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8 세계여성의날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기획기사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조 서울본부 구로구자원순환센터분회 인터뷰

시대를 막론하고 여성의 노동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어왔다.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해고목록에 오르고, 요구사항을 말하면 반찬값 벌며 바라는 게 많다는 무시를 당하기 일쑤다. 남성과 똑같이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단단한 유리천장에 막혀 올라가는 남성들을 바라봐야 한다. 임신과 육아, 출산이라는 생애주기를 겪으며 경력이 끊어진 여성에게 남는 선택지는 이전보다 더 불안정하고 불평등한 일자리다. 

민주노총은 다가오는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전국노동자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여성노동자대회는 드러나지 않던 여성노동자의 투쟁을 가시화하고, 여성노동 과제와 요구를 제시하는 주요한 투쟁의 장이다.  <노동과세계>도 이에 맞춰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더럽거나 어렵거나 위험한. 그러나 사회가 굴러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노동들. 이른바 ‘3D직종’이라 불리는 노동의 주체는 언제나 남성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언제나 그곳에 있던 여성노동자의 존재는 가려졌다.  

본지가 만난 여성들은 자신이 불안정·저임금의 노동자라는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바뀌어야 할 것은 노동 행위 자체가 아니라, 임금과 복지, 편의시설같은 조건이라고 했다. 그리고 선언했다. 이것도, 이것은, 이것이, 여성의 노동이라고.

첫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조 서울본부 구로구자원순환센터분회 조합원들이다.

 

박 조합원과 김 조합원은 서울시 구로구 항동에 위치한 자원순환센터에서 ‘재활용 선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자원순환센터 인근에 거주하며, 각각 가정주부와 매장 관리직으로 지내다 지역주민을 우대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대부분 자녀를 어느정도 키운 여성들이다. 40대면 어린 편이고, 50대 중반 이상이 다수다. 동료들도 모두 순환센터에서 인근에 살면서 낮에는 분류작업을 하고, 퇴근하면 집안일을 한다.

채용공고 우대사항에는 지역주민 우대와 함께 ‘주 5일 근무/토요일 가능자 우대’라고 적혀있었지만, 면접 당시 관리자는 별 일 없으면 토요일에도 나와야 한다는 뉘앙스로 말했다. 물론 주말 출근을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오지 않으면 관리자의 눈치가 보이는데다가, 일주일에 다섯 번만 일해서는 먹고살기도 빠듯하다. 무엇보다 주말 하루만 쉬어도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불어나있을지 잘 알기에, 대부분이 웬만하면 토요일 출근을 하는 편이다.

이들의 일은 1차 선별이라고도 불린다. 운반된 쓰레기를 가장 처음 맞이해 종류별로 나누어 광학선별장으로 보내는 작업이다. 1차 선별장에는 14명이 일하는데, 운반된 쓰레기를 컨베이어 벨트에 흩어놓는 작업, 다시말해 ‘힘 쓰는 일’을 맡은 직원 두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여성이다. 컨베이어에 줄지어 서서 쓰레기와 재활용으로 구분하는게 업무다. 다른 작업장과 달리 세심한 작업이 필요하다. 여성들이 비교적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어디서 왔는지, 뭐하다 왔는지 모를 오만가지 쓰레기들이 뭉쳐있다 보면 하루에도 수번씩 위험한 순간들이 생긴다. 자원순환센터는 ‘쓰레기장’이 아니라, 말그대로 재활용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어느정도 걸러진 쓰레기들이 들어오는 게 맞지만, 실상은 아무 쓰레기나 들어온다.

‘금은 안 버리니까, 금 빼고 다 나온다’는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다. 검은 봉투를 열면 두 눈 시퍼렇게 뜬 ‘마네킹 대가리’가 튀어나온다던가, 죽은 고양이나 쥐 시체를 마주하는 건 애교 수준이다. 화학적으로 위험한 물질은 정말 고역이다. 여차하다 프린터 토너라도 터지는 날에는 하루종일 피부병과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잉크를 묻힌 채 쓰레기를 걸러야 한다.

