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 순 없다’며 1도크 점거농성 ··· ‘국민여러분’께 사과했던 이유
정부, ‘불법 파업’ 경고하며 공권력 투입 시사했지만 시민연대로 막아내
민형사상 손배 면책 여부 합의 못해··· 하청지회의 투쟁이 남긴 과제들

대우조선해양 전경 ⓒ 백승호 기자
대우조선해양 전경 ⓒ 백승호 기자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아주 작은 배가 진수進水했다. 발판만 6년을 깔았고, 지난달부터 ‘파업’과 ‘투쟁’으로 용접한 끝에 바다에 띄워진 배의 이름,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남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배를 만드는 사람들, 대우조선해양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사측(사내 협력업체들)을 교섭자리로 불러내 지난 22일 합의안을 만들었다. 노조를 만든 지는 6년, 지난달 2일 파업을 시작하고, 1도크 선박을 점거해 옥쇄투쟁, 고공농성을 벌인 지 한달여 만에 금속노조 이름의 도장을 합의안에 찍었다.

하청에서 하청으로, 외주 받고 받은 걸 받다보니 작업이 험할수록 월급도 줄어들었다. 하청노동자들은 조선업 불황으로 수주가 없을 때 가장 먼저 잘렸다. 임금은 바닥없이 깎여 최저임금 수준으로 토막났다. 깎이고 잘릴 때마다 밀려오던 모멸감과 배신감은 돈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수년간 수만 명 동료가 떠나갔고,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기간산업’에 복무한다는 마음으로 건조建造했다. 지난해 9월 예상 수주량을 이미 돌파하며 ‘수주 대박’을 쳤을때는 기대했다. 회사가 힘드니 어쩔 수 없다며 5년에 걸쳐 평균 30% 삭감된 임금을 되찾을 거라는 기대는 상식적인 것이었다.

협력업체는 임금 4.5%인상을 얘기했다. 2023년 최저임금 인상률 5.0%보다 못한 수치를 들이밀며 원청 대우조선해양이 내린 기성금(공사대금)으로는 이 이상 어쩔 수가 없고, 자기들은 여기에 아무 권한이 없다고 했다. 하청노동자들은 이대로 일하면, 이대로 살아야 했다. 하청노동자가 존엄한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국가 경제에 크게 이바지하는 산업’의 생산을 멈춰야 했다. 하청지회가 ‘이렇게는 살 수 없지 않냐’면서도 ‘국민여러분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최안 부지회장 ⓒ 변백선 기자
유최안 부지회장 ⓒ 변백선 기자
1도크 고공농성에 오른 하청지회 조합원들. ⓒ 변백선 기자 

스무 해동안 배를 용접하던 기술을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썼다. 도크에서 하청노동자 유최안 하청지회 부지회장은 가로·세로·높이 1미터의 철제 케이지를 만들어 스스로를 가두었다. 눕지도 서지도 편히 앉지도 못하는 딱 이만큼이, 조선소 하청노동자에게 허락된 공간이자 자유라고 역설하기 위함이었다. 존엄 없는 삶은 곧 죽음이었기에, 유최안은 직접 쓴 유서와 신나(시너)를 들고 케이지에 갇히기로 했다. 동지의 파격에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하청노동자 진성현, 조남희, 이학수, 박광수, 이보길, 한승철이 유최안이 점거한 도크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길어지는 파업에 계수정, 최민, 강봉재 조합원은 곡기를 끊었다. 이들 중에는 올해 1월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도 있었다.

