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나무 김진숙 복직행사, 25일 11시 부산 영도 HJ중공업 광장
"김진숙에게만 굳게 닫혔던 문 오늘 열려···여러분, 미래로 가시라"

소금꽃나무 김진숙 복직행사가 25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 HJ중공업 사내 단결의 광장에서 진행됐다. ⓒ 조연주 기자 
소금꽃나무 김진숙 복직행사가 25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 HJ중공업 사내 단결의 광장에서 진행됐다. ⓒ 조연주 기자 

김진숙 동지, 민주노총 지도위원, 해고노동자 ··· ···.  수많은 이름으로 불리우던 김진숙이 2022년 2월 25일, 복직한 노동자로서 37년간을 기다려온 출근길이자 마지막 퇴근길에 올랐다.

김진숙 ‘복직자’가 수많은 이들의 축하 속에 HJ중공업 광장의 주인공으로 섰다. 25일 오전11시 부산 영도 HJ중공업 사내 단결의 광장에서 소금꽃나무 김진숙 복직행사가 열렸다.

21살의 나이로 대한조선공사 영도조선소에 입사한 김진숙은 1986년 노동조합 대의원에 당선됐다. 엄혹하던 독재정권 시절, 김진숙은 비인간적 노동환경을 규탄하고 어용노조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붙였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한진중공업은 이시간 동안 김진숙이 ‘무단결근’했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이후 2003년 동지들의 죽음으로 투쟁해 20명이 복직될 때에도, 2011년 309일간의 고공농성과 희망버스 운동으로 한진중공업 해고자 전원에게 복직 결정이 내려진 때에도, 김진숙은 해고자로 남아있었다. 2020년 정년을 결국 넘기며, 법적으로 복직이 어려워 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사기도 했다.

그러다 2022년 동부건설 컨소시엄에 인수된 회사가 HJ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경영진이 들어서며 노사가 전격적으로 김진숙의 복직에 합의에 이르렀다. 기나긴 37년의 투쟁 끝에 김진숙은 해고자가 아닌 명예복직자로 남게 됐다.

이날 행사에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을 비롯한 영화인과 예술인·종교인·진보정당인·부산시의원·인권활동가 등이 참석했다, ‘김 지도’의 연대와 응원에 힘 입었던 수만은 이들이 모여 김진숙의 복직을 축하했다.

오전 11시, 언제나 서울 희망버스 1호차 차창을 도맡았던 故 백기완 선생의 영정과, 문정현 신부가 탄 서울발 희망버스의 동지들이 도착하자 마침내 행사가 시작됐다.

소금꽃나무 김진숙 복직행사가 25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 HJ중공업 사내 단결의 광장에서 진행됐다. 문정현 신부가 발언하고 있다. ⓒ 조연주 기자 
소금꽃나무 김진숙 복직행사가 25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 HJ중공업 사내 단결의 광장에서 진행됐다. 문정현 신부가 발언하고 있다. ⓒ 조연주 기자 
소금꽃나무 김진숙 복직행사가 25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 HJ중공업 사내 단결의 광장에서 진행됐다. 양경수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조연주 기자 
소금꽃나무 김진숙 복직행사가 25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 HJ중공업 사내 단결의 광장에서 진행됐다. 양경수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조연주 기자 

문정현 신부와 송경용 신부가 축하 발언했고, 송경동 시인이 이날을 위해 쓴 <이곳이 그곳인가요>를 낭독했다. 김정우 쌍용자동차 전 지부장과 문기주 쌍용자동차 전 정비지회장도 ‘흘러’를 불렀다. 임정득 문화노동자도 무대에 올라 노래했다. 홍문기 HJ중공업 대표이사도 김진숙 위원에게 꽃다발과 메달을 선물했다.

문정현 신부는 “김진숙 복직이라는 이름으로 한 발 떼기를 뛴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렇게 해야 된다는 표본이 됐다”며 “자본이 아무리 세다 해도 우리 노동자에게 굴복한 것 아닌가. 앞으로는 더 쉬울 수 있다. 우리 노동 해방을 위해서 한 발짝 뛰었으니, 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한 발짝 더 뛰어서 그야말로 ‘노동’을 이루자”고 외쳤다.