크고 작은 화재가 계속 일어난다. 지난해 3월에는 쓰레기 더미에서 아주 큰 불이 나서 소방관 143명, 소방차량 42대가 투입된 일이 있었다. 불은 4시간 만에 꺼졌다. 센터는 완전히 지상과 단절된 지하공간이라 진입이 어려웠던 탓이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여기서 정말 자칫하면 개죽음 당한다’는 두려움이  불편한 손님처럼 이따금씩 온다. 라이터, 배터리나 압축된 부탄가스 통이 많다보니, 사소한 화재가 몇십 건은 넘는다.

다치기도 많이 다친다. 특히 날카로운 것에 찔려서 피가나는 일이 잦다. 입사 후 한달이 안 됐을 때 깨진 병을 만지다가 찢어져 열일곱바늘을 꿰매야 했다. 안전하게 폐기처리되지 않은 가위, 칼, 고철, 의료기기, 낚시바늘이나 작두까지. 산재는 흔하다. 실핏줄과 함께 신경이 끊어진 적도 있다. 여자 손이 이게 뭐냐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칼날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지하에 지어진 곳이다보니 공기청정기를 많이 설치한다고 해도 지상만큼 질좋은 공기를 마시기는 힘들다. 방진마스크나 KF94 마스크를 써도 일이 끝날 때 즈음이면 마스크 모양을 따라 얼굴에 검댕이 묻는다. 마스크를 벗어도 코 양 밑으로 무언가 묻어있다. 혹시 폐 안에 안좋은 게 들어가는 건 아닌가 찝찝하다. 분기별로 실시하는 소음·분진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니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 얼굴의 검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토록 험한 노동현장을 설명할 때면, 그래도 돈은 많이 주니까 괜찮지 않냐는 반응이 으레 뒤따른다. 최근에는 재활용 선별센터를 다룬 기사가 났었는데, 그 기사에도 ‘그래도 저 사람들 고연봉자들’이라는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선별원들은 기본급으로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정말 돈이라도 많이 주면 억울하지나 않지 싶다가도, 이런 일에는 마땅한 대가가 따를 것이라는 얘기라고 생각이 들면 한켠 누그러진다.

근 몇 년간 중앙정부와 지자체 사이에서는 기존 ‘폐기물 관리’ 등의 행정 용어를 ‘자원순환’으로 바꿔 부르는 게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잡았다. 기후위기를 늦추기 위한 탄소배출 감축이 전인류 생존의 핵심 주제로 떠오르고, 특히 수도권의 경우 쓰레기 매립지 고갈에 따른 ‘쓰레기 발생지 처리 원칙’과 같은 쟁점들이 이제는 환경을 넘어 정치 사안으로 무대를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자원의 순환’이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이 논의되고 회자해야 할 사회적 과제다.

그러나 정작 ‘자원순환’의 핵심 실무를 보고있는 이들의 처우는, 그 중요도와 반비례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최저임금인 기본급이 이를 증명한다고 했다. 구로자원순환센터의 진짜 사용자인 구로구청이지만, 엠엔테크㈜에 센터 운영을 위탁해 관리하고 있다. 처음 위탁업체가 자원순환센터 노동자를 대했던 수준은 ‘바닥’이었다고 회상했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져 학생들도 견학 오고, 환경부장관도 기자를 대동해 답사할만한 수준의 사업장이 이 정도라면, 다른 곳은 어떨는지 가늠도 어렵다.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임금 수준과 노동조건이지만, 이만큼이나 쟁취해 낸 것은 2019년 11월 센터에 노동조합이 생기고나서 부터다. 임금교섭 결렬 후 지노위까지 갈만큼 크게 투쟁했던 경험들은 자부심으로 남았다.

궁극적인 목표인 지방정부(구로구청) 직고용을 이뤄내진 못했지만, 몇가지 조건에 따른 수당 지급과, 연차 보장을 얻어낸 것은 소중한 성과였다. 노동자들을 갈 데 없고 일할 데 없는 사람들 취급하던 관리자도 민주노조의 등장 이후 태도를 다시 갖췄다.

‘쓰레기 만지는 일’을 한다고 하면 달라지는 시선들을 잘 안다. 가족들도 그 위험한 일을 어떻게 계속하냐고 뜯어 말린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것은 이 일에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쓸모를 다하여 버려진 것에서 가능성을 찾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열악한 조건이야 노조를 통해 앞으로 계속 바꿔내면 될 일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