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전북본부 세아지부 조합원 오승석

 

민주노총전북본부 가맹산하 조직 인터뷰 <어쩌다 노조> 코너입니다. 노동조합이 불온시되는 사회에서도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해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렸던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화물연대전북지역본부 세아지부 오승석이라고 합니다."

왼쪽은 화물연대전북본부 세아지부 오승석 조합원, 오른쪽은 화물연대전북본부 최삼영 전 본부장.
왼쪽은 화물연대전북본부 세아지부 오승석 조합원, 오른쪽은 화물연대전북본부 최삼영 전 본부장.

 

Q. 화물연대 활동한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제가 화물운송한지는 90년부터 했으니까 33년 정도 됐고요. 20대부터 시작한 거죠. 화물연대 가입은 2002년도였어요. 제가 화물연대 전북지부를 초창기 만든 사람이에요(웃음). 20년 됐네요."

Q. 어떤 이유로 노동조합을 만들게 되셨나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 IMF 이전까지는 직장생활을 했어요. 불합리한 경우를 겪으면 혼자 싸워서도 대부분 이겼어요. IMF 이후에 차를 분할 받기 시작한 거예요. 차주가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없는 거예요. 타 지역에서 나보다 먼저 하시는 분들이 생겼어요. 전북지역도 같이 해야 한다 하는 생각이 있어서, 내 차 세워놓고 돌아다니면서 조합원 조직하려고 했었죠. 뭣 모르고 조합을 한 거예요."

Q. 노동조합을 처음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화물노동자들도 이렇게 당할 수만은 없다 해서 가입하게 된 단체가 민주노총인거에요. 민주노총도 처음에는 우리 안 받아줬어요. 우리는 ILO나 경제단체에서 말하는 특수한 고용형태 노동자이잖아요. 그래서 ‘노동조합을 할 수 없다’라고 이야기 하는 거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합을 해야 되겠다는 거였죠. 당시에 민주노총 내에 운송하역노동조합이란 게 있었어요. 그쪽에 계신 분이 우리를 준조합원 형태로 해서 가입을 시킨 거예요. 그렇게 민주노총으로 들어가게 된 거죠.

2003년 초에 정식으로 발대식을 하고 화물연대 전북지부가 출범했어요. 발대식 할 때 조합원이 서른 몇 명밖에 안됐어요. 2003년 5월 달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벌이거든요. 그때 화물차 하시는 분들이 자기들이 표현하지 못한 분노 같은 게 있을 거 아니에요. 억울함도 당하고 그러니까 노래 가사처럼 들불처럼 일어난 거예요. 정부는 대응할 대안 자체도 없었어요. 상상도 못했던 거죠. 정부가 진거죠. 이것저것 들어 주겠다 그래서 그때부터 바뀌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시작한 화물연대가 지금까지 온 거죠."

 

화물차라고 하는 하나의 테두리잖아요. 바퀴를 굴려서 수송하는 사람들.

Q. 화물연대 파업은 잘 뭉치고 힘이 강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포장해서 조직 잘했으니까 된 거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은데(웃음), 물론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회가 그렇게 하게끔 만드는 거예요. 2003년 첫 파업 이후에 2008년에도 파업했는데 그때 화물차가 28만대인데 그 중 우리 조합원은 2만 명이 채 안 됐어요. 28만대 중 2만 명이 뭐가 잘못됐다라고 이야기하면 사실 안 먹히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어느 정도 끓어오를 때까지 기다리다가 터트리는 거예요. 그게 딱 맞아 떨어져서 끈끈하게 단결하게 만드는 거죠. 조합원과 비조합원이 같이 행동하지는 않지만 차를 세워놓고 동참한다는데 의의가 있는 거죠.

화물차라고 하는 하나의 테두리잖아요. 바퀴를 굴려서 수송하는 이런 사람들. 나는 공산품을 수송하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들은 식품을 하는 사람들이고, 다 다른 건데 크게는 똑같이 바퀴를 달고 운행하는 사람들, 각자 요구하는 것이 있지만, 제도와 법을 바꾸기 위해서 싸우는 거잖아요. 작은 불이익에도 같이 동참하고 그러는 거죠."

