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노조]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군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분회 분회장 박상이

 

민주노총전북본부 가맹산하 조직 인터뷰 <어쩌다 노조> 코너입니다. 노동조합이 불온시되는 사회에서도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해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렸던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군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징계해고 된 박상이입니다.
5년 동안 사업계획과 사업결과보고서 작성 때문에 연말이나 연초에 쉬어본 적이 없었는데, 편하게 5년 만에 휴가를 얻었습니다(웃음)"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군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분회 박상이 분회장
민주일반연맹 민주연합노조 군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분회 박상이 분회장

 

Q. 군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어떤 기관인가요?

"여성가족부 소관 기관으로 군산 시민들을 위해서 생애주기별 맞춤 교육을 진행하고 가족들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 상담을 진행하고 있어요. 다문화 가족들을 위해서는 한국어 교육, 부부교육, 자녀들을 위한 언어발달 교육, 통번역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언어치료, 다문화가족을 위한 사례관리도 하고요. 아이돌보미를 파견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군산 시민들, 다양한 가족들의 안정적인 삶을 지원하는 센터라고 보면 됩니다. 역량강화지원팀, 다문화가족지원팀, 가족 지원팀, 아이돌봄팀이 있어요. 내근직은 총 29명이고, 방문 지도사 선생님들이 현재 7명, 집으로 파견가시는 아이돌보미 선생님들은 190명 정도 됩니다. 굉장히 큰 센터에요."

Q. 그 중에서 어느 분야에서 일을 하셨나요?

"2017년에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상담사로 입사를 했어요. 2020년에 건강가정지원센터와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통합 됐구요. 2018년 12월에 팀장으로 승진 하면서 그 때부터 회계도 담당했고 모든 다문화 사업에 대한 총괄 지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한 이미지가 사실 안 좋았었어요.

Q.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2021년에 군산시에서 위탁기관을 바꿨어요. 그전까지 군산대였고, 호원대 산학협력단으로 바뀌면서 문제가 발생했어요.
사회복지시설은 회계가 투명해야하고, 정해진 회계프로그램이 있는데 센터장님이 그걸 블라인드 처리했어요. 그걸 바로 잡는데 1달 넘게 걸렸어요. 센터장님의 팀 간 차별도 있어요. 아이돌봄팀한테 월 40시간의 시간외 수당을 열어주셨는데 사업하는 팀들은 주말에도 일을 하며 월 60시간 초과해서 일을 해도 16시간 초과근무수당밖에 지급받지 못했어요. 같은 센터 안에서 팀이 다르더라도 형평성과 공정성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이야기했어요. 센터장님이 다시 되돌려 놓겠다고 이야기 했지만 변한 게 없었고, 군산시청에 민원을 넣고 항의도 했는데 여성가족과는 방임적인 태도를 보였구요. 그래서 9월 13일에 내근직들이 노동조합에 가입을 한 거죠."

Q.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처음 만들어진 건가요?

"방문지도사 선생님들이 2018년 8월에 먼저 가입을 하셨고, 아이돌보미도 공공연대노조에 가입하셨어요. 2019년도는 노조와 센터가 치열하게 싸우는 해였어요. 그래서 내근직들은 노동조합 가입에 대한 생각은 전혀 안하고 있었죠."

*민주연합노조와 공공연대노조는 민주일반연맹 소속의 노동조합이다. 방문지도사, 박상이 분회장은 민주연합노조 조합원이다.

Q. 아이돌봄 선생님들과 방문선생님들이 먼저 노동조합에 가입했을 때 어떠셨나요?

"18년도에 그분들이 가입하면서 단체협약이라는 것을 들고 오셨어요. 기존에 있던 팀장이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8월에 그만뒀고, 그 남은 3개월의 공백에 총괄팀장이 구해지지 않아서 18년 12월에 제가 처음으로 단협 현장에 들어갔죠. 선생님들이 그동안의 억울함과 서러움을 표출하시는데 사실은 좀 무섭고,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여가부의 지침대로 운영했을 뿐인데 그게 이분들에게는 힘든 일이었던 거죠. 노동조합 무섭다고 생각했죠. 노동조합에 대한 이미지가 사실 안 좋았었어요.
그런데 내근직들이 21년에 와서 폭력을 겪다보니까 방문선생님들의 노조가입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죠. 그래서 저희 내근직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다시 선생님들을 만났을 때 먼저 노조에 가입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드렸어요. 선생님들이 가입해주지 않았다면 저희가 노조 가입해야 되는 이유도 몰랐을 거고, 어디에 손 내밀어야할지 몰랐을 거예요. 저는 사측의 입장에서 조합원의 입장으로 바뀐 거죠(웃음)"

 

딱 열흘 만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뤄졌죠.

