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3시간, 주 80시간 초장시간·저임금 노동
사망에도 조사 없어...‘프리랜서’는 권리 사각지대
불법 잡겠다며 노동자만 때리는 정부 '현실 외면'

대구 신암동 아파트에 마루를 깔던 노동자가 21일 경, 인근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동료들은 “하루 13시간, 주 80시간 이상을 일하다 과로로 숨졌다”고 말한다. 업계에 초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임금체불 등이 만연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고인과 동료들은 소위 ‘가짜 프리랜서’인 특수고용 노동자다.

권리찾기유니온과 한국마루노동조합은 29일. 대구신암6구역 해링턴플레이스 현장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 열고 과로사 방지, 권리보장 등을 외쳤다.
권리찾기유니온과 한국마루노동조합은 29일. 대구신암6구역 해링턴플레이스 현장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 열고 과로사 방지, 권리보장 등을 외쳤다.

권리찾기유니온과 한국마루노동조합은 29일 대구신암6구역 해링턴플레이스 현장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 열고 과로사 방지, 권리보장 등을 외쳤다.

마루노동자는 아파트, 사무실 등의 바닥을 시공하는 일을 한다. 발이 닿는 곳에 널빤지를 까는 식이다. 노동자들은 2022년 5월,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저임금과 임금체불,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을 바꾸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서다. 이들은 대부분 ‘원청 → 시공업체 → 불법하도급 업체‘의 다단계 구조 속에서 일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고인은 평일 오전 7시에서 오후 7시, 주말 오전 7시에서 5시까지 주6일 일했다. 하루 평균 13시간, 주당 80시간 가량을 일한 셈이다. 동료들은 “공사기간이 촉박한 경우에는 주 7일 일하는 경우도 빈번했다”고 말한다. 근로기준법상 최장 근로시간은 주 52시간임에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탓에 초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는 것이다.

관리자와 현장 직원이 퇴근한 야간에도 불을 켜놓고 작업하는 마루노동자 (사진=한국마루노조)
관리자와 현장 직원이 퇴근한 야간에도 불을 켜놓고 작업하는 마루노동자 (사진=한국마루노조)

임금 자체도 낮다. 마루노동자들은 ‘작업 평수’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는데, 10년째 평당 1만원 꼴이다.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기 위해선 숙련된 노동자가 하루 13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 저임금 구조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인 이들은 유급휴일과 연차휴가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더 긴 시간 일할 수밖에 없다.

특히 마루 공정은 아파트 건축 및 시공의 마지막 단계에 이뤄진다. 이 때문에 이전 작업자가 남기고 간 각종 자재들을 청소하는 등의 업무도 떠맡겨져 업무강도는 더욱 높다. 작업자용 화장실도 이미 철거한 상태라 “인변과 오물이 난무하는 작업환경”이라는 호소도 잇따른다.

지급 과정에서 ‘임금 칼질’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실제 작업평수보다 1~2평 낮춰 단가를 계산해 지급하는 식이다. 임금을 지급하는 시기가 이미 주민들이 입주한 후라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노동자로서는 임금체불을 인지했다 하더라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 작업평수를 실측해 받아낼 수가 없다. “관리자가 주는대로 받아야 한다”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퇴직금을 빼앗긴다는 호소도 빗발친다. 건설근로자법상 일용직 노동자 등도 ‘퇴직공제금’을 적립해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마루 시공업체들은 공 ‘일용근로일수’의 절반 내외를 고의로 누락하는 방식으로 퇴직금을 착복했다. 약 2,000여 명의 마루노동자들이 1년에 약 10억 원 가량을 빼앗기는 셈이다. 수 십년간 누락된 퇴직금은 150억 원에 이른다.

