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현장]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를 만나다

“지금 1도크에서 목숨 걸고 투쟁하는 사람이 있어 우리는 멈출 수 없습니다. 많은 관심과 연대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가로, 세로, 높이 1m. 한 노동자가 몸 누일 공간조차 없는 0.3평 좁디좁은 철장을 용접해 시너통과 함께 자신을 가뒀다. 철창 안에서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피켓을 든 채, 형형한 눈빛으로 바깥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사진이 SNS를 휩쓸었다.

사진 속 노동자는 유최안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이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하청노동자 임금 정상화, 집단교섭 실시, 노동조합·전임자 인정, 노동조합 사무실 제공 등을 요구하며 지난 6월 2일 파업에 돌입했다.

6월 22일 유최안 부지회장은 지회 조합원들과 함께 옥포조선소 1도크에서 건조 중인 원유운반선을 점거하고 스스로 감옥에 들어갔다. 유최안 부지회장을 제외한 6명 조합원은 유최안 부지회장 뒤 15m 난간에서 ‘농성장을 침탈하면 뛰어내리겠다’라는 각오로 연좌 농성 중이다.

유최안 부지회장 사진이 SNS를 뜨겁게 달군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온몸으로 외치는 절박함 때문 아니었을까. 다들 거기에 우리가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떤 이는 우리 시대의 전태일이 그곳에 있다고 말했다.

지금 옥포조선소 곳곳에는 쏟아지는 장대비와 호시탐탐 물어대는 모기를 온몸으로 견디며 파업과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200여 명의 ‘전태일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있다. 그들 중 두 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박경우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대의원은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업체 평산 소속 하청노동자다. 같은 지회 김덕용 조합원은 업체  태신 소속 하청노동자다. 두 조합원 모두 이번 파업에 함께하고 있다.

이번 파업은 어떻게 시작했을까. 박경우 대의원은 “지난해 ‘파워공 투쟁’을 기점으로 지회 조합원이 많이 늘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파워공은 조선소에서 배에 페인트칠하기 전 그라인더로 철판의 녹과 이물질을 제거하는 노동자다.

2021년 4월 대우조선 파워공들이 작업거부에 돌입하고 일당 2만 원 인상, 단기 계약폐지, 최소 1년 단위 계약 보장, 연차 휴가 보장, 블랙리스트 철폐 등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파워공 250여 명이 지회에 가입했다. 23일간 투쟁한 결과, 4월 22일 9개 사내협력업체와 각 업체 노동자대표는 퇴직적치금·단기계약 폐지 등에 합의했다.

박경우 대의원은 “그때 합의에 따라 새로 1년 계약이 이뤄지면서 올해 다시 협상과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박경우 대의원은 “작년에는 도장 파트의 파워공만 파업했다. 올해는 발판, 의장, 탑재, 조립, 도장 등 22개 업체에 걸쳐있는 하청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라고 설명했다.

박경우 대의원은 “도장 쪽은 1차 사내협력업체 형태로 있지만, 발판이나 탑재, 조립, 의장 파트에는 다단계 하도급이 또 있다. 거기는 80% 이상 소위 아웃소싱이라고 하는 재하도급 구조다”라며 “그쪽에도 조합원들이 있다”라고 부연했다.

김덕용 조합원은 “작년에 파워공 투쟁으로 퇴직급 지급, 연차 보장 등 몇몇 사안에 합의했지만, 아직 사내협력업체 중에 아직도 퇴직금을 안 주는 곳이 있다. 계약기간 1년에 합의했지만, 돈 1, 2만 원 더 주면서 아웃소싱 등 3개월 단기계약을 유도하고 있어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박경우 대의원은 “업체들이 합의를 깨고 비틀면서 1년 전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다. 현재 지회는 임금 30% 인상과 집단교섭을 걸고 투쟁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조선 경기가 내리막일 때 30% 가까이 임금삭감을 당했다.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30%가 훨씬 넘는다”라며 “이번 요구는 정확히 말하자면 임금 원상회복이다”라고 밝혔다.

김덕용 조합원은 8년 전 22만 원이던 일당이 현재 17만 원으로 줄었는데, 노동강도는 훨씬 더 높아졌다고 토로했다.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면서 인원을 늘리지는 않으니, 개별 노동자가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경우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사내하청지회 대의원(오른쪽)과 김덕용 거제통영고성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이 6월 24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인근 지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총파업 투쟁승리 금속노조 결의대회’가 열렸다. 변백선
박경우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사내하청지회 대의원(오른쪽)과 김덕용 거제통영고성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이 6월 24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인근 지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총파업 투쟁승리 금속노조 결의대회’가 열렸다. 변백선
박경우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사내하청지회 대의원(오른쪽)과 김덕용 거제통영고성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이 6월 24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인근 지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총파업 투쟁승리 금속노조 결의대회’가 열렸다. 변백선
박경우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사내하청지회 대의원(오른쪽)과 김덕용 거제통영고성사내하청지회 조합원이 6월 24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인근 지회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총파업 투쟁승리 금속노조 결의대회’가 열렸다. 변백선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6월 24일 오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1 도크 선박에서 1㎥ 케이지를 만들고 들어가 끝장 농성을 벌이고 있다. 유 부지회장이 ‘이대로 살 순 없지 않겠습니까?’라고 쓴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변백선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6월 24일 오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1 도크 선박에서 1㎥ 케이지를 만들고 들어가 끝장 농성을 벌이고 있다. 유 부지회장이 ‘이대로 살 순 없지 않겠습니까?’라고 쓴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변백선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1년이 넘도록 업체들과 12차례 교섭을 진행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하청업체들은 원청인 대우조선해양 핑계를 대기 일쑤였다. 안전화, 작업 가방, 손전등 등 작업 도구는 물론, 각종 소모품조차 지급할 수 없다고 하여 작업자 개인이 마련해야 했다.

