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민주노총 결의대회 3천여명 참가…

대구경북건설노조의 파업투쟁 23일째, 38층짜리 아파트 공사현장 점거농성 4일째를 맞는 6월23일, 대구에서 연대투쟁의 함성이 울려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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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3일 오후2시, '건설노조 총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민주노총 결의대회'가 열리는 대구 한나라당 당사 앞에는 민주노총 조합원 2천여 명이 속속 모여들었다.

그러나 같은 시각, 경찰은 민주노총 대구본부에서 집회장으로 이동하려는 노조 간부들을 막아섰다. 이들은 1시30분부터 30분 가량 경찰과 대치하다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조합원 5백여명과 함께 경찰 저지선을 뚫고 무사히 집회장소로 도착했다. 집회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대구는 긴장에 휩싸이고 있었다.

대구본부쪽에서 조합원들이 도착하자 오후2시30분부터 유기수 건설산업연맹 사무처장의 사회로 곧바로 집회가 시작됐다.

"지금 건설현장은 죽음의 현장이다. 내려가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여기서 내려갈 수 없다" 유기수 사무처장은 아파트 공사현장 100미터 위에서 고공농성중인 한 조합원의 말을 전했다. △시공참여자제도 철폐 △표준근로계약서 작성 △불법다단계하도급 철폐 △적정임금 인상 △스메끼리(유보금) 근절 △조합원 우선채용 등 요구사항 하나하나가 너무 절박한 데서 알 수 있듯, 지금 대구경북건설노조는 '목숨'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윤영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대회사에 나섰다.

"우리 건설노동자들은 '건설의 역군'라는 입에 발린 말을 들으며 현장에서 끽소리 못하고 일만 해왔는데, 임금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도리어 1년에 8백명이 떨어져 죽고, 감전돼 죽고, 깔려 죽고, 또 더 많은 건설노동자들은 불구가 돼가고 있다. 이판사판 공사판이란 말이 있는데, 이승과 저승 사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못 배워서 이렇게 사는 것인가? 우리가 못나서 이렇게 사는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세상에 서 있는 건물, 다리, 고속도로 모두 우리 건설노동자들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못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청의 하청, 또 하청의 하청, 다단계 하도급 때문이다. 또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불법사용자를 처벌해야할 경찰은 오히려 공문을 보내 파업노동자를 매도하는 등 별 짓을 다해가며 우리의 투쟁을 탄압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못 사는 이유를 다 안다. 그것이 이미 우리 투쟁이 승리하고 있다는 증거다. 저들이 치부를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승리하고 있다. 또 전국의 동지들이 같이하고 있으니, 우리는 승리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 80만 조합원들이 동지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그 전국의 동지들을 믿고 불 속에라도 뛰어들 태세로 끝까지 싸워나가자"

ICFTU 집행위에 참석중인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대신해 윤 수석부위원장이 대회사를 마친 뒤 사회자가 "조준호 위원장이 참석중인 ICFTU 회의에서 우리의 투쟁을 지지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는 소식이 방금 전해졌다"고 하자, 참가자들은 소중한 '국제연대'에 함성으로 답했다.

이어서 수배중인 조기현 대구경북건설노조 위원장이 연단에 올랐다.

"이미 우리는 승리하는 투쟁을 하고 있다. 경찰은 우리 투쟁이 시작할 때부터 불법이라 했고, 우리를 폭력배라며 112에 신고하라고 했다. 해묵은 공안탄압을 일삼으며 영장 발부를 남발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루하루 더욱 단결하고 있다.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거센 투쟁으로, 거리로 내몰았는가. 하루 임금 6만원에 목숨을 내걸고 일해야 하고, 동료들이 죽은 곳에 서서 일을 계속 해야했다.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가. 죽음의 건설현장을 엎어버리기 위해 우리가 떨쳐 일어난 것이다. 우리 문제 해결되지 않으면 현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 투쟁이 승리하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다. 지난 몇 년 동안 아파트값은 엄청나게 뛰어올랐지만, 우리 임금은 도리어 떨어졌다. 우리 피땀을 쥐어짜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목숨과 권리를 지켜내기 위해 이미 70명의 동지들이 100미터 위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그 동지들은 우리 투쟁이 승리하지 않으면 내려오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올라갔다. 건설노동자만의 투쟁이 아니다. 우리의 투쟁은 이미 8백만 비정규노동자의 투쟁이다. 우리는 죽기로 작정했다. 어제 전문업체들이 교섭에 나왔지만 고작 5% 올려준다며 생색만 냈다. 지난 몇십년간 빼앗긴 것을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아야겠다. 정면돌파로 탄압을 분쇄하고,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함께 이번 투쟁을 승리로 이끌자"

정광훈 민중연대 상임의장과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의 연대발언에 이어 '소리타래'가 공연에 나서 무더위를 잊게 해줬고, 남궁현 건설산업연맹 위원장도 "함께 투쟁해 승리하자"고 힘주어 말했다.

오후5시가 가까워질 때 집회를 마친 참가자 3천여명은 거리행진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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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장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으나, 참가자들은 대구 범어네거리에 도착하자 기습적으로 8차선 도로를 모조리 점거하고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참가자들은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투쟁결의를 밝혔다. 건설노동자들은 현장의 어려움을 호소했고, 연대투쟁에 나선 참가자들은 함께 싸울 것을 약속했다. 햇볕이 따가운 가운데, 네거리 한쪽에서는 건설노동자들이 직접 생수를 싣고 와 집회 참가자들이 목을 축일 수 있도록 했다.

오후6시께 집회 참가자들은 다시 거리행진을 계속해서 고공농성중인 대우건설 아파트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조합원들이 농성중인 현장에 도착하자 집회 참가자들은 함성과 박수를 높이높이 날려보냈고, 33층에서 농성중인 조합원들도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공사현장 앞에서 다시 집회가 시작됐다. 고공농성중인 오상용 노조 사무국장은 무전기를 통해 "지금 위에서 내려다보기만 해도 아찔한 이 아파트도 우리가 지은 것"이라며 "이제는 인간답게 살고싶다. 인간답게 일하고 인간대접받는 건설현장, 그런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절대 내려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공농성장을 경찰이 틀어막고 있어서, 남궁현 건설산업연맹 위원장 등이 대표로 농성자들을 만나고 내려왔으며, 병원노동자들은 농성자들의 건강상태를 살피고 내려왔다.

대표단 면담이 끝나고 오후7시30분쯤 집회가 마무리됐다. 조기현위원장은 마무리발언에 나서 "하루에 8시간 일하고, 임금20%인상 반드시 쟁취할 것"이라며 "전국에서 연대하러 온 동지들에게 정말 고맙다. 연대에 보답하는 길은 승리 뿐이다. 승리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전국에서 모여든 노동자들의 연대집회 성과로 대구시로부터 대화 요청이 들어왔다고 전해졌다. 전문업체들이 하루 전인 6월22일 교섭에 나섰지만, 진행중인 공사는 5% 인상, 차기 공사는 10% 인상해주겠다고 해 결렬된 바 있다.

조 위원장은 "그들의 안이 터무니없지만, 투쟁의 결과로 교섭에도 나오고 어쨌든 안이라도 내고 있는 것"이라며 "현장을 바꾸고 삶을 바꾸려면 보다 강고한 투쟁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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