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교도소 수감,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박정훈 지회장

<font color=darkblue>다음 글은 순천교도소에 투옥된 박정훈 금속노조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장이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 앞으로 보낸 글입니다.

박정훈 지회장은 현대하이스코 측의 비정규노조, 노동자 탄압에 맞서 지난 2005년 투쟁에 임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에 대한 자본재벌의 횡포에 맞선 끝에 2005년 11월초 노사는 해고자 복직(고용승계) 등에 합의하고 확약서를 작성합니다. 그러나 현대하이스코 측은 이 시각까지 확약서 이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박정훈 (순천)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장이 구속됐습니다. 현대하이스코 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편, 이 서신에는 정권과 자본의 반노동 행태에 맞선 노동투쟁에 대한 새로운 다짐과 함께 한미FTA협상 저지를 위해 구속노동자들이 옥중단식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담고 있습니다.

김성환 위원장 부인께서 편지글을 편집국에 급히 제보하셨습니다. 편지 전문을 민주노총 사이트를 통해 공유되기를 희망한다며 전문게재를 요청해왔습니다. 편지 전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주></font>

김성환동지! 안녕하세요?

남도에는 어느 지방보다도 봄을 알리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기 시작하여, 봄나들이와 꽃구경에 나선 사람들이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겨울 속에 하얗게 피는 여수 오동도의 동백, 광양의 하얀 매화, 구례의 산수유, 세상 모든 이들이 꽃구경을 하며 즐거워하며 봄의 생동함을 만끽하고 있지만 이번 봄은 어쩐지 남의 세상처럼 보이는군요. 아마도 마음이 심란해서 그럴 것입니다.

현대하이스코에서는 여전히 합의서를 이행하지 않고 복직을 시키지 않고 있습니다. 2차로 복직하기로 한 시한이 두 달 반을 넘어서고 있음에도 임·단협은커녕 복직약속도 지키지 않아 1년9개월 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못한 우리 조합원 동지들을 생각하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죄의식이 가슴 속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조합원 108명 중에 집행유예가 73명이 되고 지역의 동지들이 7명이나 구속되는 값비싼 희생을 치루면서도 복직되지 않는 현실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억울하고 분하고 원통한 슬픈 마음이 일어나곤 합니다.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차별과 멸시를 극복하고,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여 참다운 노동자로 살고자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대부분의 경우 원청이 하청업체에 계약해지를 하여 자동적으로 집단해고되거나, 하청업체 스스로가 자진 폐업하여 길거리로 쫓겨나 해고자가 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복직투쟁 싸움에 들어갑니다. 자본가들이 제일 무서워하고, 노동자의 자주적 권리를 찾기 위한 최대의 무기인 생산라인을 멈추는 파업은 할 수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면 길거리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전을 하고, 집회 시위 등을 통하여 회사를 압박하지만, 원청 노동조합이 나서지 않는 한 어지간해서는 교섭에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입사원을 채용해서 회사는 정상적으로 가동되어 생산에 차질이 없고,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들과 기존 사원들은 회사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정을 아는지라 크레인을 점거하여 생산라인을 멈추고 전사회적으로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박한 처지를 알려내면 교섭에 반드시 나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현대하이스코는 철강업체라 크레인을 멈추면 생산이 멈추는 특성이 있습니다. 예상대로 공권력은 쉽게 투입되지 못하고 교섭에 나와 확약서가 작성되었지만,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또다시 현대 기아차그룹 본사 신축 현장에 있는 크레인을 점거하여 2차 합의서를 또 작성하였습니다. 물론 합의서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작성은 안 되었지만 기존 노동운동의 협상 경험을 보았을 때 최소한의 약속은 지킬 줄 알았습니다.