Q. 노동조합으로 인해 비조합원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나요?

"우리가 싸워서 운송료 올리면 우리가 따로 받는 게 아니잖아요. 다 같이 받는 거잖아요. 그래서 비조합원들이 화물연대 (안 나서고) 뭐하냐고 할 때도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노동조합이 우리만, 우리 조합원들한테만 혜택을 주세요 라고 싸울 순 없잖아요. 그러면 노동조합이 아니겠죠?(웃음)"

Q. 화물노동자들이 겪는 공통의 문제가 무엇일까요?

"생산하는 공장이 있고 우리는 물건을 수송하는 거잖아요. 그 중간에 운송사가 있어요. 내가 화주라 했을 때 물건을 A라는 운송사에 보내면 A라는 사람은 본인이 차가 있어도 안보내고 B라는 운송사에 보내요. B라는 사람은 C라는 사람에게 보내고요. 예전에는 네 단계 다섯 단계까지 수수료를 띄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저희가 그런 다단계를 없애자 그렇게 싸웠었죠. 지금은 두 번째까지는 허용을 하고 있고, 그 이후로는 허용이 안돼요. 그런데 지금도 묵시적으로 그런 걸 허용하고 있어요.

조합 있고 없고 차이는 분명 있어요. 조합이 있으면 눈치를 보고 운송료를 다른 데보다 더 줘요. 수수료도 덜 떼고. 그런데 우리는 운송사와 화주와의 계약관계를 알 수가 없어요. 알려주지도 않고. 운송사와 화물노동자와의 계약 관계도 수시로 달라질 수 있어요. 화주 핑계로요. 하지만 노동조합이 있으면 화주와 운송사의 관계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받아야할 권리는 이만큼이니까 그만큼 줘하고 싸우는 거죠. 우리는 우리가 받아야 할 정당한 임금, 운임을 받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게 안 받아들여지면 파업하는 거죠."

Q. 이런 구조가 IMF 이후에 만들어 진건가요?

"IMF 전에는 화물차주들도 거의 회사 소속 기사였었죠. IMF 끝나고 나면서부터 개인차주화 되어갔어요. 기업이 이익을 내야하는데 운송료는 떨어지지, 차 할부 들어가야지. 기사 월급 줘야지, 사고 나면 본인들이 책임져야지, 경쟁상대는 많아지고 이런 모든 것을 봤을 때 운용하기 힘든 거예요. 그러니까 개인한테 외주화를 한 거죠. 책임을 화물노동자들에게 다 주는 거예요. 처음엔 남의 집 생활을 하다가 내가 주인이 되니까 좋아했는데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도 현실적으로 남는 장사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잖아요."

 

한 달에 얼마 정도는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법으로 보장해주라는 거죠.

Q. 지난 6월에도 총파업이 있었잖아요. 이번 총파업 때 무엇을 요구했던 건가요?

"안전운임제 일몰제를 없애고 법제화하는 거요. 현재 안전운임제는 컨테이너하고 시멘트에만 적용 돼요. 적용대상을 전 차종 전 품목으로 하라는 거예요. 그리고 고정적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노동자만 산재보험이 적용되고 있는데 이를 확대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잘 안풀렸어요."

지난 6월 7일, 화물연대전북본부 파업 출정식이 군산항 5부두에서 진행되었다.
지난 6월 7일, 화물연대전북본부 파업 출정식이 군산항 5부두에서 진행되었다.

 

Q. 안전운임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 좀 부탁드려요.

"우리가 비정규직이나 일용직이나 이런 분들 때문에 최저임금을 가지고 싸우잖아요. 화물차도 그것과 맞닿아 있어요. 군산에서 서울이나 부산까지 운송료가 얼마고, 여기에 기름값, 톨게이트비, 인건비, 자동차 소모비, 할부, 수리비, 감가상각 이런 걸 다 따지는 거잖아요. 그런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가 최소한 나에게 하루 얼마는 돼야 한다가 있는 거죠. 한 달에 얼마 정도는 소득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법으로 보장해주라는 거죠. 그걸 지키지 않으면 화주나 운송사에 대해서 처벌을 하라는 거예요."

Q. 이번 파업이 잘 안 풀렸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점이 아쉬우셨나요?

"법으로 제정되어야 하는 건데, 지금 여당인 국민의힘이나 정부에게서 확실한 답을 못 받았다는 거죠. 사회적인 합의라면 합의일 수 있는데 정부가 어떻게 하겠다 이런 답이 없던 것이 서운한 거죠."

 

갑이 와서 해결해야 하는 거거든요. 갑에서는 계속 핑계만 대고 있어요.

참프레지회는 6월 30일까지 운송사와 9차례 교섭을 진행했으나 실질적 사용자인 참프레는 교섭에 불참했고, 운송사와의 교섭은 진전이 없었습니다. 7월 1일, 조합원 47명이 파업에 돌입했고 공장 앞에서 천막농성이 이뤄졌고 투쟁과중 중 경찰의 폭력을 동반한 연행강행 등의 과잉대응이 있었습니다. 이후 교섭에서 사측은 100억대의 손해배상 요구로 결렬이 됐고 7월 22일, 두 명의 동지가 군산공장에서 고공농성을 돌입했습니다.

