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랭이 기자의 더듬이 수첩

실명제와 단결의 기풍
패랭이 기자의 더듬이 수첩

인터넷 실명제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은 여전하다. 댓글 실명제가 실효를 거두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정부가 오는 7월부터 ‘인터넷 실명제’(일일 평균 이용자가 10만명 이상이면 게시판을 설치 운영할 때 이용자 본인확인을 해야 함)를 실시키로 했다니 그 귀추가 주목된다.
사실 익명제가 범죄의 원천이라는 공식은 성립되기 어려워 보인다. 익명제를 통해 자유로운 표현과 의견이 개진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어떤 책임성과 투명성 또한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실명제가 거론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러한 때에 민주노총에서도 실명제가 다시 언급됐다. 지난 6일 대전에서 열린 민주노총 5기 지도부 첫 중집회의에서 회의시작 시간에도 성원들의 참석률이 저조했다. 결국 회의는 1시간이 지난 오후3시에나 시작돼야 했다.
이석행 위원장은 중집 성원들에게 “제 시간을 지킨 성원, 중간에 가버린 성원, 마지막까지 함께 하지 않은 성원 등 시간대별로 체크해서 참석여부를 ‘노동과세계’에 공지토록 하겠다”는 사실상 ‘실명제’ 실시에 대한 압박성 발언을 날렸다.
실명제는 익명성의 무책임으로부터 책임을 부여해 보자는 취지가 깔려 있다. 물론 모든 문제를 어떠한 제도나 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모든 현상과 결과에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게 마련이다. 사회가 복잡하고 고도화될수록 더욱 그러하다. 무엇보다 주체들의 자발적인 모습을 일단 믿어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석행 위원장의 이번 실명제 언급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근래 들어 민주노총은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 ‘함께 실천하고 함께 평가’하는 풍토를 잃어버렸다는 지적이 높았다. 파업을 결정해 놓고도 제대로 조직해 내지 못했는가 하면, 기금을 결정해 놓고도 제대로 걷지 못한 것도 그렇다. 더욱이 최근 대의원대회가 성원미달로 휴회되는 사태도 여럿 있었다. 이러한 풍토를 쇄신해 보자는 것이 ‘실명제’ 실시에 대한 배경이다.
비밀이 많은 사회가 결코 이로울리 없다. 하지만 ‘익명성’과 ‘보안’ 또한 불가피한 개념이다. 어쩌면 법은 최소한의 원칙만을 제시하는 것으로 족해야 할지 모른다.
민주집중제의 전통과 동지적 의리를 자랑하던 민주노총이 어느덧 ‘실명제’라는 방식을 언급한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단결의 기풍이 실명제로부터 다시 싹틀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강상철 기자 prdeer@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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