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다시 만날 세계’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기획 연재 ⑤

2024-12-27     김혜정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2024년은 고용허가제 시행 20년을 맞은 해다. 뿐만 아니라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도입, 아리셀산재참사 등한국사회의 이주노동자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던 해이기도 하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는 오는 12월 18일 세계이주노동자의 날을 앞두고 주요한 사건과 투쟁, 이주노동자 문제를 돌아보며 〈노동과세계〉 연재를 통해  개선과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일하는 김혜정 활동가가 다섯 번째 이야기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113만 명의 이주여성 이야기를 전한다. 결혼, 유학, 노동, 난민, 동포 등 다양한 자격으로 한국사회 구성원이 됐지만 이주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인권침해를 받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다. 무엇보다 최근 윤석열이 일으킨 12.3 비상계염으로 촉발된 ‘다시 만날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사회 광장에서 이주여성들이 무임승차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빛을 들고 나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편집자주]

성탄절 소원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 활동가와 성소수자들이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윤석열 퇴진하고 평등세상으로’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과 탄핵안 가결이 되기까지 사람들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광장으로, 국회로, 거리로 나왔다. 저마다의 빛을 가지고 소리를 외치며 폭력에 대항하며 평화적 시위를 만들었다. 전 ‘세계’는 한국의 이러한 평화적이며 열정적인 민주주의의 과정을 지켜보며 찬사를 보냈다.

그 ‘세계’는 국경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세계’는 한국 사회 ‘안’에 함께 있다. ‘이주민’이라 불리는 ‘세계 시민’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저마다의 언어를 가지고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하고 있다. 선주민들이 이루어 놓은 민주주의에 무임승차 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로 나와 빛을 들고 함께 소리치고 있다.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본국의 가족들로부터 위험하지 않은지 물어보는 연락을 받기도 하였다. 혹시 자신의 정치적인 참여가 체류에 불이익으로 발생하지 않을지 걱정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민주주의 위기는 결국 이주민에게는 더 큰 위기로 혹은 더 큰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는 250만 명의 이주민이 살아가고 있다. 그중 45%인 113만 명이 이주여성이다. 결혼, 유학, 노동, 난민, 동포, 등 다양한 체류자격으로 한국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주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인권침해를 받고 있다.

이주민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이주여성 노동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며, 선주민들은 승급하지만 이주여성에게는 승급의 기회가 없으며, 임금 차별을 받고 있다. 10년을 넘게 일해도 선주민 1호봉과 비슷한 수준이다.

서울시와 정부에서 진행하는 이주가사노동자 도입 시범사업은 그 시작부터 이주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을 배제하고자 공론화하였다. 이주민에 대한 최저임금 차별은 이주민에 대한 차별인식을 확대하였다. 이는 돌봄 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열악한 돌봄 노동 환경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 필리핀 이주가사노동자들은 6개월의 시범사업 중 2개월 동안 감시와 통제, 과로, 임금 체불을 경험하였다.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해 사업장을 이탈한 필리핀 이주가사노동자는 미등록이라는 불안한 체류상태가 되었고 결국 강제 출국 조치되었다.

아리셀 중대 재해 참사에서 희생자 다수가 이주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인력파견업체 소속이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안전교육도 받지 못했다. 위험한 유해물질을 다루는 공장이고 그전에도 화재사고가 있었지만 안전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결국 이주여성 노동자들은 비극적 참사의 희생자가 되었다.

이에 더해 이주여성들은 젠더 기반 폭력의 위험성에 노출되고 있다.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의 성폭력 관련 상담은 2023년 733건으로 2022년보다 200건이 증가하였다. 다누리콜센터의 성폭력 상담은 2023년 1,207건으로 2022년보다 300건 이상 증가하였다. 안전장치가 없는 기숙사, 비닐하우스 등 열악한 주거환경은 이주여성의 위생과 건강뿐만 아니라 젠더 기반 폭력에 취약하다. 2021년 폭력피해 이주여성 판례분석에서 노동 현장의 젠더 기반 폭력 사례를 살펴보면 사업주에 의한 성폭력, 사업장 변경 제한과 체류자격 문제가 만드는 열위로 인해 발생 되는 성폭력, 사업장 변경 횟수 제한, 재입국 후 고용허가 신청을 빌미로 한 성희롱, 기숙사 내 발생한 성폭력, 사업장 등의 불법 촬영 피해 등의 피해 사례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주민에 대한 지원체계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2013년 서울시 위탁사업으로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가 10년째 활동하고 있으나 정부에서 운영하는 이주여성상담소는 2019년부터 개소를 시작하여 전국에 9곳에 불과하다. 코로나 이후 이주민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정부는 계절이주노동자, 이주가사노동자 뿐만 아니라 다양한 노동 현장의 이주노동자를 늘리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주민의 인권과 권리를 위한 지원체계는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다.

비상계엄이라는 거대한 국가 폭력에 맞서 용기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국사회의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 변화에는 한국사회의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가 함께 담겨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변화에는 누구도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사회는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노동하고, 안전하게 쉬며,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당연한 이야기가 이주민에게도 당연한 권리로 존중되는 ‘다시 만날 세계’를 기대한다.

2024년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현장에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노동자 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가 각자의 삶에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를 공론화했다. 사진=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