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주가사돌봄노동자 소외되지 않는 공공돌봄 강화 논의하자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기획 연재 ② 젠더와 인종을 가르는 이주가사관리사 도입의 문제점

2024-12-10     송은정 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2024년은 고용허가제 시행 20년을 맞은 해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도입, 아리셀산재참사 등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던 해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는 오는 12월 18일 세계이주노동자의 날을 앞두고 주요한 사건과 투쟁, 이주노동자 문제를 돌아보며 〈노동과세계〉 연재를 통해  개선과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두 번째로 송은정 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이 공공시스템에서 이주 가사돌봄노동자가 소외되지 않는 방안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송은정 센터장은 젠더와 인종을 가르는 이주가사관리사 도입의 문제점을 짚으면서 이주 가사돌봄노동자는 노동력이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편집자주]

민주노총과 이주노조, 노동건강연대, 전국여성노조 등 31개 단체는 26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연대회의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인종과 국적 차별, 돌봄저평가에 맞서 정부의 돌봄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행동할 것”이라 밝혔다. 사진=송승현

윤석열에 대한 기대가 0.01% 정도 있었다면 그 이유는 그가 예능프로에 나와 요리를 했기 때문이다. 요리를 할 수 있다면 돌봄과 가사 노동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윤석열에 대한 상식적인 분석은 모두 말도 안되는 헛된 기대였다는 것이 증명됐다. 이 시점에서 잊혀지고 있는 필리핀 이주 가사관리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2022년 하반기부터 외국인 돌봄노동자 도입에 대한 논의가 급작스럽게 진행되다가 2023년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6개월짜리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결정한 뒤, 올해 9월 3일부터 100명의 필리핀 가사관리사가 개인가정에서 노동을 시작했다. 

시범사업을 시작하자마자 비싸고 좁은 숙소, 임금체불과 저임금, 업무범위의 모호함(돌봄노동? 가사노동?), 장거리 근무지 이동, 통금시간 제한 등 인권침해를 비롯해 문제가 줄줄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노동자 두 명이 불안정한 미등록 체류자 신분을 감수하고 숙소를 이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10월 15일 홍콩, 싱가포르형 입주형을 혼합하거나 캄보디아 등 복수 국가를 선정해 경쟁 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시범사업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기도 전에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을 확대할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시범사업 시행 직전인 8월 27일 국회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세미나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한 '최저임금 구분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윤석열은 이에 앞서 대통령이던 지난 4월 4일 2차 민생토론회 후속 조치 경제 분야 점검 회의에서 “외국인 유학생, 결혼이민자 가족 등이 육아 분야에서 최저임금 제한 받지 않고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외국인 근로자라는 이유만으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은 헌법(평등권), 국제기준(국제노동기구·ILO 111호 협약), 국내법(근로기준법,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 등과 배치된다. 인종차별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이주 가사관리사 사업의 또 다른 문제는 외국인 가사돌봄노동자가 필요하다는 요구 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가족과 출산 조사 등 기존의 돌봄 관련 조사에서는 민간 도우미를 희망하거나 실제로 이용하는 비율이 매우 낮고, 양질의 공공 돌봄서비스를 희망하거나 일·가족 양립이 가능한 유연한 근무를 희망하는 의견이 다수였다.(장주영,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공공돌봄’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일생활 양립’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실종시킨 채, 공적 돌봄 강화를 위해 설립한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은 폐지하고, ‘싼 값에 외국인을 쓰자’는 인종차별적 논리만 남긴 셈이다. 

고용허가제는 정부 간 MOU를 맺고 공공기관을 통해 이주노동자를 도입하고 관리하고 있어 브로커 개입이 적은 편이다. 그러나 이번 이주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민간업체가 담당하고 있어 우려가 크다. 이는 이미 민간업체가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계절 근로자제도나 외국인 선원제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민간업체가 말도 안되게 높은 수수료를 요구하거나, 신분증을 빼앗는 등 노동착취, 인권침해 문제가 심각하다. 더구나 이주 가사관리사 사업은 젠더기반 폭력과 괴롭힘을 예방하고 대응해야 하는 과제도 제기된다.

이 글을 쓰면서 최희연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가 7월 19일 국회 토론회에서 했던 말 보다 적확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이 사업은 공식적으로 외국인을 차별 대우하고 돌봄과 여성 노동의 가치를 폄하하며 개별 가정에 부담을 안기고, 공적인 책임을 하지 않겠다는 공공성 포기 선언이다. 돌봄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공성을 확충하기 위한 정책을 고민해야 하는데 정부는 그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값싸게 취급하며 외주화하고 있다. 가정 내 가사 육아 부담을 싼값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맡긴다고 출산율이 제고될 것이라는 발상은 황당하다. 서울시가 해결해야 할 일은 성차별적인 노동시장의 문제 해결과 한국 사회 전반의 젠더 불평등 해소, 주거와 돌봄의 공공성 강화, 이주민에 대한 차별 철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다.”

당신은 다른 노동자에게 가사노동을 맡기고 싶은 욕구가 있나? 가사노동을 내가 직접 하는 이유는 오직 타인에게 돈을 줄 여유가 없기 때문인가? 나는 솔직히 그런 욕구를 은밀하게 갖고 있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을 읽고 수치심을 느끼기 전까지. 

사회비평가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양말을 벗어놓고, 욕실 거울에 치약을 묻혀 놓고, 야식을 먹고 설거지거리를 남겨 두는 등, 다른 누군가가 해야 하는 뒤치다꺼리를 남기는 일은 조용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노동의 배신〉에서 “남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방치하고, 남의 집을 쾌적하고 광이 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은 수준 이하의 집에서 사는 저임금 노동자들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사는 것”이라며 “우리가 느껴 마땅한 감정은 수치심이다. 다른 사람들이 정당한 임금을 못 받으며 수고한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 사례나 한국의 급속한 저출생 속도를 볼 때, 이주 가사돌봄노동자가 많아지는 것은 불가피할 수 있다. 이주 가사돌봄노동자는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싶다.

다시 열리는 촛불 광장에서 수많은 과제들과 함께 공공돌봄과 일생활 양립을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 이제 이주 가사관리사 정책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서 공공 시스템에서 이주 가사돌봄노동자가 소외되지 않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과 이주노조, 노동건강연대, 전국여성노조 등 31개 단체는 26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이주 가사돌봄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연대회의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인종과 국적 차별, 돌봄저평가에 맞서 정부의 돌봄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행동할 것”이라 밝혔다. 사진=송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