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김기홍의 청년 비정규노동

인천에 소재한 모 연구소의 30대 여성이 해고통보를 받고 사무실에 찾아왔다. 얼굴은 매우 불안해보였으며 한 손은 남편의 손을 붙잡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정신건강의학과 서류봉투를 들고 있었다. 해고를 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병원을 다녀왔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직장 내 따돌림을 당하다가 해고까지 이어진 전형적인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었다.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게 되면 ‘원직복직’과 ‘금전보상’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단어 그대로 원직복직은 내가 원래 일하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금전보상은 복직 대신 금전으로 추가적인 보상을 받는 것이다. 물론 둘 다 부당해고로 인정받았을 경우다. 개인적으로 금전보상제도에 대해서 할 말이 너무나도 많지만 여기서 이야기하지는 않겠다.(그냥 한마디로 없어지거나 다 뜯어 고쳐야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사건을 수임하는 대리인의 입장에서는 금전보상이 더 좋을 수 있겠지만(경제적 이익이 크므로 성공보수도 높다), 결정은 당연히 당사자가 하는 것이고 승패 역시 양자의 선택과는 관계없다. 하지만 나는 이번 사건만큼은 원직복직이 아닌 금전보상을 선택하길 바랬다. 이유는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성공보수를 위해서는 아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남편과 상의 끝에 원직복직을 선택하셨고, 다행히도 며칠 전 인천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로 인정받았다. 사측에서 재심을 갈 수도 있겠지만 복직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 분에게 기쁨을 누릴 여유는 사치에 불과했고, 곧바로 노동청 괴롭힘 진정사건을 준비하고 있다.

간단하게 괴롭힘과 해고 경위는 이렇다. 사업장은 직원이 스무 명 남짓한 작은 규모의 연구소였고, 괴롭힘 가해자는 이 사건 당사자를 포함하여 3명으로 이루어진 팀의 팀장과 과장이다. 입사 당시 팀에는 본인밖에 없었지만. 곧 사내 이사의 지인인 팀장이 입사하였고 얼마 후 팀장의 지인인 과장이 입사하더니 이후부터 따돌림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팀 내에서 투명인간 취급당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사내 괴롭힘 신고를 하였지만 돌아온 것은 대기발령에 이은 해고통보다. 해고사유는 시행한지 조차 몰랐던 인사평가 결과표를 갑작스럽게 가지고 오더니 최하등급을 받은 저성과자로 통상해고 대상이라는 것이다.

부당해고로 볼 가능성이 높았고, 다행히 결과는 좋았지만 나는 왜 금전보상을 선택하길 바랬을까? 정리해고나 징계해고가 아닌 괴롭힘에 이은 해고였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부당해고로 판정받고 복직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괴롭힘 신고를 이유로 한 불이익 처우로 사업주를 처벌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복직 이후에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한다.

부당해고로 판정받고 회사로 돌아온 노동자를 과연 누가 반겨주겠는가, 괴롭힘은 더 교묘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질 것이고, 결국은 견디지 못하고 자진퇴사로 이어질 것이다. 부당해고 싸움보다 더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견되어 있었지만 30대 후반 여성이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이기 때문에 그냥 그만두시고 금전보상 받으라는 말은 결국 하지 못했다.

그럼 이렇게 괴롭힘에 이어 해고를 당한 노동자는 항상 복직이 아닌 금전보상을 선택하거나, 사업주가 정신 차리고 괴롭힘 없는 건강한 조직문화로 개선해가길 바라는 것밖에 없는 것일까? 다행히 이 사건의 경우 연구소를 운영하는 재단 소속의 다른 법인으로 인사발령을 요청하는 등 법적 구속력은 없더라도 비벼볼 구석이라도 있지만, 대다수 사업장은 이조차도 불가능하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된 지 수년이 지났다. 부족한 점들이 한 차례 개정되기도 하였지만, 세 달 넘게 싸워서 부당해고로 판정받고도 축하받지 못하고 기쁜 마음으로 복직을 기다릴 수 없는 이들을 여전히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다.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