전례가 없었던 투쟁 수단에 시민사회는 물론 노동계도 충격을 받았다. 투쟁의 내용을 확인한 이들의 표정은 참담함으로 바뀌었다. 고작 ‘임금 원상회복’과 헌법에서 명시한 ‘노조활동 보장’, 당연하고도 소박한 요구하기 위해 생명을 담보로 잡아야 했던 ‘하청인생’, ’비정규 인생’이 폭로되는 순간이었다. 민주노총은 최대역점사업이라 꼽히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서울과 영남권으로 나눠서 동시 진행했다. 금속노조도 총파업을 서울과 거제로 나눠 진행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결단과 1000개 이상 단체의 지지 연서명, 한달만에 모아진 투쟁기금 2억8000만 원이 말했다. 당신들의 투쟁이 옳다고,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150여 명의 결사항전은 한국사회 불평등을 끝내고자 하는 이들의 가슴에 박혔다.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울부짖음에, 이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정부라는 사실도 서서히 드러났다. 협력업체가 받는 기성금(공사대금)의 95%가 이미 인건비로 쓰인다고 알려진 만큼, 이들은 원청 대우조선의 의지없이는 한발짝도 움직이기 힘든 상황. 임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하청업체의 말은 곧 대우조선해양의 의지의 대변이다. 대우조선의 최대주주는 55.7%의 지분을 가진 산업은행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을 관장하는 것은 결국 윤석열 정부다.

모든 상황에 침묵을 유지하던 정부부처는 하청지회를 지지하는 여론이 커지자 이들의 항전을 ‘불법점거’라고 규정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40일 넘게 묵묵부답하다 갑자기 “기다릴만큼 기다렸다”고 답하며 모두를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7월 15일 협력사와의 교섭이 시작될 즈음, 경찰버스들이 하청지회의 파업현장인 1도크 근처에 배치되고 하늘에는 경찰헬기가 떴다. 국가차원의 협박, 공권력 투입과 강제진압·침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노사교섭 중 대놓고 경찰이 배치되는 일은 없었고,  증강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

22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긴급 사회 각계 대책회의 기자회견. ⓒ 김준 기자
22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긴급 사회 각계 대책회의 기자회견. ⓒ 김준 기자
대우조선해양 서문 앞으로 하청지회의 파업투쟁을 엄호하는 노동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들이 모이고 있다. ⓒ 조연주 기자
대우조선해양 서문 앞으로 하청지회의 파업투쟁을 엄호하는 노동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들이 모이고 있다. ⓒ 조연주 기자
대우조선 하청투쟁 강제진압 반대 민주노총 중집 긴급기자회견이 거제 대우조선해양 서문에서 열렸다. ⓒ 변백선 기자
대우조선 하청투쟁 강제진압 반대 민주노총 중집 긴급기자회견이 거제 대우조선해양 서문에서 열렸다. ⓒ 변백선 기자

정부의 협박에 기겁한 이들이 거제로 즉각 모여들었다. 공권력 투입과 침탈은 절대 일어나서 안되는 일이었다. 우선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서울에 예정된 회의장소를 거제로 옮겨 “폭력진압이 시도되는 순간 정권퇴진 운동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21일). 서울에서는 사회 각계 긴급대책회의가 기자회견을 열고 '대화로 해결하라'고 꾸짖었고, 희망버스 집행위원 일부는 예정된 일정보다 먼저 거제를 찾아 “공권력 투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막아섰다(22일). 결국 최악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용산참사, 쌍용차 정리해고 옥쇄파업 침탈의 기억이 어둡게 드리워진 채, 교섭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교섭테이블에 앉은 하청노동자들이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동안, 정부의 비호를 등에 업은 자본은 그 틈을 노련하게 파고들었다. 하청노동자들의 뜨거웠던 투쟁, 노동시민사회의 열성적인 지지에 미치지 못하는 합의안이 완성됐다. 깎인 임금 30% 회복 요구는 철회됐고, 사측안(4.5%인상)이 적용됐다. 노조활동 보장 요구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확정안은 없다. 하청지회 조합원의 고용승계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약속이 이뤄졌다. 교섭 막바지 핵심 쟁점이 됐던 손해배상 및 민형사상 면책 여부는 노사 잠정합의안이 발표될때까지도 의견이 조율되지 않았다.

