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현역 입영 대신 국가기관, 공공단체,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군복무를 하는 사회복무요원, 흔히 ‘공익’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군인일까, 노동자일까?(군인의 노동자성 쟁점은 별론으로 한다) 노동자에 해당하여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고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지금으로서는 둘 다 아니다.

이들은 군인도, 노동자도 아닌 애매한 신분으로 각종 법령에 의한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사회복무요원들의 괴롭힘 피해 사례를 살펴보면, 회식 중이던 주무관이 식당으로 사회복 무요원들을 불러내 이유도 없이 바닥에 머리를 박게 하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리거나, 업무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휴식시간을 지나치게 감시하거나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게 하는 등 폭언·폭행·부당한 업무지시 등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하지만 이들은 복무기간이 종료할 때까지 자진퇴사를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배치기관 변경을 신청할 수 있지만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저항하지 못하고,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괴롭힘금지법의 보호를 받지도 못한다.

사회복무요원노동조합이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반말은 기본, 모욕적 언사나 성희롱을 당한 비율이 30%가 넘으며, 공적인 업무가 아닌 기관장이나 직원의 사적 유용에 동원되는 경우는 40%가 넘었다. 담배 등 직원 개인 심부름에 세차, 농사일, 심지어 복지시설의 후원자 업무까지 동원되는 사례들도 있었다.

이처럼 각종 인권침해와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해결은 쉽지 않다. 병무청 복무지도관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만, 2020년 기준 복무지도관 한 사람당 620명의 사회복무요원을 담당하고 있어서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적당히 넘어가려는 경우가 대다수다. 무엇보다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규제도 없다.

결국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나섰다. 올해 3월 노동청에 노동조합 설립신고를 했지만 반려당했다. 이들의 직무상 행위를 공무수행으로 보고 공무원에 준하는 지위를 가진다며 노조법상 노동자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현재 SNS상에 수 백명의 사회복무요원들이 모여 소식을 공유하고 노동조합 가입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법외노조로 활동하고 있지만, 행정소송 등을 통해 법내 노조 지위를 확보하고 병무청과 단체교섭, ILO 진정서 제출 등을 통해 노동환경 개선을 요청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이들은 사회복무요원제도가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며 제도를 폐지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기본협약 29호에서 강제노동을 금지하고 있고, 2007년과 2012년 한국의 사회복무제도가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현재는 우리나라도 29호 비준을 해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다. 비록 ‘군사적인 목적 성격의 작업에 대한 노동’은 강제노동으로 보지 않는 예외규정이 있지만, 사회복무요원은 군사적 목적 업무를 보지 않기 때문에 예외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나 역시 현역이 아닌 산업기능요원으로 군복무를 대신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당시 괴롭힘에 해당할 수 있는 상급자의 행위들에 항의 한 번 하지 못하고 2년 10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 4주동안 논산에 훈련을 받으러 가면, 누가 더 힘들고 부당한 곳에서 일을 하는지 마치 자랑처럼 얘기를 한다, 이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그래도 군대보다 편하지 않냐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여론 역시 이들의 편은 아니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해야지, 군대보다 편하니깐 참고 견뎌라? 법적 제약보다 이러한 시선이 이들을 더욱 주춤하게 만든다. 제도가 폐지되기는 어렵더라도 ‘현대판 공노비’라고 자칭하는 사회복무요원들을 하루빨리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노동자로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이들의 싸움은 ‘일하는 노동자’ 모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싸움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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