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한 공장에서 큰 화재가 났다. 노동자가 숨졌다. 고용노동부는 서둘러 보도자료를 발표해 업주를 입건했으며, 유해물질 노출은 없었다고 밝혔다. 한술 더 떠 일부 언론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문제가 많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흔들고, 안전불감증이 문제라는 얼토당토 않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경제지 등을 중심으로 해당업체에 주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배터리 업계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포털 여기저기에 걸린 보도들이 온통 이런 내용들이다. 언론보도만 보자면 사람이 죽은 사실은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사건으로 보도됐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떨어져 죽고 끼어 죽어도 언론에 한 줄 보도되지 않는 죽음이 여전히 많다.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는 2020년 6월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예리 기자 / 노동과세계 자료사진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는 2020년 6월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김예리 기자 / 노동과세계 자료사진

잇따른 노동자들의 사고 소식을 볼 때마다 이재학 PD가 생각난다. 그의 죽음이 알려지고 지역에서 대책위가 꾸려져 기자회견이나 집회 등을 하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 수많은 시간 동안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은 언론들이 참 많았다. 지역에선 인터넷신문 <충북인뉴스>가 지속적인 현장 보도를 했고, 지역일간지들은 철저히 침묵하다가 합의 사실을 보도하는 수준에 그쳤다. 방송사들은 대부분 단신으로 보도했고, KBS청주만이 관련 리포트 보도를 여러 차례 했다. 지역언론사의 일을 보도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을 이해해도 소극적인 보도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보도를 하려고 애써온 언론노동자들의 노력도 지나칠 수 없다.

지난해 충북민언련은 언론과 노동 기획강연을 준비했다. 2003년 창립 이후 충북민언련은 한국 언론의 여러 문제들을 되짚어 보는 강연을 여러 차례 진행해왔다. 부끄럽게도 노동 관련 강연은 처음이었다. 한국언론이 노동자를 얼마나 철저하게 지우고 있는지를 냉철히 되짚어 보고자 했다. 우리의 현실은 처참할 정도였다. 노동 관련 보도량 자체가 적을뿐더러 그나마 나오는 보도들도 노동자를 부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이를테면 파업으로 불편만 끼치는 존재들로 보도하는 식이었다. 노동자의 죽음을 이벤트처럼 보도하는 언론들, 그나마도 보도하지 않는 언론들 속에서 노동자의 권리나 입장을 보도해주길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다. 언론과 노동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좌담회도 가졌다. 참가자들 모두가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우리가 더 언론에 요구해야 한다고, 언론이 노동 관련 보도를 제대로 하는지 미디어비평도 필요하다고 말이다. 모두 충북민언련이 해나가야 할 일들이다.

이렇게 뜻을 모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이재학 PD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떠난 지 벌써 2년이다. 뒤늦게나마 노동자성을 인정받았고, 그가 그토록 원했던 다른 비정규직 동료들의 처우개선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재학 PD는 우리 언론계에 커다란 질문을 던졌다.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프리랜서라 불리는 수많은 이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방송은 버텨내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도 알게 했다. 그들의 뼈를 갈아 넣은 콘텐츠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소비해온 시청자들에게 방송계의 왜곡된 현실을 알렸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방송계의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나아졌느냐에 대한 객관적 지표를 확인할 수도 없을 만큼 현실은 더디기만 하다. 방송작가들도 법으로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았지만 방송사들은 철옹성처럼 꿈쩍도 안한다. 최근 KBS전주에서 일하던 방송작가도 방송사와 맞서 싸우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가 각자의 현장에서 관행에 맞서고 있다.

이재학 PD가 있었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달라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때마침 KBS청주가 시사프로그램 <한끼시사>에서 이재학PD사건 그 이후를 취재하고 있다고 해 반가웠다. 그를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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