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2022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시행됐다. 언론에는 법 시행을 앞두고 대비책을 마련하느라 바삐 움직이는 기업들의 모습이 보도된다. 그러나 여전히 법 시행을 비웃듯 광주에선 신축아파트가 붕괴됐고, 포스코에선 노동자가 사망했다. 늘 그래왔듯이 노동문제는 50년 전 전태일열사와 같이 누군가의 목숨과 맞바꿔야만 해결된다. 그래야 겨우 눈길 한 번 더 가는 게 현실이다.

어느 현장에서 누군가 일하다 목숨을 잃었다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무슨 생각부터 할까? 우리가 ‘산업재해’라 부르는 그 딱딱하고 기계적인 말 속엔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져 있다.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이 잘 되기 위해서 사람이 죽는 일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고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논하지 않더라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누군가는 감수성의 문제로 또 어떤 이는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하지만, 더 큰 문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제는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재사고는 한국사회에서 심화되는 ‘불평등’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의하면 2020년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자 중 81%가 5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발생했다. 그중 청년 비율(18~39세)은 약 12%다. 고용형태(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른 통계는 공표되지 않았지만, 10대 건설사 산재승인 자료에 의하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거나 다친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약 7배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평택항 이선호, 새해 들어 한국전력에서 결혼을 앞두고 감전으로 목숨을 잃은 30대 노동자, 지난주 포스코에서 입사한 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아 중장비에 부딪혀 숨진 30대 노동자가 그들이다. 모두 하청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다.

20~30대 젊은 청년들은 어쩌다가 안전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것일까?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고 한 것처럼 목숨에도 다른 가격표가 붙는 것일까?

구직난 속에서 일용직, 용역 등 단기간 비정규직으로 노동현장에 뛰어드는 청년들은 증가해도 이들에 대한 안전시스템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위험하고 힘든 업무는 외주화하고 그중에서도 더 위험한 업무는 일용직 청년에게 떠넘겨지기 때문이다. 불법 하도급에 안전교육은 전혀 없고 안전장비조차 지급하지 않는 환경에 내던져지는 까닭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란 점이다. 본격적으로 플랫폼 산업이 발전하면서 플랫폼 노동에 뛰어드는 청년이 증가한다. 산재로 인한 청년 사망원인의 1위가 플랫폼 배달노동이라고 한다. 더 놀라운 점은 이들이 주로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종사하기 때문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청년들의 안전은 산업형태 변화로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을 맞닥트렸다. 그래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고, 지긋지긋한 ‘현실성’이 청년·비정규·영세사업장 노동자의 ‘목숨’보다 중요하다면 이는 단연코 ‘불평등’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두고 언론의 공포감 조성으로 법 취지가 퇴색되는 사이 기업과 경영전문가들은 앞다투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업자들이 과도하게 걱정하지 않도록 유의해달라”고 앞장서서 경영계를 걱정했다. 법 시행과 관련한 정부의 입장과 태도가 뻔하게 예상된다.

어느 나라든 정부 개입 없이 기업이 먼저 책임지는 일은 없다. 산재는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해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정부와 기업의 의무, 책임이 무엇인지 논의해야 한다.

안전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 국회는 청년·비정규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포함해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모든 노동자가 산재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검토해야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생명이다. 부동산과 주식은 영혼까지 갈아 넣으며 값어치를 매기고 있으면서, 특히 청년·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숨은 헐값이다 못해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불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산재는 그들의 잘못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청년들의 부주의한 행동이 원인이라는 인식을 강요하지 말고, 위험한 일을 거부하는 것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라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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