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5개월째 수배생활을 하면서 안타깝다기 보다는, 수배생활을 하게 된 것은 책임을 맡은 부분에서 마무리를 해야 할 현실적 과제가 있기 때문이었다. 수배상태에 놓였다는 어려움보다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졌다는 부분이 더 안타깝다"며 말문을 연 백석근 건설산업연맹 지역업종협의회 의장.

지금 백석근 의장은 5개월째 수배중이다. 이땅의 건설일용노동자들은 일회용 컵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들은 일꺼리에 맞춰 맞춤식의 삶을 살아야 한다. 대구경북지역 건설일용노동자 대투쟁, 울산건설 플랜트 대투쟁, 경기지역 건설노조 대투쟁, 포스코의 부당노동 행태에 저항한 포항대투쟁 등 원청에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소박한 요구와 함께 굵직한 투쟁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권과 자본의 살육적인 폭력진압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부상당했다.

포항교도소, 대구교도소 등을 비롯한 전국 교도소에 걸쳐 노동자들이 대량 투옥되어있다. 민주노총이 11.15 무기한 총파업 돌입을 선언했다.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 6월 항쟁이후 최대의 민중총궐기를 조직해냄으로써 '썩어빠진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열정과 신념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수개월째 수배상태로 지내고 있는 백석근 의장을 만나, 이번 총파업 총궐기 투쟁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았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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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수배생활이 길어지고 있다. 주요투쟁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b>=수배생활을 시작한지 5개월째다. 건설일용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 과정에서 (나는)상급조직 임원으로서 일상적인 활동을 수행했다. 대구경북지역건설노조 6월 총파업 과정에서 수배를 당했다.

대구 지역에서의 투쟁은 상징적 의미가 있는 투쟁이었다. 비정규직이면서도 사회적 괄시를 받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건설일용노동자들이 건축현장에서 인간기본권을 외치며 투쟁을 벌였다. 해방이후 첫 대규모 파업 투쟁을 벌인 것이다. 건설일용노동자들은 32일간 파업투쟁을 벌이며 10시간 노동을 8시간으로, 생활임금 향상을, 다단계 하도급 해소 등을 요구했다. 이것은 자본가에게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투쟁이었으며 이내 비정규직 노동투쟁에 전반에까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 과정에서 어려웠던 지점은 여전히 훈련되지 못한 부분 조직의 역량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과 함께, 이들에 대한 사회 인식은 지나치게 건설노동자들의 처지를 폄훼하거나 그 사정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구경북지역)파업종료 이후 30여 명이 구속됐다.

<b>▲불안정노동에 시달리는 억압구조는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b>=건설노조가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어차피 바닥에서 만들어졌던 조직이기 때문에 현장 건강성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전반적인 노조운동들이 투쟁방향과 전망을 어떻게 밝히냐에 따라 대구와 같은 투쟁이 조직화되고 미래가 가늠될 것으로 생각한다.

현 정세는 보수와 신구기득권층이 다시 복잡한 방식으로 다양한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있다. 상당히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11월 민주노총이 준비하고 결행하기로 결정한 총파업 투쟁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주변을 살펴보면 현실적인 여건은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지난 7월 총파업 투쟁, 고 하중근 열사 문제 등을 비춰보면 반드시 필요한 투쟁이지만 조직화는 만만치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 시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부가 민주노총의 위기를 언급하고 있다. 이번 총파업 투쟁이 새로운 노동조합운동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계기로 작동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아야 한다. 총파업 요구안에 나와있듯이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쟁취를 선언적 의미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현장내용성을 담고 실현되기를 바란다. 특수고용 노동자 문제만 보더라도 문제가 잘 풀리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비정규직 문제는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산업특성에 따라 각 산업군들이 전방화되었고 자본이윤 창출 과정에서 자본은 오로지 최대이윤을 확보하기 위하여 비정규직을 무차별 양산하고 있다.

건설종사자의 경우 다양한 고용형태를 갖고 있다. 수주, 주문생산 되는 부분들이 타산업과는 다르다. 고용에 대한 부분들이 주문에 따라 변칙적이다. 일용직, 임시직, 계약직, 도급직 등으로 고용형태가 나타났다. 자본계층은 이 부분을 엄격하게 통제하기 위하여 다단계하도급이라는 형태로 발전시켰다.

장비 쪽의 경우를 살펴보면 (자본가들이)장비를 불하한 다음 도급식으로 일을 주는 과정에서 소위 자영업자 아닌 자영업자들이 양산됐다. 실제 노동형태로 보면 이들은 분명히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장비를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장으로 취급받고 있다. 건설자본들이 (건설)장비를 보유하고 이것을 시공에 참여시키는 구조인데, 장비 유지보수 문제를 노동자에게 떠맣긴다. 이런 문제 때문에 나타난 게 바로 특수고용 문제이다. 현재 30만대의 건설장비들이 있다.

<b>▲얼마전 노동부가 특수고용노동자 보호법안을 발표했는데</b>=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보장 문제와 관련하여 노동부가 관련 법안을 발표했다. 노동부는 특고노동자들에 대한 권한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성 인정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보호정책을 가져다 붙이는 형식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노동자라는 존재성이 굴절되고 왜곡된 상태에서 여타의 (현재 노동부가 내놓은 특고법안같은)제도적, 법적 부분은 무의미하다.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현재 조직화되어있는 조직들이 (노동자라는)존재성 여부에 대한 투쟁을 강력하게 펼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고노동자들의 조직화가 절실하다. 특고노동자들이 뭉쳐서 권익과 존재성을 올바로 찾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b>▲운동과정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b>=노동운동에 뛰어든지는 이십여 년째다. 80년대 중반부터 노동운동과 빈민운동을 시작했다. 현재 운동 폭은 상당히 넓어졌다. 과거 운동양상과 비교하면 오늘날의 운동에서는 절실함이 부족하다. 과거에는 자기 삶의 절실함들이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열정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부분들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당시 활동가들은 전문성과 자기전망성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했다. 깊이 있는 고민을 했던 시기였다.

