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명인의 동지로 만나는 페미니즘

어떤 사람에게 가족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 혹은 유일한 안식처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가족은 가장 위험한 곳, 폭력과 착취의 지옥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 가족은 든든한 비빌 언덕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가족은 어떻게든 도망치고 싶은 무거운 짐일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족들과 이 사회가 우리에게 주입한 가족에 대한 이미지는 꽤 큰 차이가 있지만, 그 이미지는 우리의 생각과 감수성에 생각보다 강력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성애자 부부와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이 이 사회가 우리에게 주입한 정상 가족이다. 그러나 그 정상성은 그 사실 만으로는 충족되지 않는다. 그러한 가족 안에서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 자식에게 이 사회가 기대하는 역할을 ‘정상적’으로 수행할 때 비로소 ‘정상 가족’이 된다.

이러한 가족의 이미지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광고 등 모든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재현되면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러한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퍼트린다. 특히, 광고에서 가족의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소비와 연결되어 가족이 되게 하는 냉장고, 가족을 이어주는 자동차, 가족 자체로서의 아파트로, 또한 사랑의 화신인 엄마, 희생하는 아버지, 부모의 사랑을 잊은 이기적인 자식으로 가족의 이미지 그리고 이 사회가 기대하는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끊임없이 학습하도록 재현한다.

그러므로 정상 가족은 가난해서도 안 되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죽거나 아파서도 안 되고, 남성은 가장으로서 여성은 모성으로서 부모는 어떤 경우에도 사랑과 희생을 다 해야 한다. 이 사회는 정상 가족이 마치 아주 일반적인 것처럼 묘사하곤 하지만, 사실상 이런 가족은 일종의 신화다. 또 이러한 가족 이데올로기는 ‘또 하나의 가족’을 내세웠던 모 기업처럼 다른 사회적 관계들을 위한 모델로서 기능한다.

광고는 이상적인 가족을 보여주지만, 드라마는 대개 그러한 가족이 정상성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어떤 상처를 입는지를 보여준다. 정상성에서 벗어나면 상처를 입는 것이 정상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가족을 다른 가족과 비교하거나 비교당하면서 종종 상처를 입는다. 상처도 학습된다. 어떤 경우든 이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 가족은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부부의 이혼은 ‘결혼의 실패’가 되고, 이혼 가정은 ‘결손 가정’이 되며, 이혼 부모 중 한쪽과 혹은 결혼하지 않은 부나 모와 함께 사는 자녀는 ‘한부모 가정’의 자녀가 된다. 한편 이러한 정상성이 유지된다면 가족 내부의 폭력, 부정의, 불평등은 그저 사생활이며 남의 ‘집안일’로 취급된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자. 만일 가족이 반드시 혼인이나 혈연만으로 구성되지 않아도 된다면, 만일 이혼이 서로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또 하나의 선택으로 존중될 수 있다면, 아이와 노인과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이 꼭 가족일 필요가 없다면 그래도 이 세상에 가족으로 인한 상처들이 드라마에서처럼 그렇게나 넘쳐날까?

근대 이후의 사회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로 구성된다고 상정되지만,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는 가족, 특히 ‘정상가족’ 형태를 전제로 운영되며, 현재의 노동 체제는 남성을 생계부양자로 간주하는 ‘가족임금’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마련되었다.

그러나 2021년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이제 열 가구 중 세 가구 이상이 1인 가구다. 이는 가족의 기능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또한 이것은 우리에게 주입된 가족의 개념이 본질적인 형식이 아님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가족 형태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이 바로 우리가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한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에 필요한 모든 조력, 한 사람이 일하고 살아가는 과정에 필요한 모든 조력, 한 사람이 지친 몸을 쉬고 아픈 몸을 돌보고 늙어가는 과정에 필요한 모든 조력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꼭 가족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를 위해 국가와 사회는 무엇을 해야하고, 가족이 있든 없든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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