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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건설노조 상경투쟁단 촛불, 노숙투쟁 동행취재
[사진1]
1일 저녁 포항에서 하중근 씨를 추모하는 1천 500여 개의 촛불이 밝혀진 시각. 서울에서도 150여 개의 촛불이 밝혀졌다. 하중근 씨가 사망한 1일 오전, 부랴부랴 짐을 챙겨 상경한 포항지역건설노조, 전남동부경남서부건설노조 조합원들과 가족대책위 등이 이날 저녁 8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개최한 것.

<b>동화면세점 앞 밝힌 하중근 추모 촛불..9개월 전 이곳에서는 전용철 추모 촛불이</b>

'근조 하중근 조합원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쓰인 플랭카드가 내 걸렸다.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결의는 높았다. 힘찬 팔뚝질과 터져나오는 구호소리. "동지여 기다려라. 우리가 한을 푼다", "열사의 염원이다. 노동해방 쟁취하자"

이날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은 9개월 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당시 이곳에서는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사망한 전용철 농민을 추모하는 촛불문화제가 개최됐었다. 그 때도 경찰은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바뀐 것이 있다면, 경찰 폭력진압으로 죽임을 당한 이가 농민이 아닌 노동자라는 것.

보수언론들은 이들의 목소리를 왜곡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았다. 자신들이라도 적극적으로 알려야 겠다는 마음이었을까? 몇 몇 노동자들이 나무에 묶어뒀던 플랭카드를 풀어 직접 들고 인도로 내려간다. 다른 조합원들은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담은 커다란 피켓을 몸 앞 뒤로 뒤집어 쓰고 인도로 나섰다.

문화제가 열린 동화면세점 앞 광장 앞으로는 조선일보 사옥이, 길 건너 왼쪽으로는 휘황 찬란한 동아일보 사옥이, 건설노동자들이 앉은 뒤 편으로는 정부종합청사와 멀리 청와대가 보인다. 언론-경찰-포항시-포스코는 건설노동자들을 고립시키기 위해 힘을 합쳤다. 정부는 공권력 투입 압박으로, 검찰과 법원은 대량구속으로 지원했다.

보수언론사 사옥과 정부청사에 둘러쌓여 있는 동화면세점 앞 광장에 앉아 건설노동자들은 외쳤다. "가진 놈들의 목숨은 중요하고 우리 목숨은 파리 목숨이냐? 어느 언론에 제대로 나온 적이 있냐? 하중근 동지의 억울한 죽음을 알려내고 그 목숨이 헛되지 않도록 투쟁하자."

이들은 언론에 불신감을 드러내면서도, 살을 붙이지도 않고 빼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자신들의 처지를 반영해 줄 언론에 몹시 목말라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합원은 다짜고짜 "언론이 굉장히 괘씸하다"라고 말했다. "포스코를 점거할 때도 저희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닙니다. 포스코가 우리 파업을 무력화시키려고 대체인력을 투입해서 우리 조합원들이 모여 그걸 막았던 거고. 그리고 나서 포스코의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사과를 하지 않아 밖에서 노숙하며 하루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또 사과하라고 시간을 줬습니다. 오히려 경찰병력을 증강해 우리를 밀어붙이더군요. 본사 건물로 어쩔 수 없이 밀려 들어간 겁니다. 이런 상황이 언론에는 한 줄도 안 나오데요." 분노가 풀리지 않는 듯 "신문에 난 건 70%가 거짓말입니다. 포항에서도 경찰이 먼저 폭력을 휘둘렀습니다."라는 말이 이어졌다.

<b>"우리 투쟁 정당한데, 가난한 노동자들을 왜 짓밟습니까?"</b>

거푸집을 만드는 일을 하는 포항건설노조 비계분회 임성민 조합원(47). 눈 앞에 보이는 보수언론사 사옥을 향해 한 마디 던진다. "우리가 파업을 하는 것은 내 가족, 이웃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언론들은 비난을 퍼붓지만 우리의 투쟁은 아주 정당합니다. 우리는 밥 한 그릇 더 주면 고맙게 여기는 가난한 노동자들입니다. 왜 짓밟습니까? 저희 소원 한 가집니다. 같이 물 먹고 밥 먹고 하자는 겁니다. 우리를 못되게 보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언론과 정부, 검경의 전방위적 탄압에도 건설노동자들은 다시 뭉쳤다. 포스코 점거 농성 해산 뒤 모였던 1천700여 명의 대오는 3천여 명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서울로 상경한 100여 명의 조합원들은 자진해서 올라왔다. 왜일까?

"하중근 동지를 위해서 왔습니다. 동료가 경찰 방패에 맞아 죽었는데 같은 조합원으로서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우리가 포항시청 앞에서 집회를 할 때 아스팔트 온도가 40도를 넘었었습니다. 서울은 포항에 비하면 시원하네요. 정부나 경찰은 우리가 (포스코 점거농성을) 자진해산하면 선처하고 교섭을 주선하겠다고 했는데, 58명을 구속시켰습니다. 이젠 동료들을 봐서라도 죽을 때까지 싸울 겁니다."