이날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대표해서 대신해서 동지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민주노총에게, 노동자들에게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을 보여준 김진숙 동지께 감사하다” 고 한 뒤 “‘김진숙은 2월 25일자로 복직한다’, ‘복직한다’ 이 네 글자를 합의서에 받기 위해서 37년이 걸렸다. 숱한 어려움도 고통도 좌절도 희망도 함께 있었던 시간이리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양 위원장은 “오늘 김진숙 동지의 복직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지표다. 해고노동자라는 이름으로 37년을 살아야 했던 김진숙 동지의 삶은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하나의 등대가 됐다”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소금꽃나무 김진숙 복직행사가 25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 HJ중공업 사내 단결의 광장에서 진행됐다. ⓒ 조연주 기자 
소금꽃나무 김진숙 복직행사가 25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 HJ중공업 사내 단결의 광장에서 진행됐다. ⓒ 조연주 기자 

"김진숙에게만 굳게 닫혔던 문 오늘 열려···여러분, 미래로 가시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차별금지법', 목숨 건 사람들 외침 들어달라

김진숙은 자신을 위해 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를 지켜보고, 발언을 경청하고, 울고 웃으면서도 틈틈이 직접 쓴 연설문을 고치고 다시 썼다. 자그마치 37년, 일제강점기보다도 긴 세월동안 투쟁해오던 김진숙이 복직하며 하고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김진숙이 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김진숙은 “김진숙에게만 굳게 닫혔던 문이 오늘 열렸다. 정문 앞에서 단식을 해도 안 되고, 애원을 해도 안 되고, 피가 나도록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오늘에야 열렸다”며 “37년이다. 검은 보자기 덮어 씌운 채 어딘지도 모른 채 끌려간 날로부터, 어용노조 간부들과 관리자들 수십수백 명에게 아침마다 만신창이가 된 채 공장 앞 도로를 질질 끌려다니던 그 살 떨리던 날로부터, 37년이 지났다”고 한 뒤 “저의 첫 노조이자 생애 마지막 노조인 금속노조 한진지회 조합원 동지 여러분, 여러분들의 동지였음이 세상에 가장 빛나는 명예이고 가장 큰 자랑이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다. 박창수 위원장님이 입고 끌려가던 작업복,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마지막까지 입었던 작업복, (곽)재규형이 도크 바닥에 뛰어내릴 때 입고 갔던 작업복, 강서의 시신에 입혀졌던, 그리고 분열의 상징이었던 이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다”며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시라. 더 이상 울지 않고 더 이상 죽지 않는 그리고 더 이상 갈라서지 않는 이 단결의 광장에 조합원들의 함성으로 다시 꽉 차는 그 미래로 거침없이 당당하게 가시라”고 당부했다.

소금꽃나무 김진숙 복직행사가 25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 HJ중공업 사내 단결의 광장에서 진행됐다. ⓒ 조연주 기자 
소금꽃나무 김진숙 복직행사가 25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 HJ중공업 사내 단결의 광장에서 진행됐다. ⓒ 조연주 기자 

김진숙 복직자는 HJ중공업의 새로운 경영진들을 양해 “단 한명도 자르지 마시라, 어느 누구도 울게 하지 마시라, 하청 노동자들 차별하지 마시고 다치지 않게 해달라. 그래야 이 복직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신념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굴종할 수 없어 끝내 버텼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이념이 굳세서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같은 꿈을 꾸었던 동지들의 상여를 메고 영도바다가 넘실거리도록 울었던 그 눈물들을 배반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기억해달라”고 했다.

이어 “정치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린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하루 6명의 노동자를 죽여온 기업주들이 아니라 유족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어제 동료가 죽은 현장에 오늘 일하러 들어가는 노동자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차별하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성소수자·이주노동자·장애인·여성들, 그들이 목숨 걸고 외치는 말을 들어야 차별이 없어진다”고 강조했다.

동일방직·청계피복·YH 등 7080년대 해고노동자들과, 부산지역 수많은 신발 공장 노동자들을 언급하며 김진숙 복직자는 “30~40년을 해고자로, 위장 취업자로 빛도 이름도 없이 살아온 그 억울한 이름을 이제나마 불러달라.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맺힌 한을 풀어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사히글라스·아시아나KO·건보공단(고객센터)·도로공사 비정규직들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을 씻어달라. 그리고 다시 해고의 위기에 선 대우버스 노동자들 힘내시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김진숙 복직자는 “여러분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세월 37년의 싸움을 오늘 저는 마친다. 먼 길 포기하지 않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긴 세월 쓰러지지 않게 버텨주셔서 고맙다”며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을 크게 외쳤다.

김진숙 발언 전문

김진숙에게만 굳게 닫혔던 문이 오늘 열렸습니다. 정문 앞에서 단식을 해도 안 되고, 애원을 해도 안 되고, 피가 나도록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던 문이 오늘에야 열렸습니다.

