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건설노조 노동자장으로 포항 그리고 서울에서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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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새벽부터 포항엔 비가 내렸다. 열사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열사를 우리들 곁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너무나 서러워, 내리는 이 비가 더욱 한스럽게 느껴지는 날이다.

이날 오전 9시 포항 동국대병원 영안실에서는 고 하중근 열사의 발인이 거행되었다. 유가족과 포항건설노조 조합원, 지역과 전국에서 모여든 추모객들로 가득찼다.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살아남은 이에겐 너무나 큰 고통이다. 억울한 죽임을 당한 고 하중근 열사의 한을 풀어주지도 못하고 영영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은 참석한 모든 이들을 무겁게 했다.

발인이 진행되고 있는 장례식장 벽면엔 '2006년 7월 16일 절대 잊지 않으리'라는 문구가 씌여있다.

고 하중근 열사의 큰형은 발인식이 끝난 뒤 "유족대표로서 기자들에게 부탁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건설노동자들이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있다. 조속한 시일내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 우리나라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다. 내 동생과 같은 희생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노동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세요"라며 흐느껴 울었다.

가족들의 오열속에 고 하중근 열사의 시신이 운구버스에 실려졌다. 생전에 넘기 힘들었던 형산강 다리앞에서 노제를 기다리고 있는 포항건설노동자 곁으로 운구버스는 천천히 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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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30분 형산강 로타리에 운구행렬이 도착했다. 최규만 포항건설노조 직무대행을 비롯한 6명의 상주가 '고 하중근 열사'를 맞았다. 주상 및 상제들의 분향 재배를 시작으로 노제가 시작되었다.

"때리지마, 아프다는 외마디도 지르지 못한채 돌아가신 열사여...노동이 없고, 착취가 없고, 차별이 없고, 억압도 없는 세상끝으로 가버린 하중근 열사여..."조광원 조합원이 추문을 낭독하며 흐느꼈다.

단병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조사를 통해 노무현 정부를 강렬히 비난했다. 또한 "진실은 분명히 밝혀 질 것이다. 오늘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라고 말하면서 열사의 넋을 기렸다.

<b>"가세 가세 해방의 땅, 살아서는 못가던 길 찾아가세..."</b>

추모곡이 울려퍼지면서 노제를 마무리했다. 건설노조 깃발이 앞장서고 명정, 영정, 풍물, 운구, 유족, 만장, 장례위원, 포항건설 노동자와 참석한 많은 노동자들이 순서대로 행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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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강 다리를 넘었다. 포스코 공장 정문을 지나 포스코 본사가 있는 정문앞까지 영결식이 거행되는 곳까지 2시간여 동안 장례행렬이 행진했다.

<b>열사는 갔지만 진상규명, 포항건설노조 사태 해결을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b>

"7월 16일도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3000여명의 포스코 본사점거 농성자들에게 먹을거리를 전달하기 위해 나왔던 하중근 열사는 무참한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경찰 소화기에 맞고 쓰러져나갔다. 그리고 8월 1일 눈을 감았다. 누가봐도 경찰에 의한 사망인데, 국과수가 진상조사 발표장에 가족 참관도 봉쇄하면서 한다는 이야기가 '넘어져 돌아가셨을 가능성이 크다' 말도 안된다. 우리가 투쟁으로 진상규명해야 한다. 우리의 투쟁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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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시작]<b>고 하중근 열사 약력 및 사고 이후 경과보고</b>

<b><하중근 열사 약력></b>

1962년 7월 10일 대보면 대보리 출생
대보면에서 초중학교 졸업
포항수산업고등학교 졸업
원양어선 선원으로 10여년 생활
1997년 포항건설노조 가입, 10년 동안 포스코 현장에서 일해옴

2006년 7월 16일 포항 형산로터리에서 열린 '건설노동자 투쟁 승리결의대회'에 참석하여 집회대오 맨앞에 서 계시다가 사전경고 없이 갑자기 소화기를 쏘고,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며 집회장에 난입한 경찰의 집단폭력으로 중상을 입고 동국대병원에 입원

2006년 8월 1일 새벽 2시55분 두차례 대수술에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상태에 빠져 끝내 운명을 달리 하셨다. 유족으로 81세의 노모와 두분의 형님, 세분의 누님이 계심

