각해보자. 패전과 대공황으로 불안과 빈곤에 휩싸였던 독일에서, 더럽고 악랄하며 독일 사회를 병들게 하는 존재가 지목되었다. 바로 유대인이다. 그런 내용의 책, 영화, 포스터, 언론 기사를 비롯하여 정치학, 생물학 등의 연구자료가 엄청나게 퍼진다. 이 혐오를 나치가 강화하고 현실화한 결과가 집단학살이다. 그런데 나치의 수용소에는 유대인만 있지 않았다. 동성애자, 로마인, 흑인, 장애인, 그리고 사회주의자……. 사회경제적 불안을, 사람들이 흔히 편견을 갖고 있거나 쉽게 편견을 가질 수 있는 특정 집단에 떠넘겨 잠재우는 일. 과거 한국의 군사정권도 혐오를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했다.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 그리고 ‘빨갱이’에 대한 혐오. 그런데 문민정부 이후 형식적으로나마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그 전까지는 존재조차 드러내지 못했던 소수자 운동이 시작되었다. 1990년대 중반엔 성소수자 운동이, 2000년 초엔 장애인 운동이. 바로 그즈음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민이 늘어나서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했고,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높아지면서 과거에 비해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목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IMF 이후,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불안이 극대화된 시기와 소수자들이 자기 존재와 목소리를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가 맞물리는 것이다.

독일의 나치와 한국의 군사정권이 그랬듯이 요즘도 정치인에게 혐오는 사회통제에 매우 강력하고 유리한 수단이다. 노동자들이 하나로 단결하는 것이 제일 끔찍한 자본가들은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고도 노동자들을 갈라놓을 수 있고, 혐오로 돈까지 벌 수 있다. 그러므로 자본과 결탁하여 권력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정치 세력은 여야를 막론하고 똑같다. 차별금지법은 14년째 ‘나중에’, 소수자 의제들은 언제나 시기상조. 여혐은 남혐으로 돌려막으면서 여성 의제들도 무시하면 된다. 혐오에 불까지 붙여 장사하는 언론에게도 혐오는 좋은 먹잇감이다.

이 극단적인 불평등의 시대, 우리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 것이 과연 여성과 소수자일까? 우리의 분노는 누구를 향해야 할까? 혐오는 우리에게 손톱만 한 이익이라도 주고 있을까? 우리가 서로를 혐오할 때 누가 웃고, 누가 울까? 나의 분노가 향한 곳은 번지수가 맞나? 출처 미상의 이 말이 너무 절실한 시대다.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당신이 모르는 싸움을 치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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