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세414호

동지들 반갑습니다.

벌써 계절의 끄트머리를 재촉하는 듯한 싱그러운 풀 내음을 그리워 해 봅니다.
유난히도 긴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동지들의 걱정과 염려를 뒤로 한 채, 지난 1월19일 1심 선고에서 5명의 동지가 최하 2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백주 대낮에 건설노동자가 진압 경찰에 의해 방패와 둔기에 맞아 죽었고, 뱃속의 아기는 공권력의 군화발에 차여 생명을 피우지 못한 채 이슬로 사라져 버려야 했고, 건설노동자들의 정당성을 항의하던 선량한 지역 시민은 피투성이가 된 채 낯익은 공작원 수송차량에 실려 어디론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난 해 포항지역 건설 노동자들의 탄압과 관련하여 다섯 명이나 목숨을 잃었고, 수 백 명이 다쳐 병원에 실려 갔고, 그것도 모자라 수 십 명의 노동자를 구속시켰습니다.
실로 어처구니 없는 현실 아래 살벌하고 끔찍한 일들이 작은 도시에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자본과 권력, 보수 언론은 아직도 노동자 권리 억압을 통해 노동자 자존심마저 죽이기에 급급해 하고 있습니다. 권력도 자본에서 나오고 국가도 자본이 지배한다는 대한민국 천민자본주의 국가의 부끄러운 현실을 다시금 느끼게 합니다.
정말, 국가 권력의 도덕성과 정당성을 의심케 하는 건설노동자의 탄압은 “반성하지 못한 과거는 되풀이된다”라는 비극의 씨앗을 이 땅에 다시 한 번 뿌려 놓은 것 같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사회 약자인 건설노동자들을 외면하고 냉대하는 것 같습니다.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며 처음과 끝이 다른 인간성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슬픔이 밀려옵니다. 진실은 철저히 숨겨진 채 파렴치한 행동으로 부당성을 합리화 하기에 급급한 그들 역시 머지않아 양심 심판대에 오를 날이 있을 것입니다.
지난 포항지역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은 너무나 정당했습니다. 그 영웅적 투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한 책임으로 집행간부 전원이 비록 차디찬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다시 그리고, 더 새롭게 민주노조 깃발아래 단결된 건설노조 깃발을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노조가 강해야만 자본과 타협이 없을 것이고, 연대를 통한 강한 노조만이 현장의 조합원 동지들을 억압과 탄압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편지가 도착할 즈음이면 2심을 위해 이곳 5명의 동지는 대구 교도소에 있을 겁니다. 감옥 생활이라 그런지 먼저 간 동지가 있기에 마음의 여유를 가져 봅니다.
이곳 한 평 남짓한 독거방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어떠한 고통도 견딜 수 있지만, 아직도 옳지 않은 분쟁의 목소리가 쉼없이 들려옴으로 인해 서늘한 가슴 진정 시킬 때가 많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쌓인 교만과 절망과 미움을 말끔히 버리고 그곳에 겸손과 희망과 사랑을 다시 채워 넣어 언제나 처음 시작하는 한 마음 한 뜻으로 이땅의 노동자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해야만 희망이 없는 이곳에서도 내일이 오늘처럼 오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지들, 지면을 빌어 마지막으로 지금도 분명한 것은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기에, 똑같은 일로 다시 한 번 구속되어 법정에 서는 일이 있더라도, 아니, 평생을 구속되는 일이 있더라도 저는 건설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동지들 가정에 행복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지갑렬/포항지역건설노조 부위원장(대구교도소 수감)


“누구도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빼앗을 권리는 없다.”

※ 지갑렬 동지는 포항건설노조 부위원장과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활동하시다 2006년 8월 23일 구속되어 2월 2일 현재 대구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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