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제연의 해보자 평등일터!
차제연의 해보자 평등일터!

전국에서 노동자들의 아우성이 절절하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은 한두 해의 일이 아니었으나, 최근 연이어 들려오는 소식들은 노골적으로 반노동 정책을 펼치는 윤석열 정부 하에서 더욱 애가 탄다. 선풍기 한 대 없이 끓어오르는 작업장에서 더는 버틸 수 없어서, 아파도 쉴 수 없어서, 일은 더 하는데 임금은 더욱 깎여서, 느닷없이 잘려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들도 하나같이 기가 막히는데 이런 이유들로 몇 날, 몇 달, 몇 년을 싸우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지난 6월 22일에는 저 먼 거제에서 한 노동자가 스스로 만든 철창에 자신을 가두었다. 그가 든 피켓에는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라는 절규가 적혀 있었다. 그와 함께 연좌농성, 단식농성을 불사하는 이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은 전국적으로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런데 임금삭감, 다단계 하청으로 배를 불린 원청은 뒷짐지고, 온 몸을 던진 이 투쟁에 20여일이 지나 정부가 내놓은 답은 ‘불법’이었다. 비조합원들의 피해를 당연시 여기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는 가히 기함할 만한 말과 함께 말이다. 이것이 지금 이 사회의 감수성이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을 그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로 규정하고 노동자들을 편갈라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차별금지법에는 국가의 차별시정 의무가 명시되어 있다. 각종 제도와 법령을 법의 취지에 맞게 시정하고 교육과 홍보를 통해 평등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는 차별이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을 이해시키는 한편 이 사회가 차별을 인식하고 감각해 나가는 훈련을 책임지는 것이기도 하다. 일터에서 발생하는 차별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책임이 기업에 있고,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차별받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는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파업을 두고 정부가 내놓는 첫 말이 ‘불법행위’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사회는 너무나 멀어 보이고 무엇 하나 기대할 것 없는 현실에도 투쟁은 멈출 줄 모른다. 차별해도 되는 세상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은 단순히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에 머물지 않는다. 차별받아도 되는 존재들로 낙인 찍으려는 시도,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것이 기업을 살리는 길이라 호도하는 자본에 맞서 존엄을 지키기 위한 저항이다. 때문에 이들을 지지하는 연대자들 역시 존엄과 권리를 위한 각자 자신의 투쟁으로 함께 한다. 그 과정에서 이 저항의 주체들은 연대의 힘으로 서로에게 길이 되어주기도 한다.

3년 만에 다시 광장에서 열리는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는 이들 중에는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있다. 매년 조금씩 더 참여해온 이들이지만 올해는 퀴어문화축제를 기념하며 금속노조에서 ‘금속노조에도 성소수자 조합원이 있습니다’ 라는 현수막을 제작하고 민주노총이 부스에 젠더리스 작업복을 준비하는 등 이전보다 진일보한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이러한 행보는 일터에서 차별과 편견, 소외와 아우팅의 두려움에 시달리는 성소수자들에게 든든한 지원이 된다.

한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다음 주에는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희망버스가 예정되어 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맞서온 성소수자들은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전한 그 절절한 말의 깊이를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다. 때문에 많은 성소수자들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희망버스에 탑승할 준비를 한다.

투쟁하는 이들의 연대로 길은 시작된다. 차별금지법이 그리는 세상을 실천하고 있는 이런 현장의 힘에 기대어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도 다시 나아가 볼 수 있을까. 정치는 한심하고 사회적으로도 답답한 소식들만 쏟아지는 가운데 이 연대의 사위만이 기대어볼만 한 숨구멍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