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만의 NOT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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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 안전운임제

화물자동차는 현재 안전운임제를 시행하고 있다. 고속도로 사망사고의 50%가 화물자동차 연관사고이고, 화물노동자의 밑바닥 운임이 과로·과적·과속 등 위험 운행으로 이어져 화물노동자뿐 아니라 도로를 이용하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안전운임제를 도입했다.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은 화물차주(화물차 노동자)에 대한 적정한 운임을 보장해 과로, 과속, 과적 운행을 방지하는 등 교통안전을 확보하는 목적을 갖는다. 화주, 차주(화물차 노동자), 운송사 등 이해당사자와 정부가 지명하는 공익위원이 참여해 화물차 안전운송원가에 인건비와 적정이윤을 더해 매년 새로 결정하고 국토부 장관이 공표한다. 이처럼 안전운임제는 한마디로 말해 화물차 분야의 최저임금제, 표준운임이다.

그런데,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는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출발했다. 안전운임제 시행 범위 문제인데, 현재 안전운임제 적용 대상이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 운송차로 한정됐고 나머지 화물 운송 차량은 안전운임이 의무가 아니라 권고 수준에 머물게 됐다. 안전운임제가 적용되는 화물차는 전체 영업용 화물차의 6.5%에 불과하기 때문에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가 화물자동차 전체로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게 합의될 당시 화주와 운송사의 반대로 3년만 시행하기로 해서 2022년 말에 안전운임제가 일몰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운임이 불안정해져 다시 과적이나 과로, 과속 같은 위험한 상황과 저임금에 내몰릴 상태다. 그래서 화물연대 등 화물차 노동자들은 일몰 조항을 폐지해서 안전운임제를 장기적으로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전운임제와 특수고용 노동자

안전운임제는 최저임금제와 같이 국가가 개입해서 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민간의 노동시장에서 결정되는 임금수준이 노동공급 과잉 또는 수요독점에 의해 생활임금을 밑돌아 노동자 생계와 안전을 위협할 때, 최저임금제, 안전운임제의 형태로 국가가 임금결정 과정에 개입한다. 화물차 분야에서도 화물차주, 화물운송 노동자의 저임금을 심화 시켜, 과적, 과로, 과속 운행을 구조적으로 부추겨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심대하게 위협했기 때문에 안전운임제가 도입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안전운임제 도입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할 수 있는데, 바로 ‘특수고용’이라는 점이다. 노동자임에도 노동자성이 부정되고 있는 특수고용직의 경우, 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기 때문에 임금교섭력이 상대적으로 낮고, 집단교섭이 아니라 개별적인 교섭 또는 개별적 계약에 따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저임금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안전운임제는 특수고용 특히 플랫폼 노동에 적용할 수 있는 임금결정방식이다. 화물차는 물론이고 배송 라이더, 택배기사들은 모두 운수·운송이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다. 회사의 직접 소속인지 지배종속관계가 불분명하고 운임, 임금 결정도 개별적이거나 제각각 이루어져서 저임금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돼 왔다.

배송 라이더 노동자들도 최근 안전운임제를 제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플랫폼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은 “안전운행을 위한 안전배달료 등 배달료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며 “안전배달료는 화물업계의 안전운임제와 같이 협의체를 구성하고, 배달노동자 생계 및 업무비용을 고려한 적정배달료와 수수료 체계를 정하자”고 요구한다.

노동시장 사회화

자본주의가 고도화할수록 전반적인 임금수준의 저하에 따라 ‘최저임금제’ 필요성과 그 결정이 중요해지듯, 각 업종별로도 안전운임제와 같이 국가의 개입으로 일종의 ‘표준임금’을 결정하는 구조가 더 확산할 것이다. 특히 플랫폼, 특수고용과 같이 회사의 지배종속관계가 모호해 사용자성과 노동자성이 인정되지 않는 영역이 확장하고 일대일 고용관계에서 다대다의 관계로 변형되는 플랫폼 노동의 경우 임금결정 방식에 대한 모순과 갈등이 항상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형태의 고용관계가 확대할수록 노동자의 투쟁 양상에 따라 노동시장, 임금결정에 대한 국가개입도 확장할 것이 예상된다.

이처럼 임금결정의 국가 개입은 민간에서 임금이 결정되는 ‘노동시장을 사회화’하는 것과 같다. 즉, 노동시장 임금결정의 국가개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노동시장을 사회화하는 효과를 본다. 그에 비해 최근 제기되고 있는 국가고용보장제도는 국가의 일자리 공급을 통해 노동시장을 직접적으로(!) 사회화한다.

그런데, 미국 민주당 등 케인스주의 진영에서 국가고용보장은 경기 위축 시 민간고용이 줄어들 때 한해서 국가가 고용을 보장하는 고용 완충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국가고용보장 일자리는 임시직이고 임금수준도 기존 최저임금에 불과하다. 시장 일자리를 규율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닌 시장의 마중물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대표적으로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한국판 뉴딜 사업의 일자리 창출이 그렇다.

그러나 국가고용보장제도는 단순하게 전체 국민의 취업을 보장한다는 취지를 넘어서 더 적극적으로 민간 노동시장 일자리의 임금수준을 규율하고 통제하는 데 목적이 있다. 왜 그렇게 되냐면, 국가가 보장하는 일자리의 임금수준이 민간의 최저임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장 일자리가 최소 현재의 중위소득 임금(약 300만원)을 보장한다고 하면 이보다 낮은 민간의 일자리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모두 국가보장 일자리로 옮길 것이다.

임금수준이 낮은 민간 일자리는 사라지고 국가보장 일자리의 임금수준이 민간 일자리의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국가고용보장제도는 안전운임제, 최저임금제와 같이 각 업종별 표준임금, 기준임금을 규율하고 노동시장을 대체해 국가와 사회가 전체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고용보장제도를 통해 실질적으로 노동시장을 사회화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임금수준이 높아야 하고, 노동시장의 일자리를 규율하고 대체할 만큼 충분하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공급되어야 한다.

안전운임제 상설화와 확장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상설화 및 적용 확대 투쟁은 단순히 임금 안정화만이 아니라 ‘노동시장 사회화’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인 노동시장 내의 임금결정을 넘어서 제도적, 사회적으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노동시장 사회화’로의 진전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고용보장제도로 가는 교두보로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안전운임제는 화물자동차 내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특수고용과 플랫폼 노동 영역의 분명한 요구로 확장되어야 하며, 저임금이 구조화된 영역에서 임금결정방식의 보편적 요구로 상승할 필요도 있다. 물론 그 출발은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상설화 투쟁의 승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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