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노동자의 평등한 ‘쉴 권리’보장” 노동시민사회단체, 집중 공동행동 시작
자동차 틈사이 그늘에서 쉬는 공단 노동자··· 모든 일터에 ‘휴게시설’ 설치해야

오는 8월 시행될 ‘휴게실 설치 의무화’ 법안이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을 강화하고, 현실성 없는 면적기준이 제시된 가운데, 모든 노동자가 제대로 쉴 수 있어야 한다는 법 취지가 난도질 됐다는 분노가 나왔다.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 60여 곳이 제대로 된 휴게실설치 의무화 시행령(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제정을 촉구하며 직접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모든 노동자의 평등한 휴식권을 위한 노동조합·시민사회단체 집중 공동행동을 알리는 기자회견이 12일 오전 11시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렸다.

오는 8월 18일 산업안전보건법 제 128조의2(휴게시설의 설치)가 시행된다. 각 사업주는 휴게시설을 갖추고, 하청 노동자 휴게시설 설치의무도 원청에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이 법안은 휴게시설 설치 대상, 관리기준은 시행령 등을 하위규정에 위임했다.

입법예고된 시행령에 따르면, 설치대상은 20인 이상 사업장과 20억 이상 건설공사 현장 등이다. 50인 미만, 50억 이상은 1년 적용유예 된다(2023년 8월 적용). 20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제외된다.

휴게실 설치 관리기준은 최소면적 기준으로 제시돼있다. 이대로라면 수 백 수 천 명이 일하는 사업장도 최소기준인 6㎡(1.8평)만 넘긴 휴게실 하나만 설치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성별구분도, 작업장소와의 거리기준도 없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20인 이상 사업장은 전체 사업장의 6%에 불과하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적용 제외되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1년 적용유예로 2022년 법 시행으로 새로이 설치되거나 개선되는 사업장 대상은 미미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한 “서너 명이 다리 펴고 앉으면 꽉 차는 좁은 면적으로 휴식권은 보장될 수 없다. 사업장의 협소함, 사용주의 영세함 등 여러 사정으로 휴게시설 설치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공용휴게실을 설치하여 휴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사업장 규모에 따른 적용제외와 적용유예 철폐 ▲휴게실 면적기준을 1인당 단위면적으로 규정 ▲휴게시설 세부기준을 노동조합과 합의해 시행하도록 규정 등 요구했다. 기자회견문을 통해서는 “정부는 근거 없이 차별을 확산하는 사업장 규모 차등을 철폐하고 작은사업장 노동자에게 노동의 권리를 배제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들의 권리 찾기에 함께해온 전국의 시민사회 인권단체와 민주노총은 차별 없이 평등하게 쉴 권리가 누릴 수 있도록 모든 노동자 권리보장에 온 힘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태의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오늘의 기자회견은 긴급하게 마련된 자리다. 청소 노동자가 화장실에서 식사하고 지하 구석진 곳에서 과로로 일하다 쉬지도 못하고 숨져나가는 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그걸 바꾸자고 휴게시설을 의무화 조항을 만든 것이었는데, 내용이 참담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위원장은 “이 법대로라면 1.8평에 50명이 빼곡히 앉아서 가둬져도 처벌받지 않는다. 물론 이마저도 20인 이하 사업장은 제외된다. 휴게실 설치 과정에 노동자 참여가 보장받지 못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며 “우리는 법 취지를 훼손하지 말라고 직접행동 행동을 이어갈 것이다 서명운동 요구를 직접담는 집단행동들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강한수 건설산업연맹 노동안전위원장은 “건설근로자법(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에는 1억원 이상 공사 현장에는 화장실·식당·탈의실 등의 시설을 설치하거나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한다는 내용이 나와있다. 사실상 휴게시설을 명시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러나 이번 산안법 시행령은 중소규모 건설노동자들은 쉴 필요가 없다고 법에 명시하려 한다.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죽고 다치는 노동자들이 바로 중소규모 노동자들이다. 이는 분명한 개악이다”라고 분노했다.

김미경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수석부본부장은 “우리 급식노동자들에게 휴게실이란, 8시간 적은 인원으로 2000명어치 밥을 하기 위해 네다섯시간씩 밥하기 위해 동동거다가 쉴 수 있는 한줄기 꿀물 같아야 하는 것인데, 실상은 한명도 제대로 발뻗고 누울 수가 없다”고 한 뒤 “수없이 많은 휴게실 문제들이 있지만 여전히 가장 큰 문제는 면적이다. 1.8평 남짓한 공간에서 열명이 서로 땀내나는 옷 입고 낡은 선풍기와 에어컨에 의지해야 하는 날씨가 다가오고 있다”고 전했다.

심명숙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 지부장은 “2년전 에이스손해보험에서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휴게실이 곧바로 폐쇄됐고, 이후로도 콜센터 휴게공간 폐쇄는 이어지고 있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휴게실이 없어 근무하는 책상 밑에 침낭을 깔고 누워야 하는 상황”이라며 “민간 위탁 콜센터의 처우는 더욱 열악하다. 실적을 많이 내야 원청 계약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에서 노동시간 8시간 중 화장실 가는 시간 10분을 ‘휴게시간’이라고 우긴다. 휴게시설의 면적 보장과 동시에 실사용 시간을 보장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반월시화공단노조 ‘월담’의 임용현 사무국장은 “휴게공간을 만드는 데서 시작해야 하는 곳들이 있다”며 “반월시화공단에 입주한 기업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이고, 이중 절반이 20인 미만이다. 공단 노동자은 점심시간 빼곡이 주차된 자동차들 사이 그늘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쉬는 게 전부인 수준이다. 정작 휴게공간의 절박함을 느끼는 노동자들의 ‘쉴 권리’에 대해, 정부는 사업주 부담을 이유로 차등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휴게실 법이 만들어져야지만 휴게실이 설치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시민으로서 놀라웠다. 사람은 도구나 물건이 아니므로 쉬어야하는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것을 또다시 사업장 규모로 한번 차별한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정부가 굳이 개입해서 휴게실 설치하려는 것은 업종과 규모 등으로 노동 환경 차별이 심화된 데에 대한 개선의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시행령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 노동자를 물건같이 창고에 적재하든 놓을 셈인가”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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