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고용 기간 5년으로 제한

기간 끝나도 항공편 없어 살길 막막

“전근대적 고용허가제부터 고쳐야”

 

저는 2015년 한국에 들어와서 4년 10개월 동안 일했습니다. 지금은 (고용허가제 때문에) 고용을 연장하지 못했습니다. 최근 3개월 동안 이미그레이션을 오가며 한 달씩 비자를 연장하고 있습니다. 이 비자로는 일할 수도, 돈 벌 수도 없습니다. 한국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이주노동자 시물)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시물 씨(왼쪽) ⓒ 김한주 기자

현행법은 이주노동자의 취업활동 기간을 5년 미만으로 제한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이주노동자들은 체류자격을 상실하기 때문에 귀국하거나 다른 비자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혀 고용 기간이 끝났는데도 귀국하지 못하게 됐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들은 일을 더 하며 한국에 체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는 취업 기간을 고작 50일 늘렸다. 귀국하지 못하는 이주노동자에 30일짜리 임시체류증을 줬다. 그러면서 이 기간에는 일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한국 정부가 체류 생활을 이어가야만 하는 이주노동자의 생존권을 박탈한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과 전국이주인권단체는 8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기에 닥친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밝히고, 이주노동자 취업활동 허용을 촉구했다. 이날 민주노총 등은 기간 만료 이주노동자의 사례를 발표했다. 

먼저 베트남 이주노동자 응우옌 ○○씨는 지난 7월 고용기간이 만료됐다. 마지막에 근무한 회사가 법에 저촉될 것을 우려해 응우옌 씨를 고용하지 않았고, 현재 그는 수입도 없어 친구 집에 임시로 얹혀살고 있다. 다음으로 지난 5월 고용 기간이 끝난 쩐 ○○ 씨의 경우 6월 항공권을 구매했으나, 이후 모든 항공사가 운영을 중단해 귀국하지 못했다. 소득이 없는 쩐 씨는 의료보험 미납으로 100만 원까지 체납당했다. 또 출입국관리소가 외국인등록증을 가져간 까닭에 은행, 행정 절차에서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쩐 씨는 “모아놓은 돈도 모두 떨어졌다. 법은 취업을 막고 있지만, 굶어 죽지 않으려고 아르바이트 노동을 하며 불안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인데도 우리는 한국 정부 재난지원금을 내국인처럼 받지 못한다. 우린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세금도 냈다. 근로기간이 만료됐지만 출국하지 못해 어려움에 부닥친 우리를 버리지 말라”고 호소했다.

발언 중인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 김한주 기자
발언 중인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 ⓒ 김한주 기자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상황에서 고용 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계속되고 있다”며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생계를 이어갈 방안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이 필요로 해서 온 노동자다. 정부는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민센터 친구’ 조영관 변호사는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끊기면서 그동안 감춰졌던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한국에 입국해 제한된 기간 일하고 다시 내쫓겼다. 법무부는 단기순환형 노동 이민 제도라고 그럴듯한 설명을 하지만, 실상은 사람을 소모품 취급하는 것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가장 힘없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봉혜영 민주노총 부위원장(왼쪽) ⓒ 김한주 기자
봉혜영 민주노총 부위원장(왼쪽) ⓒ 김한주 기자

봉혜영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코로나19 시기 이주노동자는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며 “코로나19 이전에도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문제 돼 왔다. 시간이 갈수록 이주노동자의 인권과 노동조건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정부가 이런 현실을, 고용허가제를 방치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전국이주인권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청와대에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민주노총과 전국이주인권단체는 8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고용허가제 기간 만료자에 대한 취업활동 허용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김한주 기자
민주노총과 전국이주인권단체는 8일 오후 청와대 앞에서 '고용허가제 기간 만료자에 대한 취업활동 허용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김한주 기자
성미선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 김한주 기자
성미선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 김한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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