<b><사고 이후 경과></b>

- 7월 16일 15:01분 경찰의 집단 폭행으로 중상을 입고, 조합원들의 부축을 받아 동대병원에 입원, 다발성 외상과 뇌출혈, 뇌부종으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짐
- 7월 17일 두 차례 뇌수술을 받음
- 7월 18일 대구 동산병원에 이송했으나 회생불능이란 판정을 받고, 다시 동국대병원으로 이송
- 7월 22일 하중근 조합원 사고원인 진상조사단의 조사 진행
- 7월 28일 1차 진상조사 결과 발표(민주노총 사무실)
- 7월 19일 민주노총 영남권 결의대회
- 8월 1일 고 하중근 열사 사망
- 8월 2일 국과수 부검팀, 검사, 감식반, 유족, 진상조사단이 참가한 가운데 부검 실시
- 8월 3일 서울프레스센타에서 진상조사단 2차 진상조사결과 발표
- 8월 4일, 9일 고 하중근 열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전국노동자대회(포항)
- 8월 15일 전국노동자대회(서울)
- 8월 18일 진상조사단의 목격자 진술 및 현장조사 진행
- 8월 19일 고 하중근 열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전국노동자대회
- 8월 22일과 23일 유족과 대책위의 경찰청, 국과수 항의 방문
- 8월 24일 3차 진상조사 결과 발표. 국가인권위원회 목격자 조사 시작
- 8월 27일 전국노동자대회(부산)
- 8월 30일과 31일 포항과 울산의 목격자와 참고인 조사, 사고현장 방문, 병원, 언론사 방문 조사
- 9월 1일 경찰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임
- 사고이후 포항과 전국 23개 지역에서 다양하게 전개된 촛불 기원제, 추모제가 진행되었으며, 대책위원회 차원의 서울 광화문 열린공원 농성 진행
- 이런 상황에서 경찰은 자신들의 집단 폭력을 인정하기는 커녕, 경찰의 집단폭행 당시 경력운영을 책임지던 경북 경찰청을 앞세워 유족의 참석을 가로막은채 '넘어져 사망'했다는 어처구니 없는 내용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부검 당시 합의했던 부검감정서와 감식내용에 대한 정보 공개 거부를 결정한데 이어, 지금도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고, 국회 행자위원들을 상대로 집단폭력을 왜곡하기 위한 로비를 펼치는 등 사태를 왜곡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표끝]

<b>포스코 앞 도착, 또다시 분노가 인다</b>

아직 아무것도 해결 된 것이 없다. 애타는 가족들을 위해 오늘 열사를 보내지만, 우리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열사정신 계승' 하중근 열사 건설노동자장이 6일 정오 포항 포스코 본사앞에서 열렸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단병호 의원을 비롯하여 조준호 민주노총위원장과 산하연맹 위원장, 지역본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이 개최되었다.

<b>눈물로 하중근 열사를 보내는 조준호 위원장</b>

조준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조사를 읽기 위해 무대로 올라섰으나 섣불리 말문을 열지 못했다. 목이 메이며 "80만 조합원의 한과 슬픔을 안고 삼가 명복을 빕니다." " 무슨 할말이 있어... 동지를 이렇게 보내면서 위원장으로서 죄인으로서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이건 아닌데...850만 비정규 노동자의 한이 건설노동자의 한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열사를 죽인 책임자를 찾아내지 못하고 이렇게 동지를 보냅니다." "약속하겠다.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 당신의 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한을 1500만 노동자의 희망으로 만들어내겠다"며 성토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국회의원의 조사도 이어졌다. "살인정권 노무현 정권을 가슴깊이 새기며, 비정규 투쟁 승리만이 하늘나라로 열사를 잘 보내드리는 것이다"라며 넋을 기렸다. 이어 남궁현 건설산업연맹 위원장의 조사가 진행되었다.

송경동 시인이 열사에게 보내는 조시를 낭독했고, 열사를 기리는 노래 굿판이 벌어졌다. 굿판이 벌어지자마자 비가 다시 세차게 솟아졌다. 분향과 헌화 그리고 호상인사가 진행되고 이날의 영결식을 모두 마무리했다.