Q. 센터에서 주장하는 해고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두 가지에요. 하나는 직장 내 괴롭힘, 다른 하나는 직권남용에 의한 업무지시.
센터를 퇴사한 두 명과 센터를 대상으로 민원을 넣던 방문 선생님이 저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며 해고를 요구했죠. 그리고 지침 및 사업계획서를 위반한 업무추진, 허위문서 작성, 사적업무 할당 같은 직권남용을 했대요. 이걸 보면서 아, 내가 정말 나쁜 짓을 많이 했나보다 했죠."

Q. 징계해고가 언제 결정이 나게 되었나요?

"12월 7일에 직장 내 괴롭힘을 조사하겠다고 통보받았고, 16일에 인사위원회가 열려 해고라고 결정 났어요. 내용증명은 19일, 일요일에 왔어요. 딱 열흘 만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이뤄졌죠."

Q. 직장 내 괴롭힘 징계절차와 내용도 부당했다면서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 된 내용을 보면 다수 앞에서 폭언, 인견모독, 따돌림이 있어요. 저희 센터를 가보시면 좁은 사무실에 20명 정도의 직원이 바글바글 앉아있거든요. 한 공간에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제가 무슨 말을 하면 다 들리는데 다른 직원들은 제가 폭언한 기억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한 분도 제가 업무를 배제하고 따돌렸다고 하는데요, 인사위원회 때 이유를 물어봤어요. 5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차를 한 번도 안 사준 게 이유래요. 마지막으로 센터에 민원 제기한 방문 선생님이 저를 지목한 것을 직원들이 다 의아해했죠. 싸운 대상이 아니었는데 왜 그 화살이 저에게로 왔는지 말이에요.
센터는 세 분의 진술서만 받고 다른 동료들이 증언하겠다며 인사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한마디도 듣지 않았어요."

Q. 직권남용에 대해서도 억울한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통번역 선생님 중 결혼이주 여성이 계셨는데 제가 이분을 사업에 참여시켰어요. 센터는 이게 문제라고 하는 거고요. 사업비가 부족해서 강사님께 부탁을 드려 강사료를 낮춰서 사업을 추진한 것, 방문선생님들의 교통비를 단협대로 지급한 것도 직권남용이라는 거에요."

Q. 징계를 겪으며 심적으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이런 상황이 되니까 처음에는 정말 인생을 잘못 살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5년 동안 정말 밤낮으로 일했던 것들이 한순간 무너지는 기분이었죠. 하지만 신고한 사람보다 저를 지지해준 동료들이 더 많잖아요."

Q. 다른 조합원들은 괜찮으신가요?

"아니요. 저희끼리 하는 말로는 1차가 박상이 팀장, 2차는 누구, 3차는 누구일거라고 이야기해요. 제가 투쟁하는 것을 포기했으면 그 다음 사람이 징계가 들어갔을 거예요. 얼마 전에 동료 직원이 울면서 전화오더라고요. 팀장님 언제 돌아오냐고, 너무 힘들다고요. 새로 오신 사무국장이 본인의 사업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고, 사업을 진행해야하는데 한 달째 사업계획서를 결제 안 해주고 있대요. 안에 있는 직원들이 더 힘든 상황이에요."

Q. 그동안의 복직 투쟁 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작년 12월 29일에 군산시청 규탄대회를 진행하고 그 뒤로 출근선전전을 진행했어요. 가족센터 앞에서도 출근선전전을 하고 시민 대상으로 선전전을 했어요. 시장님 그림자 시위까지 진행했어요. 시에서 위탁된 센터에서 발생한 부당해고를 해결하라고 요구했죠. 3월 2일에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로 인정했어요. 그날은 동료들과 정말 축제날이었죠. 그리고 3월 3일날 시장님하고 면담을 했고요. 시청과 여성가족부에 결과도 나왔으니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달라고 요청을 한 상태에요. 응답이 없으면 다시 싸워야죠(웃음)

2021년 12월 29일, 군산시청 앞에서 군산시가족센터의 부당해고·불법비리 묵인방조하는 군산시청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2021년 12월 29일, 군산시청 앞에서 군산시가족센터의 부당해고·불법비리 묵인방조하는 군산시청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Q. 새로운 수탁기관(호원대학교 법인)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말씀 부탁드려요.

"이전 수탁기관인 군산대에서는 자부담으로 법인전입금이 매해 2천만 원씩 들어왔어요. 그런데 호원대는 자부담이 0원이에요. 우리 센터는 보조금으로만 운영하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은 법인전입금으로 채웠었는데 그게 다 사라진 거죠. 주 52시간 위반은 기본이고요. 사무국장을 채용할 때 공개채용을 위반하고 내정자로 채용을 하셨던 문제도 있었어요. 저희가 군산시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보니, 물품을 살 때는 되도록 군산에 있는 업체에서 물품을 사요. 그런데 센터장님이 비교견적도 받지 않고 본인이 아는 익산의 업체에 물건을 구매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그것도 항의했어요."

