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종열의 노동보도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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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기업은 노조의 쟁의로 손해를 입더라도 직접적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것을 제외하고 노조나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청구나 가압류 신청을 제한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불법파업을 조장하는 ‘황건적 보호법’에 불과하다”며 반대 입장을 밝혀 이번 정기국회 최대 쟁점 법안으로 떠올랐다.

경총 손경식 회장 등 경제단체장은 15일 민주당 소속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워원장을 찾아 재계 입장을 전달하며 ‘노란봉투법’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선일보 등 재벌신문은 연일 ‘노란봉투법’과 관련한 보도를 통해 ‘재벌 편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조선일보는 2일 사설에서 "과격 노조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게 손해배상인데 이걸 못하게 하면 앞으로 불법파업을 뭘로 제어 하나"며 민주당에게 "포퓰리즘과 노조 편향을 버리라"고 주문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노조 쪽으로 심하게 기운 노사관계의 균형을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뜨려 한국에서 기업하려는 의지를 약화시킬 것이다"며 "불법파업에 면허를 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주장했으며, 매일경제는 5일 사설에서 "노란봉투법은 '고의・과실로 손해를 초래했을 때 그 책임을 져야 하는' 법치주의 정신을 흔드는 발상이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중앙일보도 7일 사설에서 '과도한 입법'이라며 "노조만 면책하고 기업만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면, 사실상 헌법이 금지한 '사회적 특수계급'을 만드는 꼴이다"고 비판했다.

'노란봉투법'을 비판하는 언론 보도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세계적으로 노・사간 손배소를 제한하는 입법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중앙일보는 "노동 활동이 폭넓게 보장되는 외국에서도 노조의 불법 행위까지 면책하는 나라는 없다"며 "프랑스가 1982년 모든 단체행동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도록 했다가 곧바로 위헌 결정을 받은 일도 있다"고 보도했고, 조선일보는 "일본은 정당성을 상실한 쟁의 행위는 민・형사상 처벌 대상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독일은 불법행위자에 대한 해고 처분도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영국은 노조 규모에 따라 손해배상 상한액을 정하고 있으나, 최근 철도・운송 등 공공부문에서 파업이 잇따르자 지난 7월 법 개정을 통해 손배 상한액을 4배까지 올렸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영국은 조합원이 10만 명 이상일 경우 기존에는 25만파운드(약 4억원)까지 청구할 수 있던 것을 100만파운드(약16억원)까지 확대했다.

그러나 이들 언론은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에서는 사실상 ‘정당한 쟁의가 불가능한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 2일 “"어느 나라이건 노동자의 쟁의를 좋아할 사용자는 없다"며 "파업과 시위로 유명한 프랑스도, 대처리즘의 나라였던 영국도, 영업권 침해 이론의 원조 국가인 독일도 한국처럼 쟁의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들을 감옥에 보내고 손해배상 폭탄을 안기지는 않는다"며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도했다.

프랑스는 사업장의 근로조건만 뿐만 아니라 공기업 민영화 등 국가정책이나 정리해고 등 경영상의 결정도 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목적이 '직업적 요구'라면 정당한 쟁의로 보며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하청업체 노동자가 원청업체를 상대로 벌이는 쟁의도 정당한 쟁의로 인정된다. 프랑스는 파업권을 '개인의 권리'로 보기 때문에 노조가 주도하지 않아도, 노조 없이 파업해도 '작업적 요구'에 관한 것이면 정당한 쟁의로 인정된다. 파업권은 오직 법률로만 제한할 수 있는데 파업권을 제한하는 법률은 거의 없다.

영국은 노조에 대해서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노조 규모에 따라 상한액이 정해져 있는데, 조합원 수가 5000명 미만이면 상한액은 1000파운드(1500여만원). 10만 명 이상이라고 해도 25만파운드(4억여원)가 최대치(2014년 기준)이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더라도 최근 대우조선해양이 하청노조(조합원 300명)를 상대로 47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영국은 '생명과 신체에 해악을 끼치거나, 물적・인적 재산의 파괴와 심각한 손상을 유발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 벌인 쟁의인 경우에만 파업 참가자들을 형사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형사 처벌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독일은 한국처럼 노조가 주도하지 않는 파업은 불법이며 또 노사합의로 단체협약에 담은 사안에 대해서는 쟁의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를 어기면 노조는 물론 노동자 개인도 배상 책임을 지는데 쟁의 과정의 폭행이나 협박 등에 대해선 강요죄나 공갈죄로 형사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 하지만 노동자에 대한 형사고발이 사측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법적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독일의 사측은 대체근로자를 투입해 조업 거부 효과를 무력화하거나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노동자에게 급여를 더 주는 방법으로 쟁의를 견제할 수 있다. 그렇지만 독일에서 노동조합의 쟁의는 매우 드물고 규모도 작으며 대개 몇 시간에 불과하다. 독일의 사업장에는 노동조합 말고도 근로자대표위원회가 있는데 이들이 근로조건이나 노동자들의 민원을 사측에 전달하고 협의하는 협의체제가 확립됐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 박명준 선임 연구위원은 '2022년 상반기 노사관계 스케치 : 주요 교섭 및 갈등의 전개와 함의 진단' 보고서에서 △CJ대한통운 택배노조 파업 △화물연대 파업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파리바게뜨 노사 갈등 등 올 상반기 주요한 노동 갈등은 "이중구조화된 노동시장의 하층위를 차지하는 영역에서 발생했다"며 원청업체와 하청 노동자의 직접적 노사관계를 회피하는 관행이 노사갈등의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국민일보 이영미 영상센터장은 지난 16일 칼럼 <대우조선의 470억 소송>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손배소송을 “본때를 보여주자는 것”이라며 위력시위를 겸한 다목적 정치행위라고 했다. ‘협상의 무기’도 없이, 경기장 입장의 권리도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인 저임금・장시간・위험 노동에 내몰린 하청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불법’뿐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무슨 이런 불공정한 게임이 다 있나”

언론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위한 ‘담론’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대기업과 재벌을 위해 사실을 조작해 여론을 왜곡한다면, 그로 인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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