 

건강진단문진표의 근무시간 축소. 고인 외 다른 시공자도 서류 위조
건강진단문진표의 근무시간 축소. 고인 외 다른 시공자도 서류 위조

원청 관리자가 노동자들의 건강검진표를 조작한 정황도 발견됐다. 한 작업자는 1일 근무시간 란에 ‘13’이라 적었다. 그런데 수정테이프로 지우고 ‘8’로 고쳐 쓴 흔적이 확인된 것이다. 명백한 과로 은폐 정황이지만, 관계당국의 조사는 없었다. ‘프리랜서’는 노동청 근로감독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고인의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조사도 진행되지 않았다.

권리찾기유니온과 한국마루노조는 2022년 10월, 마루시공 노동자 가짜 3.3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을 접수했다.
권리찾기유니온과 한국마루노조는 2022년 10월, 마루시공 노동자 가짜 3.3 근로자지위확인 공동진정을 접수했다.

한편 노조가 근로자지위확인 진정을 제기하자 시공업체가 용역계약서 작성을 강요하는 일도 벌어졌다. 노동자들이 거부하자, 근로계약서를 허위로 작성해(사문서 위조)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 임금명세서를 실제 방식과 무관하게 형식적으로 작성해 교부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시공업체가 마루노동자들에 대한 인사·노무 관리에 개입하는 증거들이 확인되고 있다.

최우영 한국마루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최우영 한국마루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최우영 마루노조 위원장은 “저희는 노동자도, 사업자도 아니다. 건설회사와 마루회사는 근로계약서도, 임금명세서도 빼앗고, 퇴직공제금을 빼앗고, 4대보험도 들어주지 않더니 목숨까지 빼앗았다”며 “그간 주 8~90시간 노동 멈춰달라고 호소했지만 결국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다. 이제 고인의 연장을 품에 안고 주 52시간 준법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고인의 동료인 김영오 씨가 발언하고 있다.
고인의 동료인 김영오 씨가 발언하고 있다.

고인의 동료인 김영오 조합원은 “건설사와 시공사와 불법하도급 업체들이 챙길거 다 챙기고 나머지 돈으로 저희 임금을 책정하니, 저임금은 일상이고 과로사는 언제라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면서 “마루 일에 청춘을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시공자들끼리 우리는 개돼지라고까지 말한다. 열악한 현실 반드시 바꾸어달라”고 말했다.

정은정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부본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정은정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부본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정은정 지역본부 부본부장은 “건설 현장의 불법 다단계 하청 문제. 그 맨 밑바닥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이렇게 죽어가고 힘들게 노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부터 국토부 노동부장관까지 불법 관행을 바로잡는다면서, 노동자만 때려잡고 있다”며 “민주노총은 과로사로 죽고, 노동자를 거짓사업자로 만드는 현실 알려내고, 바꿔내는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정철효 노동당 대구시당 비대위원장, 한민정 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
(왼쪽부터) 정철효 노동당 대구시당 비대위원장, 한민정 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

정철효 노동당 대구시당 비대위원장과 한민정 정의당 대구시당 위원장은 각각 ”권리를 되찾는 길에 노동자의 한사람으로서 앞장서 연대하고 계속해 싸워가겠다” “일주일에 52시간도 모자라 윤석열 정부가 69시간을 주장할 때 주당 80시간을 일하는 마루노동자들의 마음은 어떠했겠나. 법이 노동자의 희생보다 느린 현실에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은주 의원(정의당 원내대표)이 발언하고 있다.
이은주 의원(정의당 원내대표)이 발언하고 있다.

이은주 의원(정의당 원내대표)는 “국회와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해서, 동료 노동자를 잃게 했다. 정말 죄송하다. 하루에 13시간 일하면 이렇게 죽는다. 바꾸어야 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겠다”며 “국정감사에서 노동부 장관에게 제대로 된 근로감독을 하겠다고 답변을 끌어냈듯 정의당은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마루노조는 주요 마루회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불법적인 관행과 그릇된 노무관리 행태를 멈추기 위해 “노동자성을 보장하라”며 투쟁을 벌이고 있다. 노동부에는 노동위원회를 통한 구제절차를 주문하고 있다.

*위 기사는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기관지 '대구노동히어로'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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