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노동과세계 필진에 변화가 찾아옵니다. 새로운 세상을 그리는 모든 이들에게 더 다양하고 의미있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함인데요, 지난해에 이어 홍석만 참세상연구소 연구원과 영화감독 이송희일, 명인 인권교육연구소 너머 대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노동과세계 독자들에게 폭넓고 의미있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다섯 분의 필진이 새로 보강됐습니다.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은 한국사회 노동보도 비평을 주제로 매월 2회 비평칼럼을 게재합니다. 노동안전 분야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마음건강을 주제로 다룰 예정입니다. 통통톡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 네트워크 소속 상담사들이 나서 노동자 마음건강을 위한 글을 매월 한 차례씩 보내오기로 했습니다.
인권 분야는 한국사회 소수자들의 노동인권에 보다 가까이 다가갑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활동가들이 달마다 돌아가며 써내는 글로 장애,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그간 우리 눈에 잘 들지 않았던 노동과 노동인권을 살펴볼 예정입니다.
박준성 노동자교육센터 운영위원은 12차례에 걸쳐 노동자가 알아야 할 한국근현대 노동운동사를 짚어낼 예정입니다.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엔 김기홍 돌꽃노동법률사무소 공익노무사가 각종 사례와 판례를 들어 청년노동자, 특히 청년비정규직노동자 문제를 바라볼 계획입니다. [편집자 주]

홍석만의 NOT TODAY
홍석만의 NOT TODAY

우리나라 연간 노동시간은 조금씩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멕시코, 코스타리카 다음으로 길고, OECD 평균보다는 연간 200시간 이상 길다. 2020년 기준 우리의 연간 노동시간은 1,908시간으로 독일 1,332시간보다 600시간 가까이 차이 난다. 우리 노동자가 독일 노동자보다 15주, 3달 반을 더 일하는 셈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은 오랜 숙제와 같았다. 이번 대선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은 주요 공약으로 얘기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1호 공약으로 주 4일제를 제시했다. 김재연 진보당 후보도 ‘임금삭감 없는 주 4일제’를 공약화했다. 뿐만 아니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주 4일 근무제는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며 거들고 나서기도 했다.

주 4일제, 주 32시간제 등 법정 노동시간 단축은 세계 최장 노동시간에서 벗어나 임금 수준의 저하 없이(임금 삭감 없이) 워라벨 등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노동 외 시간, 여가를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노동시장이 유연화되고 비정규직과 단시간 노동, 초단시간 노동이 범람하는 상황에서 법정 노동시간 단축이 실제 의도한 대로 여가를 보장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일자리의 2차 균열, 비정규직 일자리 쪼개기

임금은 ‘(단위)시간당 임금 × 노동시간’으로 결정된다. 노동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임금 수준이 악화하지 않으려면 시간당 임금이 올라야 한다. 바라던 대로 2000년 이후 노동시간도 줄어들었고 단위 시간당 임금도 올랐다(시간당 임금 상승의 주요 요인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그런데, 법정 노동시간 단축만큼만 노동시간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줄었다. 특히 비정규직의 노동시간 감소는 충격적일 만큼 크다.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시간 변화 및 비율 추이

자료: 민주노총 이창근(2021)에서 인용.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자료: 민주노총 이창근(2021)에서 인용.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정규직은 주당 노동시간이 2001년 49.6시간에서 2012년 42.8시간으로 6.8시간 단축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거의 변화가 없다. 2021년에도 42.3시간이다. 그런데, 비정규직의 주당 노동시간은 2001년 49.0시간에서 2021년에는 33.9시간으로 지난 20년 동안 15.1시간이나 단축됐다. 2008년까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시간 격차가 거의 없었다. 2009년부터 노동시간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해 그 사이 비정규직의 노동시간은 정규직보다 두 배 정도 더 많이 단축됐다.

이런 비정규직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워라벨을 지킬 수 있게 됐다고 환영해야 하는가? 아니다. 비정규직의 시간당 임금은 올랐지만, 노동시간의 대폭 축소로 월평균 임금수준은 오히려 낮아졌고,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는 더 벌어져 임금 불평등은 더 심화하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비정규직의 노동시간 단축이 비정규직의 일자리를 쪼개면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일자리가 단시간, 초단시간으로 쪼개져 이들 노동자의 비율이 대폭 늘어났다.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는 2017년 2월 51.7만명에서 2020년 2월 95.9만명, 2021년 2월 148만명으로 불과 4년 사이에 세배 가까이 폭증했다. 2021년 5월 156.3만명으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은 수치를 보였다. 주 36시간 미만 단시간 노동자도 지속해서 증가했는데, 2020년 356만명(17.4%)에서 2021년 389만명(18.6%)으로 증가했다.