전시민적 지지를 우군으로, 51일간 진행됐던 투쟁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는 합의안에 118명 조합원 중 109명이 찬성했고 9명이 반대하며 92.4%의 찬성했다. 이 압도적 찬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헤쳐야 하는 작업이 남겨졌다. 뜨거웠던 투쟁과 그렇지 못한 합의안, 둘 사이의 갭(공백)을 질문하고 알아가는 것이 우리의 투쟁방향이 될 것이라고 이김춘택 하청지회 사무장은 말했고, 김형수 지회장은 부러 이번의 합의가 ‘걸레같고’, ‘쓰레기같다’고 말하면서 스스로와 조합원들을 자극한다. 새로운 투쟁을 준비한다.

대우조선의 하청노동자 투쟁,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51일간 파업이 22일 마무리됐다. ⓒ 변백선 기자
대우조선의 하청노동자 투쟁,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51일간 파업이 22일 마무리됐다. ⓒ 변백선 기자

과제가 많다. 이들이 띄운 작디 작은 배에 비해, 항해하며 헤쳐나가야 할 격랑은 너무도 거세보인다. 우선 파업에 따른 민형사상 소송과 손배 면책을 두고 합의가 끝나지 않았다. 수천억 대 손해배상금도 우려된다. 하청지회는 지회 지도부 임원만 책임을 지고 하청지회 전체 조합원에게 피해가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관철할 예정이다. 면책 문제에 대한 원만한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이 요청됐다(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교섭위원 발언). 실패로 돌아간 임금 원상회복을 위한 투쟁에 또 다시, 그러나 더욱 가열차게 불을 당겨야 한다. 전국적 이목이 쏠리며 언론의 관심도 한 몸에 받았는데, 키잡이가 된 노조는 언론의 폭발적인 관심을 조선소 착취구조를 드러내고 폭로하는 방향으로 틀어야 한다.

금속노조는 이를 ‘사회적 승리’라고 명명했고, 적지 않은 이들이 너무도 잘 싸웠지만 온전한 승리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후 투쟁을 위해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분석한다. 금속노조는 정규직노조인 대우조선지회와 남아있는 긴장관계를 ‘원하청의 연대’강화로 돌파하고, 조선소 하청 등,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처우개선을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내겠다고 했다(윤장혁 금속노조 위원장/희망버스 집회발언). 그래서 하청노동자들의 싸움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희망버스 집회 ⓒ 백승호 기자
희망버스 집회 ⓒ 백승호 기자
희망버스 집회 ⓒ 백승호 기자
희망버스 집회 ⓒ 백승호 기자

진수식이 열렸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만든 노동조합이라는 배가 드디어 뜬 날, 23일 31개 지역에서 38대의 버스가 출발해 대우조선 옥포조선소 서문으로 집결했다. 당초 희망버스 집회는 공권력 투입을 저지하거나 파업을 응원하는 성격의 집회였지만, 협상이 타결돼 축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정부에서 공권력 개입을 시사하거나 법 집행에 대한 발언이 강해질때마다 탑승 요청이 늘었다. 장애인, 성소수자, 인권, 법률, 노동, 문화예술, 농민, 시민사회 등 다양한 단체 71개가 제안단체 희망버스를 탔고, 하청노동자들의 투쟁 마무리를 응원하러 온 2300명으로 서문 다리가 가득찼다.

희망버스 대표제안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아빠가 하청이면 아이도 하청이 되는 이렇게 살순 없지 않은가. 엄마가 최저임금을 받으면 아이도 가난부터 배우는 이대로 살순 없지 않은가” 물으며 “우리는 더 뭉치고 더 커지자. 우리가 뭉치면 세상이 흔들린다는걸 보여줬다”고 희망을 말했다.

‘배 만들었지만 진수하는 날에는 높으신 양반들 눈치 본다고 구석에서 바닥에서 숨어 살던, 배 떠나던 날 담배 한 모금 소주한잔 들이키며 죽어간 동료 위로하며 한탄하던 사람들(안석태 금속노조 경남지부장 6.24집회 발언)’. 그들이 드디어 주인이 되어 배에 올랐다.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이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이 배의 선원이 되어달라고. 끝까지 함께해달라고.

대우조선해양 ⓒ 백승호 기자
대우조선해양 ⓒ 백승호 기자

 

SNS 기사보내기

관련기사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