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노조 추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진짜배기 산별조직, 산별교섭, 산별협약 체결은 초기 단계에 있다.
민주노총은 산별시대에 맞는 몇 가지 법제도 개선안을 마련해 공식 제기한 바 있다. 그 내용 중 하나가 초기업단위 단체교섭에서 사용자에게 교섭의무 및 노조 요청시 교섭대표단 구성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즉 현행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제29조를 개정해 노동조합이 복수의 사용자에게 장소 및 시간을 특정해 단체교섭을 요구한 경우, 해당 사용자들은 사용자단체를 구성하거나 연합해 교섭에 응하도록 하고, 이 경우 노동조합이 교섭진행 등의 편의와 효율을 도모할 목적으로 교섭대표단 구성을 요구한 때는 해당 사용자들은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산별교섭을 거부하거나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사용자들과 사용자단체, 심지어 회원기업에게 노조의 파업이 있으면 손해배상 가압류와 가처분을 적극 활용하라는 지침을 내리는 수준 낮은 사용자단체가 버젓이 존재하는 현 시점에서 산별교섭 정착은 상당히 요원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위 개정안은 사용자단체를 구성하거나 연합해 교섭에 응할 의무를 지워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을 회피하고 개별 사용자별로 교섭하려는 것을 막고 산별교섭을 조기에 정착시키자는 것이다. 그리고 사용자들이 모두 교섭 석상에 나와서 실질적으로 교섭이 진행되는 것을 회피하는 경우를 대비해 교섭대표단을 꾸리도록 강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제도 개선만으로 산별교섭이 정착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비근한 예로 전교조 경우 1989년 설립으로부터 20여년, 1999년 합법화가 된 때로부터 10여년이 가까워오고 있건만 사립학교들에서는 아직까지 단체교섭조차 이뤄지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교원노조법에서 산별노조인 전교조 교섭요구에 사립재단들이 시도별로 연합해 교섭에 응하도록 돼 있지만 이들은 교섭단을 꾸린다는 명분으로 또 부당노동행위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수년 째 시간을 끌고 있을 뿐이다. 노동조합의 조직력, 파업 등을 통한 압박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정부나 자본은 사용자단체 구성을 강제하거나 산별교섭 의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거나, 법으로 강제할 사항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 로드맵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의 반응 역시 ‘너들은 떠들어라. 우린 모르겠다.’ 이런 태도로 일관했다. 그들은 겉으로는 선진노사관계가 어쩌고 저쩌고, 기업별노조와 대기업노조의 폐해가 어떻다느니, 비정규직이 노조에 가입을 못하고 있다느니, 기업별 복수노조 난립이 걱정된다느니 떠든다.
그러나 어두운 뒷골목에서는 서로 손을 잡고 산별노조 전환 저지, 산별교섭 분쇄, 비정규 노동자 노조가입 저지, 기업별 체제 유지, 손배가압류, 구속, 용역깡패를 동원한 구시대적 노동탄압에 혈안이 돼 있는 것은 아닐까.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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