 

처우만을 바랐다면 지금까지 못했을 거예요.

Q. 직영으로 운영되는 센터도 있나요?

"현재 전북에서는 부안이 직영하고 있어요. 전국적으로 가족센터와 다문화센터가 통합된 센터를 살펴보니 207개소가 있더라고요. 그 중 18개는 직영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직영으로 운영하는 곳은 대상자들의 만족도가 더 높아요. 그래서 센터이용률도 더 높더라고요. 저희는 매년마다 계약을 해야 해서 비정규직과 같은데 그분들은 고용불안이 없으니까 안정적이고 할 수 있는 사업을 최대치로 하시더라고요. 부러운 부분이죠.
그리고 저희는 인건비가 사업비 안에서 책정돼요. 필수인력으로 일곱, 여덟 명 채용하라고 하는데 그렇게 채용할 수도 없는 입장인 거예요. 다문화 가족들 이용률이 몇 퍼센트인지를 두고 평가를 해요. 사업비는 1년에 겨우 이, 삼백 정도 오르는데, 작년보다 이용률이 떨어지면 안 돼요. 그래서 이직률이 높아요. 가족센터의 구조가 달라져야한다고 생각해요."

Q. 그럼 처우도 열악하겠어요.

"제가 2017년도에 상담사로 처음 들어왔을 때 월급이 162만 원이었어요. 지금도 팀장으로 6호봉 정도 되는데 251만 원 정도에요. 초과근무까지 생각하면 사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이에요. 제가 작년에 평균적으로 한 달에 40시간씩 초과근무를 했더라고요. 센터장님께 초과근무 신청서 안 받고 한 업무들도 많았어요. 저한테 주 12시간 연장근무 위반하면 안 된다고 결재를 안 해주시는 거예요. 그거 포함하면 월 60시간 정도는 초과근무 한 것 같아요. 3년마다 여성가족부 평가도 받아야하고 군산시 감사도 준비해야하고 위탁감사도 준비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이주여성들이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나가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어요. 그분들과 사업을 하려면 주말에 하거나 저녁에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초과근무를 해야 하죠."

Q. 어떤 사명감 없이는 버티기가 어렵겠어요.

정말 힘들어요. 그래도 열심히 했어요. 이주노동자분들이 취업했다며 오셔서 잠깐 보러왔다는 말에 정말 즐겁게 일했어요. 이주여성, 노동자분들이 한국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보람에 살았어요. 처우만을 바랐다면 지금까지 못했을 거예요. 

 

같이 아파해주고 같이 투쟁해주는 게 너무 고마웠죠.

Q. 해고투쟁하실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제가 처음 노동조합을 가입하고 특히 군산시청에서 선전전을 할 때 겪은 시선이 불편했어요. 아무리 두드려도 변하지 않는다는 분도 계셨고, 노조물을 먹었으니 빨갱이라고 하는 분도 계셨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너니까 한다면서 저에게 밥을 사주고, 장갑을 사주고 해주셨어요. 그래서 지난겨울에 장갑선물을 엄청 받았어요. 우리가 같이 변화시키자고 하신 분들이 있어서 저에게는 굉장히 큰 힘이 됐죠. 저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양한 줄 처음 알았어요. 한편으로는 그만 싸우고 다른 데에서 일하자고 이야기 해주신 분들도 있어요. 저를 생각해주셔서 그런 건 알지만 저와는 다른 길이라고 생각했죠."

왼) 군산시청 앞에서 출근피케팅하는 박상이 분회장과 조합원들 / 오) 인근번화가에서 중식선전전을 하는 박상이 분회장
왼) 군산시청 앞에서 출근피케팅하는 박상이 분회장과 조합원들 / 오) 인근번화가에서 중식선전전을 하는 박상이 분회장

 

Q. 노동조합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 지방노동위원회 심문회의 때 우리 조합원 5분이 와서 참고인을 해주셨어요. 심문위원이 수많은 심문회의를 했지만 이렇게 많은 참고인이 온 적은 처음이래요(웃음). 같이 아파해주고 같이 투쟁해주는 게 너무 고마웠죠."

Q. 마지막으로 한 마디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저 혼자 싸우는 게 너무 어렵고 두렵고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든든해요. 법률적인 부분이나, 해고되면서 경제적인 부분이나,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하는 지도 몰랐는데 노동조합에서 그 모든 걸 함께 도와주셨어요. 노동위원회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혹시 지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있었는데, 그래도 노동조합이 함께하기 때문에 든든하고 이겨낼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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