이들은 조합원들이 처음보다 더 똘똘 뭉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 이제는 법도 안 무섭습니다. 포스코가 우리한테 손해배상을 청구한다고 하데요. 손해배상 청구하면 어짜피 죽습니다. 앉아서 죽느니 싸우다 죽는게 낫습니다."

<b>"승리하는 그날까지 꺽이지 않을 겁니다. 데모않고도 편한 세상 왔으면..." </b>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노조 간부 등 58명이나 구속한 것을 괘씸해 한 김재봉 조합원(53. 배관분회)는 "승리하는 그날까지 절대 우리는 꺽이지 않을 것"이라며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데모하지 않고도 편히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김진재 포항건설노조 상경투쟁단장은 "임금 안 올려도 좋다. 단체협약 한 줄 합의 안 돼도 좋다. 그러나 하중근 조합원 문제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건설노동자들의 힘으로 동료의 억울한 죽음의 한을 풀겠다는 다짐이다. 100여 명의 포항지역건설노조, 전남동부경남서부건설노조 상경투쟁단은 허공을 향해 길게 함성을 내지르고 이날의 길었던 상경투쟁 일정을 마감했다.

[표시작]<b>"기자님! 있는 그대로만 써주세요"</b>

하중근 조합원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포항 동국대병원 앞에 2천여 명이 모였다. 1일 새벽 2시경이었다. 제대로 잠도 청하지 못하고, 상경투쟁단은 오전 9시 서울로 향했다. 3시 대검찰청 앞 규탄대회, 광화문으로 이동, 열린시민공원에서 도시락으로 저녁 해결. 곧이어 8시 촛불문화제. 빠듯한 일정이었다.

10시가 넘어 노숙장소인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으로 온 이들. 조별로 모여 하루 일정을 짧게 정리하고 내일 일정을 공유했다. 6시반 기상, 아침식사, 출근 선전전. 10시 반 강남구 대치동 포스코 앞 기자회견. 2시 서울역 집회, 행진해서 서대문 경찰청 앞 집회. 8시 광화문 촛불문화제.

오늘보다 더 빠듯한 내일 일정을 생각하면 잠을 청해야 하지만, 쉽사지 잠이 오지 않는다. 조별로 7-8명씩 모여 간단히 술잔을 기울인다. 공원 바닥에 앉아. 안주라고 별 것 없다. 과자부스러기.

"우리 분회가 포스코 본사 점거 투쟁할 때는 문제가 좀 있었지 않습니까? 다 털어버리고 이번 상경투쟁에서 마음을 모아서 모범을 보입시다." 서로를 독려하며 고생했다고 잔을 부딪힌다. "기자 양반도 이리와 앉으세요. 고생했는데..." 고생했다는 말을 들으니 무안할 따름이다. "한 잔 했다고 삐뚤빼뚤 쓰면 안 되는데. 하하" 옆에 조합원이 농을 건넨다.

자진해산하면 선처하겠다고 해놓고, 막상 자진해산하니 단일 노동사건으로 최대인 58명을 구속한 나랏님들이 오늘의 안주감이다.

"내무부 장관(총리를 말한다)가 선처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그러면 안 되지. 우리는 내무부장관까지 약속을 했는데 믿었지. 그래서 자진해산하는데, 아 글쎄 경찰들이 내려오는 족족 경찰차에 태우는거라. 그래서 위원장이 안 되겠다 싶어서 다 다시 올라가라고 해서 그냥 다 올라갔잖아."

<b> "아 이 사람아. 대통령도 말을 뒤집는 마당에 그 말을 믿었나?"</b>

건설노동자들의 파업투쟁 반대시위에 참여했던 소위 포항시민들도 말밥에 올랐다. "아! 시위에 참가하면 시간당 7천원씩 준다고 하며 사람을 모았다고 하더라구요." "시간당 7천원이면 쏠쏠하네.(웃음)" "아! 내가 여관에서 살잖아. 보니까 우리 여관 주인도 갔다왔더라구. 그래서 내가 그냥 여관에서 나와 버렸잖아"

얘기를 하다보니 역시나 자신들의 투쟁을 왜곡하고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언론으로 대화가 모아진다. "제발 좀 잘 써달라"는 당부도 있었다.

밤 11시 반. 하나 둘 맨바닥에 얇은 스티로폼을 깔고 누워 잠을 청한다. 잠도둑이라는 열대야가 노숙하는 이들에겐 오히려 다행이겠다 싶었다. 상경투쟁 기간동안 수고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일어서는 기자에게 무안하게도 박수를 쳐 주신다.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단다. 고생했단다. 역시 무안할 따름이다. 돌아서는 기자에게 50대 건설노동자가 다시한번 부탁한다. "잘 좀 써달라는 것"이었다. 아니 "있는 그대로만 써달라"는 것이었다. [표끝]

(글=공동취재단 정웅재 기자/민중의소리)

민주노총  kctu@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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