37년입니다. 검은 보자기 덮어 쓴 채 어딘지도 모르게 끌려간 날로부터 37년. 어용노조 간부들과 관리자들 수십수백 명에게 아침마다 만신창이가 된 채 공장 앞 도로를 질질 끌려다니던 그 살 떨리던 날로부터 37년입니다. 경찰들이 나서 집을 봉쇄하고 영도로 들어오는 시내버스를 불신검문하고 공장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닭장 차에 군화발로 짓이겨넣던 그 억장 무너지는 날로부터 37년입니다. 훈련소 폐건물에 감금해놓고 돌아가며 감시하던 그날들로부터 37년입니다.

그렇게 생이별한 아저씨들이 보고싶어 눈물 방울마다 아저씨들 얼굴이 맺혀 흐르던 그 사무치던 날들로부터 37년이 흘렀습니다. 그 중 가장 보고싶었던 허 씨 아저씨가 작년 암으로 돌아가시고 그 아드님으로부터 오늘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한 글자라도 아저씨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퇴직금과 저축으로 유인물을 만들고 산복도로 골목골목 집집마다 복받치는 이름으로 불러보는 조합원 여러분. 그 집 문에 유인물을 넣고 돌아섰던 그 북받치는 날들로부터 37년만에 여러분들 앞에 섰습니다.

오늘 하루가 제겐 37년입니다. 저의 첫 노조이자 생애 마지막 노조인 금속노조 한진지회 조합원 동지 여러분. 여러분들의 동지였음이 제 생애 가장 빛나는 명예이고 가장 큰 자랑입니다. 심진호 집행부와 여러분의 힘으로 굳게 닫힌 문을 마침내 열어주셨습니다.

이 낡은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박창수 위원장이 입고 끌려갔던 옷,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 위에서 마지막까지 입었던 작업복, 재규형이 도크 바닥에 뛰어내릴 때 입고 갔던 그 작업복, 강서의 시신에 입혀졌던 그 작업복은, 탄압과 분열의 상징이었던 한진중공업 작업복은 제가 입고 가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미래로 가십시오. 더이상 울지 않고 더이상 죽지 않는 그리고 더이상 갈라서지 않는 이 단결의 광장이 조합원들의 함성으로 다시 꽉 차는 그 미래로 거침없이 당당하게 가십시오. 노조위원장마다 감옥으로 끌려가거나 해고되거나 죽었던 한진중공업. 크레인 농성 이후 그토록 복직을 기다리는 2년이라는 시간동안 복수노조 만들어 34살 최강서를 죽였던 한진중공업.

새로운 경영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단 한 명도 자르지 마십시오. 어느 누구도 울게 하지 마십시오. 하청노동자들 차별하지 마시고 다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래야 이 복직은 의미가 있습니다. 신념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굴종할 수 없어 끝내 버텼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이념이 굳세서가 아니라 함께 일하고 같은 꿈을 꿨던 동지들의 상여를 매고 영로 바다가 넘실거리도록 울었던 그 눈물들을 배반할 수 없었던 한 인간이 있었음을 기억해주십시오.

정치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하루 6명의 노동자를 죽여온 기업주들이 아니라, 유족들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어제 동료가 죽은 현장에 오늘 일하러 들어가는 노동자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차별하는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여성들 그들이 목숨걸고 외치는 말을 차별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동일방직, 청계피복, YHN 수많은 70~80년대 해고노동자들, 삼화고무를 비롯한 부산지역 수많은 신발공장 노동자들, 30~40년을 해고자로 위장취업자로 빛도 이름도 없이 살아온 그 억울한 이름들을 이제나마 불러주십시오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맺힌 한을 풀어주십시오. 아사히, 아시아나KO, 건보공단, 도로공사 비정규직들 수많은 노동자들의 눈물을 씻어주십시오.

이제 이 공장엔 11년 전 고철로 팔려나간 85호 크레인이 곧 다시 세워지게 됩니다. 희망버스로부터 11년 변함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함께해주신 희망버스 승객여러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특히 우리 부양지부 동지여러분. 엄동설한 청와대 앞에서 단식하고 절을 하고 글쓰기강좌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하셨던 여러분들. 드라이브쓰루에 함께하시고 청와대까지 함께 걸으셨던 여러분. 문정현 신부님, 그리고 오늘 사진으로 오신 백기완 선생님. 여러분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던 세월 37년의 싸움을 오늘 저는 마칩니다. 먼 길 포기하지 않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긴 세월 쓰러지지 않게 버텨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정리해고 위기 앞에선 대우버스 동지여러분 힘내십시오.

끝까지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