고 하중근 동지는 이날 화장을 지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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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 고 하중근 열사 떠나는 길에 (송경동 시인)

안녕
이젠 모두 안녕
하청도 재하청도
일용공 노가다 잔업 철야 대마치
반지하 월셋방 생쥐들
바퀴벌레 때전 이불
야이 개새끼들아
까닭모를 아픔도 슬픔도
새벽밥 눈칫밥 기름밥
새참의 빵도 우유도 라면도
이젠 모두 안녕

안녕
내 불우했던 어린시절
부잣집 아들을 꿈꾸며 지새우던 밤
살아, 서로가 서로에게
피눈물 진흙탕 갈퀴가 되고 송곳이 되던
아버지 어머니
2년만에 날 버리고 떠난 그 조선족 여인도
모두 안녕

안녕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삶의 여유
한번도 내가 발음해 보지 못했던
이세상의 그 모든 좋은 말들
글을 몰라 쓰지 못했던 수많은 편지들
그 여름의 파도소리
가을에 낙엽
겨울 눈송이
가끔은 낭만에 젖던 내 늙어버린 청춘도
모두 안녕

안녕
그날의 끔찍했던 기억도 안녕
뒷머리를 찍던 방패날
갈비뼈 우스러지던 군홧발
척척 삭신을 감던 곤봉맛
퍽, 뇌가 깨지던 소리
내가 얼마나 하찮은 인생인지를 가르쳐주던
짐승같던 너희들 목소리, 그 눈빛들도
이젠 모두 안녕

안녕
거짓된 세상 썩은 세상
이제 나 다시 착취받지 않으리니
이제 나 다시 차별받지 않으리니
너희들의 종이 아닌
재관공 하씨가 아닌
건설노동자 해방투쟁의 꺼지지 않는 넋이 되리니
새로운 세계를 주조하는 도가니 속 화엄 용광로가 되리니
착취받는 용접불꽃이 아닌
버림받는 산소불꽃이 아닌
포스코의 저 간교한 망각의 빛이 아닌
저 하늘 영롱한 별빛이 되리니
벗들이여
저들의 세상 끝장내고
우리가 세계의 주인이 되어 만나는 그날
나 다시 이 형산강 로터리에 되살아 오리니
단결 투쟁
인간해방 그날까지
그립던 날들아 사랑했던 사람들아
굴하지 말고 지지말고
투쟁
다 못다한 이야기들아
이젠 모두 안녕 안녕


[표시작]<b>10보1배 전개...하중근 열사 추모제 서울에서도 개최</b>

포항건설노조 상경투쟁단 70여명과 함께 진행된 서울 추모제에 참석한 노동자들은 허망한 죽음 앞에 내내 오열하고 한스러워했다.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오늘 우리는 동지를 허망하게 보낼 수 밖에 없지만 이 죽음을 끝까지 부둥켜안고 투쟁할 것이다. 결코 이렇게 보낼 수 없다"며 발언했다.

문경식 전농 의장도 "작년 두 농민이 돌아가신 이후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자고 다짐했건만 또 억울한 죽음을 보내야 한다. 많은 자책이 든다"며 "반드시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어서 다시는 이런 꼴을 보지말자"며 함께 투쟁하자고 주장했다.

또한 김흥현 전국빈민연합 의장은 "오늘 땅속에 묻어야 하는 것은 한많은 노가다 인생이 아니라 포스코 자본과 폭력정권"이라며 분노했다. 고종환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또 동지를 보냈다. 노동자라는 이유로 죽어야 하는 세상, 노동할 권리 휴식할 권리를 달라하면 죽어야 하는 세상이다"라며 주먹을 움켜쥐기도 했다.

어떤 추도사로도 한을 풀길이 없는 가운데 포항건설노동자들과 참가한 동지들은 고 하중근열사에게 헌화했다. 이용식 건설연맹 지도위원의 발언을 끝으로 추모제는 끝을 맺었다.

이용식 지도위원은 "눈물을 닦자 분하고 억울하지만 한숨을 거두자, 이 한을 풀 수 있는 것은 우리 건설노동자 자신들 뿐이다"라고 지쳐가는 포항 선걸노동자들을 격려하며 좌절하지 말고, 다시 조직하고 다시 투쟁에 나서자고 촉구했다.

11시경 참가자들은 열사가 생전에 불렀을 노래, 죽기 바로 직전에도 불렀을 노래, '철의 노동자'를 부르며 10보 1배의 행진에 나섰다. 시민들의 관심어린 시선속에 조용히 진행된 10보 1배 행진은 광화문에서 마무리되었다.

[사진6][표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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