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이주자·여성 일제히 “유력 대선후보 공약에 약자·소수자 얘기 없어”
“이주노동자는 유권자 아니라서? 반려동물은 유권자라 관련 정책 나오나”
성소수자 차별 법조항 개정 의사 묻자, 1·2위 후보들 ‘추진불가’, ‘나중에’

‘20대 대선 노동의제 실종 규탄 민주노총 기자회견’이 23일 오전 10시 열렸다. ⓒ 조연주 기자
‘20대 대선 노동의제 실종 규탄 민주노총 기자회견’이 23일 오전 10시 열렸다. ⓒ 조연주 기자

20대 대선을 꼭 2주 남겨둔 2022년 2월 23일, 득표를 위해 혐오와 차별을 방관하거나 부추기는 거대 정당들에 억눌릴대로 억눌린 약자·소수자들의 분노가 하루종일 터져 나왔다.

23일 하루 동안은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가장 먼저 오전 10시, 서울 중구 정동길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노동의제 실종 규탄 민주노총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들은 ‘노동이 사라진 퇴행의 20대 대선 속 반복되는 죽음의 일터에 대선후보는 답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노총은 2주 전 각 대선 후보에게 노동정책을 질의해 캠프로부터 제출받은 내용을 이날 공개했다. 민주노총은 이재명 후보에게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는 부족한 답변을 받았다고 했고, 윤석열·안철수 두 후보는 응답하지 않았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의제에 대해서는 유력한 보수 양당의 후보들의 입이 자물쇠로 단단히 채워져 있다”고 분석했다.

사회적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두달간 택배파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어떤 정치권도 찾지 않는 택배노조의 현장을 최대근 서비스연맹 부위원장이 설명했다. 최 부위원장은 “그들에겐 택배노동자가 국민이 아니고, 유권자가 아니란 말인가”라며 “왜 사회적 합의를 위반하고 있는 재벌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고 합의를 지키라고 하는 노동자들에게 이럴 수 있나. 정말 그들에게 노동자는, 특히 자신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는 국민이 아닌 것 같다”고 분노했다.

강한수 건설산업면맹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전체 산업의 7%인 건설산업에서 50%가 넘는 산업재해 사망자가 나오고 있는데도, 유력 대선후보와 거대 정당들은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조차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25일 열리는 노동자 건강권 포럼에 4개 정당을 초청했지만, 여전히 두 정당은 불참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로부터 한 시간 뒤인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는 이주노동자평등연대와 민주노총 등이 공동주최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엄연한 대한민국 구성원으로 존재하지만, 투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대선 정책이 완전히 삭제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송은정 이주노동희망센터 사무국장은 “대선 때는 반려동물에 대한 정책도 쏟아진다. 그러나 반려동물이 투표권이 있어서 정책이 나오는건 아니지 않는가. 천만이 넘는다고 하는 반려동물도 우리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정책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대한민국에서 이주노동자가 들어온 지는 벌써 30년이 지나고 있는데, 도대체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 어떠한지, 정책은 무엇인지 찾아볼 수가 없다”며 “보수거대양당인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에게도,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의 공약에도 이주노동자의 존재 자체가 없다. 지속적으로 착취와 혐와와 차별, 배제의 대상 그 이상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꾸짖었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는 “주요 야당 후보는 ‘건강보험에 숟가락 얹는 외국인’이라는 잘못된 팩트를 내세워 이주민에 대한 혐오와 부정적 인식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라며 “여성부문 정책질의 조차 답변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정책을 기대하기는 무리일 수도 있는가”라며 비꼬았다.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보도자료 갈무리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보도자료 갈무리

때마침 여성들의 분노도 이어졌다.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이 오후 2시께 ‘윤석열 후보에게 묻는다 '채용 성차별'에 좌절하는 청년 여성은 유권자가 아닌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낸 것이다.

공동행동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채용 성차별 현실을 왜곡하는 TV광고를 통해 또다시 ‘여성혐오’ 조장에 나섰다”며 “최근 공개된 윤 후보의 TV광고를 지목했다.

이들은 “광고는 ‘여성할당제’ 때문에 남성이 채용 과정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성차별주의자들의 근거 없는 주장을 연상시킨다. 당대표(=이준석)가 앞장서서 “여성할당제 폐지”를 외치는 정당의 광고답다”고 규탄했다.

덧붙여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후보는 채용 성차별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으며 개선할 의지도 전무하다고 전 국민에게 광고하려는 것인가”라고 한 뒤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된 대한민국에 여성의 자리는 없다고 공표하려는 것인가. 윤 후보에게 청년 여성은 유권자가 아닌가”라고 했다.

엠네스티 홈페이지 갈무리
엠네스티 홈페이지 갈무리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발표한 7대 인권 의제 캠페인 내용도 화제가 됐다.한국지부는 ‘성소수자 권리’와 ‘젠더 평등’을 비롯한 7대 인권의제를 대통령 후보에게 물어 제출받은 답변을 발표했다.

한국지부는 각 후보들에게 성소수자(LGBTI)권리를 위해 공개지지를 표명할 수 있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이재명 후보는 ‘추진불가’, 윤석열 후보는 ‘일부추진’이라고 답해 논란이 됐다. 이재명 후보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 입장을 밝혔고, 윤석열 후보는 ‘일부추진’하겠다고 답했다.

군형법 92조의 6에 따르면, 군대에서 남성간 성관계는 동의 여하에 관계없이 처벌받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성소수자 차별적이라는 지적을 오랜 시간 받고 있는 이 조항을 폐지할 의사를 물은 질문에는, 이재명 후보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추진불가’라고 답했고, 윤석열 후보과 ‘일부추진’이라고 답했다.

‘강간’의 정의를 ‘동의 여부’에 주어 수정할 의사가 있는지 물은 것에는, 이재명·윤석열 후보 모두 ‘일부추진’이라고 답했다. 안철수 후보는 이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유력 후보들의 이같은 답변을 두고,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한편으로 LGBTI 권리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할 수 없고 전형적인 성소수자 차별 악법인 군형법92조의6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