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미국과 FTA를 체결한 멕시코, 결국 사파티스타 혁명운동 야기...

북미나프타(NAFTA) 10년의 흔적 - 멕시코 경제와 농업과 환경

한국정부가 국민 의견수렴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한미 FTA 협정체결을 서두르고 있다. 한국보다 12년 앞서 미국과 FTA를 체결한 멕시코의 사례와 그 영향은 어떨까.

멕시코는 1994년 1월 1일 캐나다, 미국과 북미자유협정(NAFTA)이라는 이름의 FTA협정을 체결한 후 2년간 ‘페소화의 위기’로 불리는 외환위기를 거친다. 이후 마르코스가 이끄는 사파티스타 농민혁명운동이 발생하며 정치적 대격변을 겪는다.

퍼블릭시티즌(Public Citizen)이 발간한 북미나프타 십년 흔적(The Ten Year Track Record df The NAFTA: Mexico) 내용을 소개한다.

멕시코와 미국정부, 세계 초국적 기업들을 포함한 나프타의 지지자들은, 나프타 체결로 수없이 많은 고임금의 일자리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멕시코 생활수준을 북반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도 한다. 가난한 개발도상국가를 미국수출을 주도하는 새로운 시장으로 발전시키겠다고 했다.

한편 노동자와 환경그룹 등은 임금인하와 일자리 파괴, 건강과 환경, 안전기준에 대한 민주적 정책 결정 과정의 약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비판을 내세운다.

이제 10년이 지난 지금, 멕시코에서 야기된 나프타 결과는 폭발적인 농촌지역의 위기를 초래했다. 멕시코 정부 통계가 말하듯 빈곤 증가 수준은 끔직할 정도다. 더구나 증가하는 경제불평등과 환경피해 그리고 나프타의 유린에 맞서기 위해 노동자와 농민이 단결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은 나프타가 멕시코에 해악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나프타에서 10년을 살았던 멕시코인들, 이들은 1995년 1월 1일 나프타 협정 발효일과 같은 날 사파티스타가 봉기한다. ‘멕시코인의 삶의 현실을 무시하고 적용된 나프타’는 “우리에게 사형선고다”라며 전민중이 항쟁대열을 이룬다. 나프타의 의미를 깨달은 것.

농업과 농촌의 위기
멕시코는 전체 노동력의 1/4에 해당하는 800만이 농업에 종사했다. 그러나 나프타 후 농민인구는 650만으로 감소한다. 멕시코 주곡물은 옥수수. 하지만 저가의 미국산 옥수수가 대거 수입되면서 멕시코 옥수수 가격은 70% 폭락한다. 이로써 150만 멕시코 농민의 삶이 붕괴된다. 농민들은 과도하게 인구가 밀집된 도시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과잉노동력과 만연한 실업, 저임금으로 이어진다. 또한 새 일자리를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미국 국경을 넘기도 한다. 이런 이주자들의 필사적인 시도가 이어지면서 1998년부터 1,600명의 멕시코인들이 죽어갔다.

경제 전반에 이익이 되지 못한 투자와 수출증가
나프타의 지지자들은 종종 대미 수출 증가와 해외자본 유치 등을 성공 증거로 제시한다. 멕시코 정부가 제시하는 외국인 직접투자 비중은 1986-93년까지 34억달러에서 2001년 247억 달러로 증가했고, 2002년에는 세계 8위 수출국이 되었다.

이렇게 나프타 아래에서 수출과 투자가 증가하는 사이, 인간개발지수는 단지 54위를 기록했다. 1인당 소득은 단지 9% 인상. 이는 지난 60-70년대 성장률의 1/5에 불과하며, 4000만 노동자들의 25%에 해당하는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은 20% 감소했다. 제조업 노동자 평균임금은 하루 5달러에서 4달러로 감소. 노조를 결성하려는 노동자들의 시도는 권력에 의해 폭력을 당했다.

멕시코 정부는 최근 인구의 반 이상이 기본적인 의식주, 건강, 공공운송과 교육 등에 필요한 임금을 받지 못한다고 발표했다.

대외적인 수출과 투자는 증가한 반면 대부분의 멕시코 노동자들은 나프타에 의해 이익을 얻지 못했다. 나프타 조약이 “쉽게 들어와서 쉽게 나갈 수 있게” 외국투자자에 대한 규제를 제한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기술이전 요구, 멕시코 산업의 발전을 일시적이고 변하기 쉬운 외국투자자와 독립적으로 육성하도록 하는 등의 멕시코 정부 정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여파는 나프타 이후 형성된 80만개 중 1/3의 제조업 일자리가 보다 높은 이윤과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과 말레이지아 등으로 이전한다. 수출중심의 나프타 모델은 초국적 기업의 이윤창출에 기여했지만 중소영세 멕시코 기업들은 점차 망해갔다.

증가하는 배고픔, 농촌의 나프타에 대한 절망감은 이렇게 말한다.

“지방은 더 이상 가질 것이 없다”라고. 뒤늦게 악성종양같은 나프타의 폐악에 대한 민중들의 깨우침이 멕시코의 새로운 사회운동에 기름을 붓는다. 2002-3년, 정치적 격변과 함께 미국산 수입을 봉쇄하는 후아레즈 국제다리의 접수 등 대규모 국민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박성희 민주노총 교육국장 / pshkct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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