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신/3.26/04:00-06:30] 새벽 인력시장과 건설 공사현장 탐방 보고서

현장대장정이 시작됐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가장 중심적으로 취급하는 실천 공약이다. 단순한 공약이 아니라 민주노총 자체를 완전히 바꿔버리려는 그 자신의 독특한 노동철학이 깊게 베인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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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새벽 4시 인천 송내역 남부광장. 이곳에 일용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기술과 몸을 파는 인력시장이 있다. 일용직 노동자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현장이다. 이곳에서부터 2007년 민주노총 현장대장정이 시작됐다.

깊고 푸른 밤 냄새가 도시를 침묵시키는 이른 새벽, 구릿빛 얼굴의 노동자들은 짐보따리를 둘러맨 채 하나둘씩 새벽을 가르며 모습을 드러낸다. 빨리 나와야 일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대장정 첫 걸음은 이렇게 시작됐다.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대장정이 발진됐다. 현장대장정은 이날부터 6개월 동안 이어진다. 그 첫 지역이 인천이고, 인천에서 출발하는 현장대장정 행보에 대한 관심이 집중된 상태다.

송내에 거주한다는 44살 박양규 씨, 그는 일용직 노동자다. 매번 새벽 인력시장에 나온다. 자신을 싣고 갈 차를 기다리다가 이석행 위원장을 만났다. 양자는 어색함을 감출 수 없다. 좀 더 적극적인 쪽은 아무래도 위원장 쪽이다.

"민주노총 위원장입니다. 오늘부터 현장대장정이란 것을 시작하는데 6개월 동안 돌아다니게 됩니다. 사전답사할 때 많은 분들이 계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군요. 여러분들의 애로사항을 듣기 위해 왔습니다"

박씨는 송내 남부광장에 위치한 인력시장에 나오기 시작한 건 일년정도 됐단다. 그는 매일 아침 5시 이곳으로 출근(?)한다. 철근 노동자라는 박씨는 한참이 지나서야 애써 어색함을 풀고 말한다.

"일자리, 일거리가 많이 줄었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경기 전지역에 걸쳐 일을 나갑니다. 일터로 가게되면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합니다. (민주노총이) 좋은 일을 하시는 것 같은데, 동참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하얀 모자를 푹 눌러썼다. 머리는 감지 않은 듯 뒤엉켜 있었다. 박씨와의 만남은 길지 못했다. 그 시각 그 자리에 나온 일용직 노동자들이 '어디론가' 가야 할 시간이 됐기 때문이다.

새벽내내 이런 식의 짧고도 긴 만남들이 이어졌다. 그 시간들이 이어지고 맞닿을 때마다 이석행 위원장 발걸음은 더욱 빨라진다. 숨돌릴 틈조차 없다.

54세 건설 일용직 노동자 최인태 씨, 그도 철근 노동자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많이 쓰기 때문에 일자리가 줄고, 돈도 못 번다"며 위원장에게 "이런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재촉한다. 최씨도 송내역 남부광장 인력시장에 나오기 시작한지 벌써 3년째란다. "일거리가 거의 없다"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실제로 일거리가 줄었다는 건 비단 새벽길에 나선 노동자들만의 문제 제기는 아니다. 이 부근에서 15년째 역 한켠을 지키며 토스트나 오뎅 등을 파는 나이 든 아주머니도 똑같은 말을 한다. "예전과는 달리 새벽에 나오는 사람들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올해에 접어들면서부터 심해졌단다.

최씨의 하소연에 대해 이석행 위원장은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측의 외국인 노동자 도입 문제와 관련한 불합리한 도급구조에 대해 건설교통부장관 회동시 지적했다"며 "특히 총액대비 인력배치 방식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를 선호하게 됐다"며 "관련 법제도 개선을 요구했다"고 답한다.

새벽녘 건설일용노동자들과의 만남은 길지 못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한다는 현장대장정의 첫 시작점 속에서 이석행 위원장은 건설일용노동자를 향해 "힘들고 어려우시더라도 여러분이 바로 민주노총"이라며 강조한다.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할테니 부디 건강하게 사셔야 한다"며 거친 노동의 손을 맞잡는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된 새벽거리 일용노동자들과의 만남은 채 삼십여 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들을 더 붙잡아 둘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6시30분까지 어디엔가에 있을 일터로 가야하고 그곳에서 안전교육 등을 받고 7시부터 현장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5기 집행부가 벌이는 현장대장정을 보기 위해 인천지역 단위노조 조합원들이 대장정단 일행을 맞았다. 금속노조 산하 대우자동차노조, 여성연맹 인천지부, 건설연맹 인천지부 등 성원들이다.

이석행 위원장은 대장정단 일행을 마중한 성원들에게 "고맙다, 이제 시작"이라며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로 현장대장정 첫 걸음에 대한 소회를 피력한다. "건설일용노동자들, 이런 비정규노동자를 보니까 마음이 아프고, 마치 형식적인 이벤트같이 보여 마음이 안 됐다"는 말로 그 자신의 치열한 고민의 한 자락을 드러낸다.