화물연대전북본부 투쟁은 27일 간의 파업투쟁, 6일 간의 고공농성 투쟁 끝에 7월 27일, 노사 합의 후 투쟁이 종료됐습니다. 본 인터뷰는 참프레 투쟁 현장에서 진행되었고, 현장에 함께 있던 최삼영 화물연대전북본부 전 본부장께서 투쟁경과를 이야기해주셨습니다.

Q. 참프레 조합원들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참프레 물류를 책임지는 운송사에 조합원들이 속해있어요. 참프레에 계약된 물량을 운송해요. 참프레와 계약된 농장에서 생닭을 운송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거죠."

Q.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최삼영 : "결론은 그거죠, 우리가 살 수 있는 운송비를 책정하라는 거죠. 동종업계가 어느 정도 수준의 합의를 해서 운송비를 받고 있는데 여기만 그 합의가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참프레에 그렇게 교섭을 하자 요구를 했었는데 사측에서는 운송사한테 떠넘겨요. 실제로 운송사는 아무 힘이 없어요. 을이잖아요. 갑이 와서 해결해야 하는 거거든요. 갑에서는 계속 핑계만 대고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이렇게 장기화 되는 거예요.

그런데 회사는 차를 매매하는데 관여하겠다고 해요. 화물연대로 가입할까봐 그것을 막기 위해서 관여하겠다는 거에요. 회사가 자기는 계약자가 아니니 운송사하고 이야기하라면서 차량 매매는 직접 관리하겠다고 하는 거잖아요. 잘못된 거죠."

Q. 부안에서 투쟁하시다가 군산으로 넘어오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업장이 부안이고, 부안에 생계 나르는 조합원이 조직되어 있는데 거기에서 싸우는 중에 직장폐쇄를 해버렸어요. 공장을 닫은 거죠. 거기는 닭, 오리를 잡아서 냉장이든 냉동이든 유통을 하는 가공업체인데 우리가 파업을 하고 있으니까 다른 공장들한테 위탁을 주고 공장 문을 닫은 거죠. 부안 참프레와 여기 군산의 공장도 하나의 그룹이에요."

Q. 사측에서 손해배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최삼영 : "교섭에 나와서 하는 이야기가 손해배상이었어요. 손해배상 그 이야기를 하면서 일부러 공장을 멈추고, 우리한테 협박하러 농가들에게 항의방문 시킨 거예요."

군산에 있는 참프레 공장.
군산에 있는 참프레 공장.
군산 참프레 공장 앞 농성장. 다른 지회에서도 연대하여 함께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모습입니다.
군산 참프레 공장 앞 농성장. 다른 지회에서도 연대하여 함께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모습입니다.
군산 참프레 공장 뒤편에 있는 고공농성장.
군산 참프레 공장 뒤편에 있는 고공농성장.

 

 

힘들고 실망스러운 일도 많지만 세상이 조금씩 변하거든요.

Q. 노동조합 활동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하나가 안 된다는 거요. 답이 보이는데 답을 향해서 못 나간다는 게 가장 힘들어요. 대체 투입 차를 같이 저지하고 하면 좋은데 단합이 안 되면 그냥 쳐다보는 거죠. 이런 것들이 마음이 아파요. 저는 고공농성도 19일 동안 해봤어요. 조합원들 조직이 안 되니까 어떻게 보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였죠. 그래도 조직이 안 되면 극단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나는 그런 심정으로 올라갔어요."

Q. 그래도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이유는요?

"저는 원래 노동조합 안 했어요. 우리 아기가 많이 아파서 아기를 책임지려고 마음을 먹었어요. 우리 아기가 장애를 가졌는데 내가 돈이 많이 있어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잖아요. 처음에 그렇게 생각해서 사회생활도 버리고 일만 열심히 했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 발전하는 게 아닌 것을 내가 느끼게 됐어요.

장애인이 자기 목소리를 못 내면 부모가 내야하는데 부모가 아무리 돈이 많고 그래도 그 한 사람에 대한 혜택만 있고 끝나요. 사회를 바꿔야 하는 문제라는 거죠. 그런 계기로 노동조합도 같이 하게 된 거예요. 그 이야기를 많이 해요. 장애인이 편하면 비장애인은 더 편하다고요. 저상버스를 언제부터 타봤냐는 거죠. 우리가 싸우고 하다 보니 저상버스도 도입하게 되고 했던 거예요.

화물차도 이렇게 해야 되는 것이 많다는 거죠. 누군가가 시작하니까 다들 따라서 하는 거죠. 그런 것에 대한 자부심. 힘들고 실망스러운 일도 많지만 세상이 조금씩 변하거든요.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꿔주는 거 아니니까요. 노동자는 노동자들 스스로 바꾸려고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같이 하자고 이야기 하고 있죠(웃음)."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