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사람들이 흔히 무심코 하는 말들은 대개 이 사회의 ‘정상성’을 반영한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은연중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말이다.

노동인권 교육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이 행복하게 살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물을 때가 있다. 어느 학교에서나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답 중 하나가 남학교에선 ‘여친’이고 여학교에선 ‘남친’이다. 나는 학생들의 대답을 하나하나 칠판에 적다 말고 돌아서서 다시 묻는다. “여러분이 말하는 여친(남친)은 연인을 말하는 거지요?” 그리고 “남자라고 연인이 꼭 여자일 필요는 없으니까”하면서 학생들이 말한 여친을 연인이라 고쳐 적는다.

요즘 학생들은 나의 이런 행동을 그다지 어색해하지 않지만 그럴 때, 어쩌다 한 번씩 표정이 환해지는 학생이 있다. 당신이 무심코 연인이란 말에서 ‘여친’ 혹은 ‘남친’을 떠올리고 있다면 당신은 필시 이성애자일 것이다.

40대(?) 이상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사람에게 당연히 아내나 남편이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면 당신은 현재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거나 그 나이엔 배우자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대체로 싱글인 사람에게 “남편 /아내는 뭐 하는 분이세요?”같은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결혼한 적 없는 데요”라거나 “사별했어요”, 혹은 “이혼했어요”라는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사람 말이다.

물론, 이런 대답을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듣는 사람도 아무렇지 않은 사회가 좋다. 그러나 이런 말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게 더 좋다.

기혼임을 알고 있는 상대에게 당신이 “애는 몇이에요?”라거나 “애들은 몇 살이에요?”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자녀가 있는 사람이거나 적어도 결혼을 했으면 당연히 아이를 낳는 거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 사회엔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낳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질문에 아이가 없다고 대답했을 때 작동하는 편견들은 여기에 더해 또 온갖 말들을 낳는다. 그래도 애는 있어야 한다는 둥, 더 늦기 전에 하나라도 낳아야 한다는 둥, 애가 없어서 자유롭겠다는 둥,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둥.......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식이 없는 가정의 사연이나 그런 부부의 실제 삶을 함부로 재단하는 경향이 있다.

늦은 저녁시간 회식자리에서 “이 시간에 이렇게 밖에 있으면 애들은 누가 봐요?”라는 질문을 자녀가 있는 데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필시 남성일 것 이다. 내 자식을 대신 봐줄 것도 아니면서, 직장에서의 회식에 빠지면 빠진다고 또 뭐라 할 거면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남성이다. 더구나 같은 시각, 자기 아이들을 지금 누가 어떤 희생으로 돌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남성들이 종종 이런 질문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글에 언급한 ‘엄마 밥’도 이 사회가 강요하는 ‘당연한 것’ 중의 하나다. 엄마가 해준 집밥, 엄마가 싸준 도시락, 엄마가 빗겨준 머리, 엄마가 입혀 준 옷, 엄마가 해준 ○○....... 만일 당신이 이런 말을 무심코 쓰고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유년기에 당신을 충분히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엄마가 있었던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이세상의 자식들이 모두 그런 엄마를 가진 건 아니다. 어떤 엄마는 자식이 장성하기 전에 죽었고, 어떤 엄마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집을 나갔고, 어떤 엄마는 아팠고, 어떤 엄마는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돈 버는 일만으로도 이미 지쳐 있다는 사실을 당신이 모르는 것뿐이다.

이 사회가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 이런 말들은 다 적자면 끝도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나이가 차면 결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 왜 동성애자들의 결혼은 극구 반대하는지, 결혼으로 이루어진 가정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면 서 입양아, 비혼모나 비혼부, 한부모 가정, 재혼 가정의 아이들에 대해서는 왜 대단한 편견이 양산되는지, 아이들은 엄마가 돌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면서 왜 그 엄마들의 노동에 아무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지......, 정작 당연한 것들은 이런 질문들 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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