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호

떠나는 사람을 만나며...
이제 막 6개월을 넘기는 신출내기 기관지기자에게 민주노총 위원장은 어렵기만 했다. 어떤 이들은 삼촌처럼 또 형님처럼 편하게 대하기도 했지만 말 한마디 건네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항상 주변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지만 집회연설로 그의 말을 듣는 시간이 더 많았던 작년이었다. 또 민주노총 위원장이 갖는 중력으로 인해 항상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촘촘히 시간도 쪼개서 쓸 것이라는 생각에 그의 주변을 파고들기가 미안스럽기까지 했다. 위원장자리를 떠난 오늘 한결 그가 편안하게 느껴진다. 이제야 자청해 인터뷰에 나선다. 난 참으로 소심한 기자다.

1.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정리해야 할 일이 적잖이 남아 있다. 경찰조사도 남아 있고 인수인계해야 할 일도 꾀 있다. 여러 가지 업무를 정리하고 지난 과정을 개인적으로 평가해 보기도 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 시간들도 무척 바쁘다. 떠나면서 허전함이나 그런 건 전혀 없다. 다만 조합원들의 기대에 충분히 따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은 있다.

2. 이후 현장에 내려가시면 어떻게 지내시게 됩니까?
현장에 복귀해서 민주노총 조합원으로서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기아자동차 금형기술부 출신이다. 다시 그곳에 복귀해서 내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가족들하고도 거취 변화와 관련해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었고 따로 기아자동차 현장 분들을 만날 시간도 없었다. 인수인계와 미진한 점을 마무리하기 위해 바쁘게 지냈다. 조금 쉬다가 금형현장에 복귀하게 될 것이다.

3. 한 해를 되돌아 봤을 때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출마 당시의 공약도 그랬고 내부적으로는 산별전환과 내부혁신의 문제를 많이 고민했었다. 그 중에 산별전환은 그런대로 성과였다고 자평할 수 있다. 그러나 내부 혁신문제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또 외부적으로는 비정규직 확산법과 로드맵 법의 통과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교섭과 투쟁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고 했는데 여러 가지 정황과 조건의 한계를 돌파지 못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낳아서 조합원들에게 죄송하고 아쉽다.
하지만 한미FTA 저지투쟁은 최선을 다 했고 노농이 연대해 국민과 함께 한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성과였다고 본다. 나아가 그 성과로 한국진보연대 준비위까지 출범했다. 그런대로 잘 진행된 투쟁이었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저지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만족스럽다 하기엔 민망하고 여전히 염려도 남는 부분이기도 하다.

4. 1년은 전망을 갖고 사업을 집행하기에 길지 않은 기간 인 것 같다. 만일 3년 임기였다면 하고 싶은 사업이 있었는가?
나는 역사와 현실운동을 두고 하는 그런 가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설로 말하기 곤란한 주제이기도 하고 이제 떠나는 사람이 뭘...3년 임기의 주요 사업은 신임위원장께서 잘 디자인 할 것이다.

5.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하중근 열사가 생각난다. 포항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가 표출된 투쟁이었고 동시에 비정규직 투쟁의 단면을 보여주는 투쟁이었음에도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배타적인 대접을 받았을 때 무척 힘들었다. 당시 투쟁은 뜨거운 한 여름을 지나왔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동지들이 열의를 보였지만 힘들었던 투쟁이었던 것 같다. 모두들 많이 고생했는데 열사의 한을 덜어주지 못한 것 같아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6. 민주노총 위원장 어떤 자리인가?
이 땅 노동자들의 대표적인 조직이 민주노총이다. 특히 노동자 스스로 건설한 역사를 가진 조직이라는 점에서 더욱 위상이 크다. 개인의 자리일 수 없으며 80만 조합원들의 자리이다. 80만의 조직을 대표한 상징이자 지도자로서 막중한 자리임을 항상 의식해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을 점검하고 검증할 수 있다. 점검과 검증 또한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다. 위원장 개인은 조합원들을 의식하며 조합원의 말과 시선으로 점검받고 검증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보수언론과 정권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받는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런 조직의 위원장이다. 민주노총의 위원장이 조합원과 항상 함께 할 때 조직의 희망이 있다고 본다.

7.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많은 자리에 참석해야 했을 것이다. 그 가운데 가장 곤욕스럽거나 답답했던 시간들은 언제였나?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언급할 수 있겠다. 참가 할 당시 흔쾌하지 않았다. 그러나 향후 10년 전반을 논하는 자리에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을 순 없었다. B급 C급 과제라는 규정을 한다면 B와 C는 유의미 했다. A급 과제도 쟁점화란 측면에선 의미없진 않았다. 그러나 정작 A급 문제를 다뤄 할 결정적인 시점에 애초에 흔쾌하지 않았던 우려가 드러났다. 국가 전반을 운영할 책임을 진 정부가 협상 당사자인 대표자에게 통보하지도 않고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밀실에 숨어서 중요한 문제를 처리한 과정은 돌이킬수록 씁쓸하다. 우려가 현실이 됐다.
모든 운동에서 교섭은 갖고 의미가 있다. 단위노조에서도 그렇고 운동에서 우리가 전면적이고도 압도적인 힘을 보유하지 못한 이상 투쟁과 교섭은 병행돼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지난 한 번의 경험이 교섭무용론으로 발전하기 보다는 교섭대상과 환경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 우리 힘이 어느 정도이며 그 힘을 어떻게 극대화시켜서 어떤 성과를 얻을 것인가를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노사정대표자회의의 경험은 교섭이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 나 개인이나 조직이 새삼 고민하는 계기였다.

8. 신임집행부에게 드리고 싶은 말?
신임위원장은 오랫동안 알아 왔던 분이다. 무척 훌륭하시고 잘 하실 것이다. 능력이나 열정에 있어서 나와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주변에서 잘 보좌해서 모두가 함께 민주노총의 미래를 개척했으면 한다. 지금 시기는 민주노총의 전환점이기도 한만큼 중요하다. 잘해야 하고 잘 할 것이다. 신임집행부가 이미 표방했지만 조합원과 함께 문제를 풀고 돌파하려는 의지는 매우 좋다. 모든 답은 조합원들에게 있다. 현장대장정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9. 과거 경험에 비추어 신임집행부가 중요 과제로 내건 단결이라는 과제의 전망은 어떠한가? 또 개인적으로 이후 활동전망은 어떤 것을 갖고 계신가?
통합과 단결에 있어서 잘 모르겠고 내가 언급할 문제도 아닌 것 같다. 다들 잘 하실 거라고 믿는다. 이후 개인적인 전망에 대해선 고민할 시간 없었다. 현장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새로운 고민이 싹틀 것이다.

10. 민주노동당 당원이시다. 이전엔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당 활동의 큰 역할을 하셨다면 이후 현장복귀 후엔 다른 역할을 하실 여력이 되겠는가?
광명지역위 소속으로서 투표도 열심히 하곤 했는데, 글쎄 이후엔 어떻게 될지는 현장에 가봐야 알 수 있다.

11. ‘노동과 세계’에 한 말씀...
적은 인원으로 많은 고생을 하고 있지만 현장성을 더 강화했으면 한다. 현장의 목소리와 요구 그리고 우리 운동의 전망을 균형있게 보여주는 기관지가 되길 바란다.
박성식 기자 bullet191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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