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세계> 302호

언론의 파업보도는 막무가내다. 필요할 때는 감성으로 몰아치다, 때론 엄정한 논리로, 어떤 때에는 통계수치로.

노동자에게 불리한 것만 죄다 끌어다가 잔뜩 배설해놓고 만다.

<조선일보>는 코오롱노조가 파업을 벌인지 57일째 되던 8월18일 사회면(8면) '코오롱 구미공장 직장폐쇄' 기사에서 회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현재까지 공권력 투입은 결정한 바가 없다"고 했다. 조선은 이 기사를 통해 '공권력=사용자의 도구'라는 등식을 화끈하게 고백했다.

조선 8월14일자 30면과 31면에 나란히 실린 두 칼럼은 억지의 정수다. 30면 '기업화된 노동운동'은 노조더러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부문에 관여하려는 사회적 조합주의를 버리고 임금인상 등 한정된 일만 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오른쪽 31면 '파업할 공장이 사라지면…'이란 칼럼은 노조의 임금인상투쟁을 노동귀족으로 몰아붙이며 비난했다.

"사회현안도, 노동조건도 투쟁은 안 돼"
불법파업을 공권력으로 다스리라는 언론의 주문은 곧이어 합법파업도 공권력으로 해결하라는 주문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회사가 신문 광고지면을 사 '연봉 5800만원짜리 고임금 노조'라고 하면 며칠 뒤 신문은 '연봉 7천만원짜리 노동귀족'이라고 비약한다.

이들에게 노사갈등의 조정과 대안모색이라는 언론본연의 기능을 기대하는 건 난망하다.

지난달 23일 파업을 철회하고 현장에 복귀한 궤도연대의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쟁점은 여전히 남았고, 대량징계라는 복병마저 따라붙었다. 그러나 언론을 통해 23일 이후 지하철 노사의 교섭내용을 전해듣는 것은 불가능하다. 파업만 끝나면 모든 게 만사형통이다.

이번 지하철 파업의 핵심쟁점은 2004년 7월부터 시행되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실제 근무시간과 휴일 조정 등 제반 노동조건 결정이었다. 국회는 노동법을 바꾸면서 1년여의 시간 여유를 줬다. 해당 사용자가 충분하게 준비하도록 배려했다. 그러나 사용자들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이번 궤도연대 파업을 되돌아보면 사용자인 정부와 지자체가 준비한 주40시간제 시행 대비책은 '연봉 4500만원 받는 노동귀족의 파업'이라는 '선무공작'이 유일했던 것 같다.

또 언론이 붙인 '직권중재를 위반한 불법파업'이란 딱지 역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직권중재는 1996년 12월 헌법재판소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 위헌이라고 했던 제도다. 위헌 결정에 필요한 3분의 2(6명)를 넘지 못해 가까스로 살아남은 제도다. 이런 걸 무슨 신주단지처럼 껴안고 있는 언론을 보면 서글프다.

뭐든지 계량화하기 좋아하는 언론은 각 나라별 '파업 손실일수'를 비교하면서 우리 노동자를 강성노조로 몰았다. 조선 7월27일치 사설은 "지난해 한국의 노동손실일수가 111일이고 일본과 스웨덴은 1일"이라고 했다. 30일치 26면 칼럼 '정부도 기업도 언론도 비겁했다'에서는 한 술 더 떠 "국내기업의 파업 손실일수가 일본의 111배 높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했다. 1:111을 111배로 쓰는 조선의 표현력이 놀라울 뿐이다.

"노조는 힘으로 눌러라" 선동
<세계일보>는 7월8일치 27면 '過勞社會에서 벗어날 때 됐다'는 칼럼에서 "한국의 파업으로 인한 생산차질액이 지난해 2조4천972억 원에 달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 이런 수치도 있다. 지난해 산업재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12조4천90억원으로, 분규로 인한 생산차질액의 5배를 넘는다. 그리고 산재 손실액은 매년 급격하게 늘고 있다. 왜 한 쪽으로만 산수를 하는지 모르겠다.

7월30일치 '조선데스크'는 "기업들이 뭐가 그렇게 구린지 노조에 질질 끌려가다 막판에는 '불법파업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일절 묻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써주는 백기투항으로 일관해왔다"고 질타했다. 그러나 지난 2002년 기준으로 노동자에 대한 기업주의 손배가압류 총액은 전국 46개 사업장에 손배 489억9천800만원, 가압류 704억7천200만원에 달했다. 기업주가 노조에 그렇게 자주 백기투항하는 나라에서 '노조사수'를 외치며 죽어 가는 노조간부는 뭐란 말인가.
이정호(언론노조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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