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성의 노동자 역사
박준성의 노동자 역사

하루 하루 정보는 홍수처럼 넘쳐 나는데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알기 어렵다. 현실도 잘 모르는데 머나먼 과거 역사까지 알 필요가 있을까? 살아오면서 경험으로 알다시피 역사를 몰라도 살아가는데 큰 지장은 없다. 업으로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역사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돈 벌어 주는 것도 아니다. 

어느 때 문득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기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생각 없이 막살고 싶지 않을 때 역사를 들춰보게 된다. 현실이 막막하고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광주 5.18 신묘역 사진전시관에 벽면에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글귀가 걸려 있었다. 커다란 의의를 지닌 역사적 사건이라도 학살과 폭력은 개인의 삶을 여지없이 박살 내고 역사의 진전을 가로막는 비극이다. 기억을 잊고 방심하면 또 당할 수 있다는 경고다. 패배와 실패 또한 되새기지 않으면 반복해서 겪게 된다. 

중국 난징 대학살 기념관 곳곳에는 ‘전사불망 후사지사’(前事不忘 後事之師)‘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현대 중국어, 영어, 일본어 번역도 덧붙였다.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지나간 일을 잊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다가올 일에 가르침이 되기 때문이다‘는 뜻이다. 현재는 과거의 미래이다.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를 대상으로 삼는 역사를 배울 필요가 있다.

흘러간 옛노래는 <과거는 흘러갔다>고 노래한다. 과거가 먼 과거 속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현재로 흘러와 곳곳에 쌓여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안 다거나 현실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역사를 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선조들의 흔적은 먼 하늘이나 영혼 속에 떠도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피를 타고 전해져 지금의 내 몸 속에 담겨 있다. 현실의 노동자들의 처지와 노동운동의 수준도 먼저 살았던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이 축적된 결과이다. 노동운동의 현실을 알기 위해서 노동운동의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 역사에서 언제부터 신분의 예속에서 벗어나 노동력을 팔아 살아가는 임금 노동자가 등장하였을까? <흥부전>은 조선후기 새롭게 등장하는 두 세력의 모습을 보여준다. 형 놀부가 신흥부자를 대표한다면 흥부는 품팔이 농업 노동자의 표상이다. 흥부 부부가 파는 품은 방아찧고 키질하기, 술집에서 술 거르기, 초상집에 상제 옷짓기, 제삿집에 그릇닦기, 언 손 불며 오줌치기, 봄 들판에 나물뜯기, 봄보리 갈기 같은 허드렛일이나 가래집하기, 논밭 무논갈기, 입하(立夏) 전에 면화갈기, 이집저집 이엉엮기, 더운 날에 보리치기, 비오는 날 멍석걷기, 산에 올라 땔감베기, 말 짐싣기, 말발굽에 편자박기, 변소간에 똥치기 같은 온갖 잡일이었다. 이런 온갖 일을 다하고 품삯을 받아도 굶기를 밥먹듯 해야 하는 것이 초기 농업 노동자들의 현실이었다. 

조선후기 지주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빈풍도’
조선후기 지주제의 단면을 보여주는 ‘빈풍도’

17~18세기 타인에게 고용되어 ‘고가’를 받는 품앗이꾼을 ‘고공’이라고 불렀고, 고공을 고용하는 이들은 ‘고주’라고 했다. 조선후기 고주와 고공이 합의하여 품값을 정하는 일을 ‘화고(和雇)’라고 불렀다. 화고는 하루 품팔이나 농번기 때 고용되는 단기고공에서 주로 이루어졌다. 이들 사이에는 신분적인 예속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계약이 맺어졌다. 고공은  고주와 화고를 맺고, 그에 따라 고가를 요구했다. 계약에 따라 화고가 이루어졌지만 18-19세기 고주 - 고공 사이의 갈등과 대립은 다양한 형태로 확대되었다. 주로 고주가 고공에게 주는 고가를 놓고 다투는 ‘쟁고(爭雇)’가 빈번했다. 화고와 쟁고는 초기 품팔이 노동자들이 생산 현장에서 벌이는 소극적.개인적 차원의 생존권 투쟁이었다.

국가에서도 18세기 후반에 이르면 '공공사업'을 벌일 때 백성들을 부역으로 동원하는 대신 필요할 때마다 짧은 기간 동안 인부를 모집하여 임금을 주고 일을 시키기 시작하였다. 전업하는 수공업자들은 자기 돈으로 임노동자를 고용하여 제품을 생산하였다. 수공업 생산과 화폐 주조가 활발해지면서 광산이 늘어나고, 상품유통에 따라 도시와 부두가 발달하면서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받고 살 수 있는 일터도 서서히 늘어났다.

고공의 무리를 고군, 광산 노동자들은 광군, 나무꾼 무리를 초군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아직 자신의 요구를 내세우고 투쟁할 수 있는 노동조합 같은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변란’이나 ‘민란’에 참가하면서 투쟁의 경험을 쌓아 나갔고 집단으로 투쟁할 수 있는 잠재력을 축적하였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있게’ 만드는 노동과 없어야 할 것을 없게 만드는 투쟁은 역사를 움직이는 두 수레바퀴다. 이 땅에 노동자가 등장한 이후 먹고 살 걱정 없이, 차별 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보려는 노동자들의 노동과 투쟁은 사회를 움직여 나가는 중요한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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