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역에 통일 바람을!

전국을 순회하며 8월 통일의 열기를 끌어 올리는 통일선봉대와 함께 각 지역에서도 지역통선대활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일 광주전남 노동자통선대가 활동을 시작하였고 경기지역에서도 중앙통선대와 같이 3일부터 활동을 시작해 지역에서 통일의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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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반전 민족공조 1기 경기지역 자주통일선봉대는 지난 11일 활동 아홉째날, 통일열사묘와 두 여중생 추모비를 참배하였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 출근선전전을 노동자 통선대와 함께 진행하였고 어제 선전전에서 몸짓공연의 자신감을 얻어 선전전에서 몸짓공연을 계속 하였다.

좀 긴 시간을 버스에서 각 소대별로 열정적으로 노래연습을 하면서 보내고 마석 모란공원을 찾아 갔다.
지통대 활동의 반을 보내고 도착한 모란공원의 민족민주열사묘는 우리지통대에 많은 고민과 각성의 계기를 주었다. 노동자의 눈을 뜨게 만들었던 전태일열사, 남북 민간인 교류와 통일운동 대중화의 물꼬를 틔우신 문익환목사, 의문의 죽음을 당하신 최종길열사, 여중생 투쟁을 뜨겁게 만들었던 민중의 벗 제종철열사, 여성노동운동과 통일운동의 뚝심이요 권낙기 선생님의 부인이신 이순옥열사, 자신의 목숨을 투쟁의 불씨로 만든 박래전열사 등의 묘를 둘러보며 결심과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버스는 의정부로 향해서 두 여중생 추모비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공공연맹 경기도노동조합 조합원들과 민주노총 경기북부지구협의회 의장님이 함께 해주셨다.

참으로 안타깝고 분노가 치미는 것은 여중생 추모비가 우리 온 국민이 한푼두푼 모은 정성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고부대인 미2사단의 이름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미군측이나 시청에서 추모비 자리도 내주지 않아서 추모비를 세울 수가 없었다고 하는데, 두 여중생의 부모님들은 미2사단의 이름으로라도 추모비를 세우자고 하셔서 그냥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해도 맘이 아프고, 현실적인 반성과 책임없이 이런 형식적인 추모비로 생색이나 내려고 하는 주한미군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지 않을 수 없었다.

동두천 선전전으로 향했다.
여기에는 아까부터 함께했던 경기도노조원분들과 경기북부협의회 의장님께서 함께 해주셨다. 그리고 버스로 동두천 내의 미군기지를 돌면서 동두천의 상황에 대한 동두천 시민연대 강홍구님의 설명을 들었다.

동두천시내에 내려 선전전을 시작했다. 바로 근처에서는 '무책임한 미군재배치'에 대해 항의하는 천막농성장이 있었다. 동두천 시의회 의장과 의원이 함께하고 있는 이 대책위는 반환될 땅에 대한 기득권과 동두천시에서의 영향력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고자 작년에 만들어진 대책위라고 한다.

선전전을 한지 3,40분 정도 지난 즈음에 대책위에서 한 분이 서명받는 곳에 왔다. "무슨 서명을 받는 겁니까?" "쌀수입개방을 반대하는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이 간단한 대화가 오고간 몇 분 후 무작정 오셔서 서명탁자를 집어던지는 등 난동이 이어졌다.

바로 뒤이어 방송중인 스피커를 발로 차고 지통대원들과 경기북부협의회 의장님, 그리고 강홍구님의 멱살을 잡고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동두천시 시의원이라는 사람도 대책위 조끼를 입고 이 행동에 함께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인데도 계속 따라다녔던 정보과 형사들, 그 주변에 있던 경찰들은 아이스크림이나 빨면서 사진찍기에 열을 내고, 심지어는 웃으면서 상황을 구경만하고 있었다.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상황을 수습하면서 도로에 앉아 시민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느라 소리통을 하고 항의하는 약식집회를 갖는 과정에 또 한차례 대열 속으로 뛰어들어와 집회를 방해하고 폭언과 폭행을 가했다.

버스에 다시 오를때까지 끊이지 않았던 '대책위'의 폭력적 언행을 뒤로 하고 함께 해주신 분들과 저녁을 먹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민연대의 강홍구님은 동두천의 현실을 왜곡 해석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대책위'와 같은 모습이 동두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15년이나 동두천의 미군문제를 맡아왔던 시민연대로의 신뢰가 더 돈독할 뿐만 아니라, 생각이 있는 시민들이라면 그들이 진정한 동두천시를 위한다기 보다는 자신들의 알력을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제 평택투쟁부터 오늘 동두천 실천까지.. 이 땅의 현실이 어떤지를 잘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엄혹한 현실'이 아닌 자주통일조국의 문턱 앞에 펼쳐진 꼭 없애야 할 자갈밭과 같은 현실이며, 우리가 꼭 해내야 할 숙제요 과업일 것이다.

열사들의 열정과 순수, 그 정의로움이 평택과 동두천의 현실과 함께 떠오르는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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