연차나 경조 휴가도 못 주겠다고 버텼다. 박경우 대의원은 “사측 노무사도 연차 미지급은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결국 노동부에 고발했고, 노동부가 지급을 명령해, 지난 5월에서야 연차가 생겼다”라고 밝혔다.

원청과 협력업체들은 현장 관리자를 동원해 농성장을 침탈하거나, 욕설로 고의 충돌을 획책하는 등 파업 대오를 무너뜨리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썼다. 유최안 부지회장이 철창 안에 자신을 가두고, 6명 노동자가 고공에 올라간 이유도 기존 8개 거점 파업 대오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지회는 파업 거점을 1도크 포함해, 총 3개로 조정했다.

파업 파괴 중심에는 6월 초에 개설한 ‘현장 직·반장 책임자 연합회’(이하 현책연)라는 카카오톡 익명 채팅방이 있다. 한 원청 관계자는 해당 채팅방에 파업 파괴를 위해 하청노동자 현장 투입을 독려하면서 “하나 하나 박멸 해나가시죠”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김덕용 조합원은 거점을 잡고 농성을 벌이는 하청노동자 파업 대오를 현책연 등 사측 세력이 여러 번 침탈했다고 증언했다. 김덕용 조합원은 “1도크에 농성하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20여 명 정도인데, 6월 16일 100여 명이 몰려와 고소차 아래 여성 조합원들이 앉아 있는 천막을 칼로 찢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그 외 자잘한 침탈은 수도 없이 많았다”라고 밝혔다.

0.3평에 자신을 가둔 유최안 부지회장 상황을 물었다. 박경우 대의원은 “유조선에 저희는 탱크탑이라고 부르는데, 그 안에 가로, 세로, 높이 1m에 불과한 구조물이 있다. 그 안에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게 스스로 철판을 다 용접했다”라고 설명했다.

박경우 대의원은 “음식은 도시락을 넣어주고 있다. 용변은 안에서 처리하고 있다. 기저귀하고 물티슈하고 넣어주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덕용 조합원은 “뒤에 15m 난간에 있는 6명 조합원도 침탈하면 뛰어내린다고 하고 있다. 비바람도 그대로 다 맞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박경우 대의원과 김덕용 조합원 두 사람에게 투쟁하면서 힘든 점은 없는지 물었다. 박경우 대의원은 “20일 넘게 파업하면서 집에 못 들어가고 그런 건 힘들지 않다. 우리가 파업하고 있는데 눈앞에서 일하러 들어가는 다른 하청 노동자 동료들을 볼 때 제일 힘들다”라고 말했다.

박경우 대의원은 “농성장에서 앉아서 현장 들어갔다가 퇴근하는 같은 반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때마다 웃으면서 대하려고 하는데 그들은 그냥 인사도 안 하고 지나간다. 고생한다며 격려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그냥 다 지나가니까”라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김덕용 조합원도 “무관심이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인터뷰를 볼 금속노동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박경우 대의원은 인터뷰를 한 6월 24일 당일 열린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총파업 투쟁승리 금속노조 결의대회’를 언급하며 “오늘만 기다렸다”라고 반색했다.

박경우 대의원은 “저희 인원으로는 너무 역부족이었고, 언제까지 파업을 계속해야 하냐는 고민도 많았다. 전국에 금속 동지들이 저희를 지지하고 응원해줘서 너무 감사하다. 오늘 제가 동지들 다 모인 것을 못 보고 왔는데, 집회 시작하면 감동하지 않을까”라고 부연했다.

김덕용 조합원은 “금속노조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끝까지 투쟁해서 꼭 승리하겠다. 지금 1도크에서 목숨 걸고 투쟁하는 사람이 있어 우리는 멈출 수 없다. 많은 관심과 연대 부탁한다. 그러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나”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지난 6월 28일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투쟁 승리를 위한 ‘10,000명×10,000 원 기금’ 모금을 요청했다. 1만 명이 1만 원씩, 1억 원을 모으자는 제안이다.

이김춘택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그렇게 모은 1억 원으로 7월 15일 월급날 파업 투쟁하는 하청노동자 200명에게 1인 50만 원씩 파업연대기금을 지급하려 한다”라며 페이스북을 통해 모금 취지를 밝혔다.

이김춘택 사무장은 “50만 원으로 한 달 생계를 유지하기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전국의 노동자 시민이 대우조선 하청노동차 파업 투쟁을 지지, 연대하고 있다 느끼게 해 주고 싶다”라며 “모금은 오늘부터 월급날 전날인 7월 14일 자정까지 진행한다. 많은 참여와 연대를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10000×10000 기금’ 모금 계좌는 우리은행 1005-603-022783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노동조합)이다.

해당 기사는 '금속노동자'에도 함께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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