우리 조합원 동지들과 수많은 지역 동지들의 피와 땀, 구속을 감수하면서 훌륭한 투쟁을 전개하였지만 마지막 결과물을 만드는 합의서 작성과정에서는 저놈들의 흉악한 의도를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여러 소식지들을 통해서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이 승리하였다”고 하지만 엄밀히 평가하여 교훈을 찾자면 “상처가 남은 부분적인 승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영삼정권이 세계화란 미명하에 제국주의 독점자본이 들어올 수 있도록 시장을 개방하고,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제국주의 독점자본은 은행을 비롯하여 대기업까지 50% 가까운 주식을 소유하여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덩달아 재벌들까지 한국사회에서 힘이 막강해졌습니다. 그래서 삼성공화국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신자유주의정책으로 막강해진 자본은 단체협약까지도 어기는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하는 괴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외환위기 이후와 이전에 달라진 자본가들의 힘을 간파하지 못하였습니다. 옥살이를 하면서 뼈저리게 깨달은 것입니다. 어쩌면 저의 부족함이 우리 조합원 동지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마냥 억울해하고 분해하고 원통해하며 저의 잘못을 질책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중하고 힘있는 존재는 사람이라 믿습니다. 우리 조합원 동지들의 진실이 이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거대한 벽(자본,정권)에 부딪혀 넘을 수 없다는, 세상에 대한 허무와 사람에 대한 믿음이 깨져, 세상의 불의를 보고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두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귀중한 존재이고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 그리고 뭉쳐서 싸우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 비록 개인의 힘은 미약할지 모르지만 자기운명을 개척해 나선 동지들과 함께하면 물신을 숭배하면서 얻은 즐거움보다 의리와 신의가 중히 여겨져 사람의 따뜻한 향기가 묻어나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우리 조합원 동지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길에서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며 온 몸이 피멍이 들고 살갗이 찢어지더라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말,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을 김성환동지에게 하고나니 조금은 마음이 후련해집니다.

계속되는 서신을 통해서 동지의 옥중투쟁을 알 수 있었고 동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았습니다. 2개월의 실형 때문에 3년5개월의 억울한 옥살이를 한다는 것, 한국의 최대 악덕재벌 삼성자본에 맞서 외롭고 힘들게 투쟁을 전개하고, 억울한 옥살이 과정에서 아버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믿지 못할, 아니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 제가 사는 것은 옥살이도 아니구나 하는 죄스런 마음과 보내주신 책에 수록된 시(부모를 가슴에 묻고)를 읽고 이용석열사가 분신할 때 어머님이 목덜미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을 떼어내며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한 몸 산화하신 생각이 겹쳐지며 눈물이 나왔습니다.

저는 솔직히 1평 남짓한 차가운 시멘트벽에 갇혀 동지가 느꼈을 억울함과 분노, 그 심정을 알지 못합니다. 1년 산 사람이 3년 산 사람의 마음을 어찌 이해하고, 10년 산 사람이 30~40년 옥살이 한 사람의 심정을 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지요.

동지의 심정을 다 이해하고 알지는 못하지만 동지가 가는 길에 함께 있고 싶습니다. 많은 동지들이 김성환동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힘 있게 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를 가둔 저놈들이 이곳에 살게 될 그날을 생각하며 한 번 웃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곳에는 엊그제 금속노조 광전지부 유00동지가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으로 구속되어 미결에 들어와 있고, 화물연대 동지 두 분, 광전본부 동지 한 분이 있습니다. 광전본부 류경식 동지는 3월20일 선고여서 집행유예로 나갈 것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미결수에 있는 동지들은 13일 오후부터 날짜 차이는 있지만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 무기한 단식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소식이 늦어 오늘(19일)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투쟁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미결의 동지들이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데 혼자 안 할 수는 없고, 우리 민중의 삶을 황폐화시킬 투쟁에 동참하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긴장이 풀어진 저 자신을 세우기 위하여 제 의지와의 투쟁도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동지의 건강을 바랍니다.

2007년 3월19일 달날 새벽에 박정훈 드림

(주소: 순천시 순천우체국 사서함 9-1300/(우:54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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