"새벽 인력시장에서, 노예처럼 팔려가는 듯한 일용직 노동자들을 위해, 그들 자신이 원하는 일터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일한 만큼 제대로 대우받을 수 있도록 민주노총이 만들기 위해 현장대장정을 떠난 것"이라며 목청을 높인다.

"바로 저런 분들과 손을 잡고 함께 할 때 민주노총이 바로 서고, 저 분들이야 말로 민주노총이고 이석행이며, 핵심간부"라는 것이 이석행 위원장의 지론이고 철학이다.

그는 많은 말을 하지는 않는다. 단지 "장기투쟁사업장 노동자들 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 민주노총 조직력 복원에 최선을 다하겠다, 반드시 현장대장정을 종주하겠다, 여러분이 민주노총이다, 함께하면 반드시 이긴다"는 몇 마디의 신념이 그가 새벽내내 보인 모습의 전부다. 지금 그는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조금이라도 비는 시간이 날 경우 현장대장정 일일계획을 준비한 실무자에게 "왜 이 시간이 비냐"라는 질책을 바로 퍼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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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30분, 일행은 00아파트 공사현장으로 이동했다. 건설일용노동자들이 태반을 차지하는 말많은 원하청 하도급 문제가 뿌리내려있는 곳이다. 아파트 한 채, 한동을 만들기 위해 철근, 용접, 형틀목공 등 공정별 기술자들이 한시적으로 투입된다.

형틀목수로 11년째 건설현장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박승규씨(40세). 그는 건설일용노동자를 한 마디로 '거지'라고 말한다. 건설현장에서 이들이 취급당하는 현실을 '거지 소굴'이라고 표현한다. 이석행 위원장과 한동안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공사현장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 탈의실도 없기 때문에 여성들은 옷도 제대로 갈아입지 못하고 있어요. 휴게실도 없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점심식사 후 졸리면 공사현장 아무데나 박스를 깔고 잠을 자는데 잠 자다가 위에서 벽돌이나 철근 등이 떨어져 사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식당도 없어서 공사장 먼지가 풀풀 날리는 곳에서 밥을 먹기도 합니다. 더구나 쓰메끼리란 것이 있습니다. 유보임금이죠. 일을 시작한지 60일만에 임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 7-80%가 쓰메끼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박씨는 한달 30일중 16일 정도를 일한다고 한다. 월 임금이 어느 정도인지를 물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 답변을 하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임금이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며 한숨을 내쉰다.

박씨가 전하는 현장상황은 이석행 위원장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모양이다. 이석행 위원장은 일행에게 "지금 당장 이들이 현장에서 겪고있는 문제점을 정리해 사무총장에게 직보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지금 당장 건교부 쪽으로 현장문제점을 알리고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건설 공사현장에서 또 한 사람을 만났다. 이종대씨(42세, 안산 거주)는 지난 1월17일부터 일하기 시작했단다. 이씨가 위원장에게 전하라며 말한다. "일찍 오시는 것보다 작업할 때 와서 보시면 좋겠다"고. 그래야 현장 애로사항을 정확히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일행 중에 건설전문가 출신 성원도 말을 거든다. "공사현장에서 안전모 쓰고 직접 공사를 체험하시면 좋겠다."

이른 새벽과 아침에 걸쳐 인력시장과 건설 공사현장을 목격한 이석행 위원장은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됐다"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계와 생존 모두에 위협을 느끼는 이들을 현장대장정을 통해 반드시 챙기겠다"며 다짐한다.

건설 공사현장을 둘러본 일행이 현장을 빠져 나올 무렵, 그곳 현장을 관리하는 안전관리팀 관계자가 무전기를 든 채 기자를 보고 소리친다. "오늘 여기서 무슨 일 있습니까? 어떤 거 촬영했습니까?" 아마 민주노총 현장대장정단 일행이 아주 이른 시각에 공사 현장에 나타날지 예상을 못했던 모양이다. 현장을 찾겠다는 소식이 현장안전관리자에게 미리 들어갔다면 현장 출입구는 폐쇄됐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숨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모습. 바로 그 곳에 스러지는 노동자들이 있고, 일하다가 다쳐도 병원 문턱에도 못간 채 신음하는 일꾼들이 있었다.

일행은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정리해고를 일삼고 있는 유명 악기제조사 콜트(Cort) 사업장으로. 그곳에는 1200억 자산가가 단 한 해 적자를 이유로 수십년간 현장에서 청춘을 바친 노동자를 정리해고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사측은 또, 교묘하게 정리해고자 예고를 하면서 조합원들을 분리시키는 공작을 벌이고 있다. 생각치도 못한 사이에 벌어지는 틈 속에서 한쪽은 안도의 한숨을, 또 한쪽은 생계위협을 느끼며 번지는 갈등을 숨죽인 채 바라보며 고통을 느끼고 있다.

사측의 부당한 강제해고 처사에 맞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조 콜트지회, 이들은 매일 출근선전전을 벌인다. 지난 2월1일부터 건물밖에 농성텐트를 세웠다. 지금 이들은 절박하다. 현장대장정단 일행이 금속노조 콜트지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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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대장정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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