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통톡의 노동자 마음건강
통통톡의 노동자 마음건강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네트워크 통통톡은 이름에서처럼 노동자뿐만 아니라 노동∙시민사회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의 마음건강에도 주목한다. 많은 활동가가 노동단체나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일하고 있으니 노동자와 이분법적으로 나눌 일은 아니다. ‘활동가’란 사전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어떤 일의 성과를 거두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힘쓰는 사람((표준국어대사전)’이란 의미다. 여기서 ‘어떤 일’이 세상의 불의에 맞서는 것이라면, ‘성과’는 땅이 하늘이 될 정도는 아니어도 숨겨진 진실을 드러나게 하고 정의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일 수 있다. 문제는 ‘적극적으로 힘쓴다.’라는 데 있다.

“마음을 말하라고요?”
질병의 결과를 예측할 때, “예후가 좋다.” 혹은 “나쁘다.”라는 말을 한다. 조금 과하게 표현하자면 활동가들이 심리상담이나 심리치유 프로그램에 올 때 일부 전문가들은 ‘예후가 좋지 않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많은 활동가가 자신이 처한 심리적 어려움(때로는 심리적 위기상황에서도)을 말하지 않는다. 상담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불신 때문이기도 하고, 높은 도덕적 기준으로 자신을 그 지경까지 만든 외부적 요인(동료, 조직 등)에 대한 험담(?)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말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말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자신의 마음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해 밖으로 내보내기 어려워한다고 할 수 있다.

“제가 그때 너무 힘들었어요.”

“어떻게(물어본 내용 : 마음이나 몸, 감정에서는) 힘드셨어요?”

“일이 너무 많은 상태였는데 다른 활동가가 자기 일을 처리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고 있길래 도왔거든요. 그 사람도 일이 너무 많았어요. 아침에 9시 출근인데 새벽 5시에도 나가서 일해야 됐고, 밤 12시는 기본이었어요.”

“옆의 동료를 도우려고 많이 애쓰셨네요. 그때 동료를 도와야겠다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일이 되도록 해야하니까요. 그 일이 중요한 일이었거든요. 기한 내 못하면, 조합원에게 피해가 가거든요.”

“중요한 일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일을 도와서 하셨네요. 선생님도 일이 많으셨는데 어떤 마음이 그 일을 하도록 했을까요?”

“중요한 일이었다니까요! (화냄)”

프로그램 장면을 약간 각색했지만, 마음이나 감정에 대해 물으면, 주로 상황, 조건, 의무, 책임, 생각 등을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처음부터 마음과 감정에 다가가기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활동가들은 더욱 어려워한다. 자기 일이 많은 상태에서도 중요한 일이고 그 일이 되게 하려고 옆 사람의 일도 도맡아 하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한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
예후가 좋지 않은 두 번째 이유는 ‘절대적 시간 부족’이다. 노동조합은 상급 조직으로 갈수록, 시민사회단체는 너나 할 것 없이 시간 잡기가 어렵다. 활동가들이 스트레스를 느끼고 급기야 소진에 이르는 이유 중 하나는 조직 내 ‘막혀버린 소통’일 때다. 정말 많이 힘들어한다. 세상의 불의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조직에서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의싸의쌰해도 모자랄 판에 말은 가다 말고 오는 말은 깔딱고개를 넘지 못한 채 부유한다. 이럴 때 집단 내 의사소통을 진단하고 개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한두 시간으로는 어림없는 내용이다. 처음에 상급자나 구성원들은 필요성을 느껴 시작하자고 하지만 결국 끝을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어렵게 시작한 개인 심리상담도 다르지 않다. 일, 사업, 활동, 투쟁, 일정, 회의, 조합원과의 뒷풀이에 밀린다.

조직으로부터의 지지∙보호 부재
활동가들과의 프로그램이나 면담에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복잡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고통스럽거나 무기력을 느끼고 힘겨워하는 활동가에게 심리상담을 권유하는 조직도 많다. 때론 재정적 지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냥 힘들어하는 개인의 몫으로 떨어진다. 조직이 하기 싫어서라기보다 재정적인 한계,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이유다. 다른 측면에서, 조직이나 조직구성원에 의해 괴롭힘이나 차별대우가 발생할 때도 있다. 외부로 향하는 정의로운 외침만큼이나 내부적인 정의도 의미를 가질 텐데 이것에 소홀할 때가 있다.

조직이나 단체가 내 건 선언과 강령, 가치 등에 동의하고 그것을 위해 분투하는 활동가에게 조직의 지원이나 지지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만든다. 먹고 살만큼의 임금이나 활동비, 일정 수준의 여가와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지원, 일 -그 일에서 떨어진 일상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시공간적 환경 등도 중요하다. 여러 중에서도 불편한 소수가 자신의 불편감을 말할 수 있는 조직 문화, 이를 간과하지 않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불편감에 대한 연대, 이런 것들이 활동가들에겐 더욱 큰 지지와 보호 체계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런 환경에서 활동가 개인은 심리적 고통이 자신이 가진 가치와 신념을 집어삼키지 않게 할 수 있다.

어느 사전에서 ‘활동가’를 검색했더니 영문으로 ‘people of spirit’으로 번역되고 이를 다시 번역하니 “쉽사리 굴복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나온 적이 있다. 훅 느껴졌다. 대한민국에서 표현된 문구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활동가로 일한다는 것은 쉽사리 굴복할 수 없는 신념과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이유로 적극적으로 힘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아 조직에, 단체에 쏟아 넣는다. 이 얘기는 역으로 활동가 없이는 쉽사리 굴복할 수 없는 신념이나 가치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 활동가인 나는 괜찮은지, 나의 조직과 단체는 활동가에게 어떤 지지와 지원을 보내고 있는지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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