아르바이트 시장에서는 소위 ‘알바 쪼개기’가 이뤄졌다. 기존에 1명이 하루 8시간 하던 일을 2~3시간씩 3명과 계약을 맺었다. 이렇게 알바 쪼개기를 하면 전체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 노동자에게 주휴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아도 됐다. 이런 비정규직 일자리 쪼개기의 결과 아르바이트와 같은 초단기 일자리, 택배와 배송 라이더와 같은 플랫폼 일자리가 대폭 늘어났고 그럴수록 비정규직의 총 노동시간은 지속해서 줄어들었다.

초단시간 노동자 추이 (매년 2월 기준)

출처 : 청년유니온 (2020.9). 경제활동인구조사 원자료 분석.
출처 : 청년유니온 (2020.9). 경제활동인구조사 원자료 분석.

이처럼 자본은 노동시간 단축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임금은 단축된 시간만큼 보전해 준 반면, 비정규직은 일자리 쪼개기로 임금 노동시간을 더 줄이는 것으로 대응해 왔다. 그에 따라 시간당 임금은 모든 노동자층에서 올라갔지만, 노동시간 양극화는 더 심화했다. 어떤 노동자들은 휴식이 필요할 정도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또 다른 노동자들은 돈을 받을 수 있는 노동시간이 부족해 소득 감소로 고통받아야 했다. 이들은 부족한 노동시간을 채우기 위해 투잡, 쓰리잡도 마다하지 않고 단시간 일자리로 나서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확산하고 노동유연화가 확대하면서 일자리의 균열이 일어났다. 데이비드 와일은 “균열 일터”에서 이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균열은 주로 정규직 일자리가 주요 대상이었고 외주와 하청, 아웃소싱과 오프쇼어링으로 확대했다. 이를 ‘일자리의 1차 균열’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일자리의 균열은 정규직을 넘어서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다시 벌어지고 있다. 비정규직 일자리의 단시간, 초단시간 노동으로의 균열, 플랫폼 노동과 긱(gig) 고용의 확산 등은 ‘일자리의 2차 균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더 심화한 노동유연화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비정규직은 이미 주 4일제...불안정 고용, 저임금으로 고통

이 때문에 주 4일제에 대해서 대자본의 반대가 그리 심하지 않다. 오히려 보수언론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주 4일제 실험에 관해 관심을 촉구하며 한국에서도 주 4일제 시행이 머지않았다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IT 업종과 대기업 일부에서는 이미 주 4일제를 시행하거나 이를 위해 격주로 하루 더 쉬는 4.5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근무시간을 줄인 대신 업무능률과 생산성 향상 효과가 입증돼 도입 기업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능률과 생산성 향상 이면에 존재하는 단시간 노동의 확대는 이야기되지 않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주 4일제 또는 주 32시간 노동제가 도입되면 4일 근무는 축소된 정규노동으로 진행되고 나머지 노동일은 단시간 노동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가장 높다. 또는 정규노동시간을 더 쪼개서 단시간 노동으로 재편하는 것도 가능하다. 요컨대, 노동시간에 대한 노동자의 통제력이 부재한 현재 상황에서 법정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유연화의 확대로 이어지게 된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속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왜곡된 결과다.

법정 노동시간이 단축이 의미를 가지려면 최소 두 가지 조건이 만족해야 한다. 첫째,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둘째, 노동시간이 쪼개진 형태로 존재하는 비정규 노동과 단시간 노동이 폐지돼야 한다. 즉, 모든 노동자가 법정 노동시간 단축의 영향 아래에 있으려면 일반적 고용형태가 정규고용이 되어야 하고 비정규직과 단시간 근로는 폐지되거나 아주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용인되어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비정규직의 2021년 주당 노동시간은 33.9시간으로 비정규직은 이미 주 4일제, 주 32시간 노동제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더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으로 충분히 고통받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