지금은 교육을 강조하지만 당시와 비교하면 교육양은 적어 보인다. 과거에는 사례조차 없었다. 배우는 것과 실천하는 것을 겸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근본 원칙같은 것이 있었다. 반면에 지금은 현실적 이해와 현안에 대한 문제 해결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 상황에 대한 인식, 현안투쟁에 대한 방향설정 등과 관련하여 원칙적이고 중심적으로 사고하기보다는 현상에만 매달리고 있다. 조직화라는 부분에 대하여 과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실천적 과제를 자기 역할로 삼아야 한다. 상당한 부분들에 대한 학습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기가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현 정세에 대한 올바른 인식공유와 공동고민을 통하여 실질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아주 작은 단위에서부터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 아주 작은 실천으로부터 큰 흐름이 만들어진다. 주체적 동력 그 자체를 내 문제로 받아 들여야 한다. 수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정치총파업 형태만으로 인식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97년 노개투 총파업 당시 모든 문제를 자기문제로 받아들였었다. 내용뿐만 아니라 헌신적인 활동가들과 대중들이 상호 호흡하면서 (실천적)내용들을 만들었다. 운동하는 간부들만의 잔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b>▲노무현 읽기</b>=노무현 정권 탄압을 보면 "아직 너희들은 순서가 아니다"라고 간주하는 것 같다. 일용직 노동자들한테 밀린다고 생각하니까 자기네들도 부끄럽지 않았을까? 결국 어느 사회나 막론하고 정권이든 권력이든 간에 자기들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이 있는 것 같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감당할 수 있는 정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기득권층을 그대로 두고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발언은 이중적이다. 노무현 정권이 서민의 눈물을 닦아준다는 정권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든다는 엄청난 전환을 했다. 서민 눈물을 탄압하는 정권으로 변질됐다.

작년 울산 투쟁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할 때 에스케이 최태원 회장이 동반했다. 결국 울산지역이 엄청난 탄압 대상으로 전락했고 올해 포항 역시 주탄압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세계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포스코에 맞서 일당직 노동자들이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느냐, 저항하면 이렇게 된다라는 본떼를 보이는 기득권적 인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의 변질에 대하여 어떤 깊이로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다. 취임 당시를 상기하면 기득권적 부분에 대하여 계층적 자기 모습은 원래 (기득권층과 야합하거나 동반하는 모습으로)그랬을 수도 있다. 노 정권의 초기 활동과정에서 그는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라고 공언했는데 이게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그렇다면 최소한 건설현장에서 보면 일하고 돈 받지 못해 고공농성, 분신같은 문제는 사라져야 하지 않았나. 도대체 해결된 게 무엇인가.

97년 이전과 비교하여 그 때보다 더 열악한 상태이다. 노무현 정권 자체는 무능하고 무기력하다. "그만 하라"라고 말하고 싶다. 정권과 자본에 대한 통제가 안 되는 것 같다. 자신의 한계가 노출되면서 기득권층과 야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기득권층은 이 틈을 빌어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font color=darkblue>"늦새벽까지 이어진 백석근 의장 인터뷰 자리에 전 민족미술인협의회 회원으로 87 투쟁 당시 웅장한 걸개그림을 그렸던 장본인 김병용 현 토목건축협의회 조직국장도 합세했다. 그 역시 지금은 건설노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87년도 투쟁은 노동자들의 인간선언이었다면 97년 노개투는 세상의 주인으로서의 재탄생을 담은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민주노총 1115 무기한 총파업과 1122 민중총궐기 투쟁은 민중의 쌓인 한, 응어리를 풀어내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혔다.</font>

▲87년도 투쟁을 한마디로 말하면 노동자들의 인간선언이었다. 97 노개투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인식을 가졌다. 올해의 경우 매년 똑같은 총파업이 아니라 이제가지 준비하고 억눌려왔던 한을 풀어 헤치는 노동해방 투쟁이어야 한다. 응어리진 심정을 풀 수 있어야 한다. 이게 희망이지 않겠는가.

건설노조의 경우 18년 역사를 갖고 있다. 왜 하필 건설노조냐. 눈에 보이지도 않고 활동해도 보이지 않는 건설노조를 왜 택하였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동안 좌절도 많이 했다. 막막했다. 건설노조 일을 하면서 최소한의 근로기준법도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심정으로 (활동을)시작했다.

건설노동자들은 상근자들에게 이렇게 요구했다. "아무 것도 지켜지지 않는 현장(근로기준법조차 이행되지 않는 현장)에서 너희들이(활동가들이) 뭔가를 보여달라, 하나라도 바뀐다면, 나 또한 당신이 말하는 데로 따라가겠다"라고. 노동자들은 변화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었다. 올해 벌였던 대구와 포항투쟁을 남다르게 생각한다. 억눌려왔던 건설노동자들이 "우리도 인간이다"라며 대접해달라고 외쳤다. 그러나 자본과 검찰은 노동자들의 소박한 주장을 묵살한 채 몸서리치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 억울하다.

<민주노총 편집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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