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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으로 돌아가 기계를 만지고 싶다”
변상인/하이닉스매그나칩사내하청지회

15만 볼트 고압 송전탑 위에서 하이닉스매그나칩사내하청지회 조합원 2명이 목숨을 내걸고 농성을 시작한 지 8일째인 5월24일, 송전탑 밑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또 다른 조합원을 만났다. 변상인(44)씨는 오늘도 송전탑 위에 있는 동지들에게 정성스레 밥을 담아 밧줄에 매달아 올린다. 정작 자신은 밥을 대충 때우더라도 위에 있는 동지들은 고생이 많으니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근처 식당에서 밥 두 그릇을 시켰다.
변씨는 LG반도체 시절인 1994년에 입사해 10년째 되던 2004년 12월25일 정리해고를 당했다. 하이닉스-매그나칩에서 일하던 하청노동자들은 모조리 해고됐고, 하청회사들은 새해 첫 날인 2005년 1월1일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그로부터 1년하고도 다섯 달이 됐다.
다른 장기투쟁 사업장이 그렇듯 하이닉스매그나칩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도 가장 큰 문제는 ‘생계’가 막막하다는 것이다. 변씨 역시 17개월의 투쟁동안 가장 어려운 점으로 생계를 꼽았다. “그나마 나는 집사람이 처남 식당에 나가 일하면서 버티고 있다”며 “특히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돈 때문에 못 사줄 때가 제일 가슴아프다”고 말한다. 요즘 중학교 2학년인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은 요즘 아이들답게 핸드폰을 갖고싶어하는 눈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조합원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적금이나 보험은 오래 전에 다 깨졌고, 아이들 학원 끊은 지도 오래며, 차압이 들어온 동지들도 많다. 그나마 지역의 금속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하거나 간간이 재정사업을 벌여서 조금씩 지원이 되고 있다. 더러 생계 때문에 일을 나가는 조합원들도 있지만 변씨는 지난 10월22일에 목을 다치는 바람에 그나마도 할 수가 없다. 신재교 하이닉스매그나칩사내하청지회장이 연행될 때 이를 막으려는 조합원과 경찰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경찰이 차도에 있던 변씨까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목이 골절돼 석 달이나 병원 신세를 졌다. 퇴원한 뒤에도 완전히 낫지 않아서 물리치료를 받아왔는데, 요즘은 송전탑에 올라가 있는 동지들 챙기느라 병원에 가지 못한다. 서울 삼성동 테헤란로에 있는 하이닉스 본사에서도 조합원 50여명이 5월23일부터 기습농성을 시작했다. 그렇게 고생하는 동지들이 있는데, 병원 갈 처지가 아니라는 게 변씨 생각이다.
1년 반 전, 해고됐을 때를 돌이켜 생각하니 착잡해진다. “10년 동안, 고통분담하자고 해서 임금 삭감, 상여금 반납 다 받아들였는데, 정작 회사가 정상궤도에 올랐는데도 임금을 동결하더라. 그러다 최저임금이 오르니 상여금을 잘라서 기본급에 맞추는 악순환이 계속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현장에서 나이 어린 엔지니어들이 작업 지시할 때 받은 인격적 모욕은 말도 못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하청노동자라는 이유로 온갖 고통을 다 받아들이고 참았는데, 노조 만들었다고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리니 기가 막히더라”며 애꿎은 담배를 다시 꺼내 문다. “사실 나는 노조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지만, 노조 했다고 쫓겨날 줄은 더욱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변씨는 17개월의 투쟁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나중에 내가 패배자가 되면 후회할지 모른다. 또 지금 당장의 삶이 고달프고 힘든 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당한 요구와 명분을 갖고 싸우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바램이라면 오직, 빨리 우리 투쟁이 끝나서 노동조합도 인정받고 조합원 모두가 공장에 돌아가 내가 만지던 기계 다시 만지는 것”이라고 한다. ‘꿈’을 이야기하는 중년노동자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다른 장기투쟁 중인 동지들에 대한 걱정도 잊지 않았다. “사실 길거리로 내몰려 싸우는 사업장 가운데서는 우리가 제일 오래됐다. 우리가 아직 이렇게 힘차게 싸우고 있으니, 다른 동지들도 용기 잃지 말고 열심히 함께 연대투쟁하자”며 “장기투쟁 사업장이 하나씩 타결되고 있으니, 언젠가는 우리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서로 보듬고 좋은 결과 나올 때까지 싸우자”고 말하는 변씨의 얼굴에 승리의 확신이 묻어난다.
이황미 leehm@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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