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FTA 분신 허세욱 조합원 '무조건 살려라'

4일 오후 4시47분 현재 수술이 진행 중이다.
이제 허세욱 조합원이 살 수 있게 되는 걸까?

[사진1]택시운행이라는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말없이 투쟁현장을 지켰던 50대의 한 노동자의 몸이 불꽃이 됐다. '한미FTA폐기, 굴욕 졸속 한미FTA협상 중단...민주노총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허세욱 씨가 목숨을 내놓기 바로 전 작성한 유서 첫 머리와 끝줄에 쓴 그의 심경이다.

1일 오후 3시55분경, '사실상 협상타결' 분위기 속에 한미FTA협상 고위급 회담이 열리고 있던 서울 한남동 하얏트 호텔 앞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민주노총 전국민주택시연맹 한독운수분회 소속 허세욱 씨가 1.5리터 생수병에 담아 온 신나를 뒤집어 쓴 채 몸에 불을 당겼다.

한미에프티에이 협상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경찰의 폭력적 차단으로 몸싸움까지 빚어지면서 옥신각신하던 그 시각, 기자회견 행렬 뒷 쪽에서 50대의 한 노동자가 4천만 민중의 삶을 파탄내는 미국 주도의 한미에프티에이 폐지를 외치며 목숨을 내놨다.

몸에 불이 붙었다. 불에 타면서도 구호를 외친다. 무장한 전의경 병력이 급히 소화기분말을 뿌린다. 불에 타고 그을린 그의 몸은 하얀 분말로 뒤덮혔고 연기가 피어오른다. 얼굴과 하체, 등, 손가락 부분이 완전히 탔다. 응급수송차량이 도착했다. 차에 실려지는 그 순간에도 허씨는 숨을 몰아쉬며 "한미에프티에이 협상중단, 노무현 사과"를 나지막이 외치고 있었다.

민주노총 현장속보를 비롯해 인터넷언론사들, 신문방송사들이 허 조합원 분신 사실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불붙은 몸을 촬영한 사진, 엠블런스에 실리기 전 불에 탄 참혹한 모습이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용산 중대병원으로 후송돼 일차 응급치료를 받은 허세욱 조합원이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됐다.

바로 그 시각 한미에프티에이협상 고위급회담은 사실상 타결을 현실화했고 청와대는 실시간으로 협상에 개입해 타결을 기정사실화 한다. 자본을 향한 포악한 독재는 끊임없이 민중의 목숨을 요구했다. 노무현 정권 들어 22명이 경찰폭력과 분신 등으로 목숨을 잃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저녁 7시부터 한강성심병원 주차장 쪽에 한미FTA협상을 규탄하고 허세욱 조합원 쾌유를 기원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민주노동당 당원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과 참여연대 회원 등이 한 자리에 모여 허세욱 조합원 상태에 귀를 기울이며 현장 철야농성을 결정한다.

"전신 3도 화상에 전체 화상 68%, 사망확률 7-80%"라는 의사 브리핑 소식이 전해졌다.

민주노총과 범대위 등은 즉각 공동 또는 각 단위별로 비상대책회의를 개최해 허세욱대책위를 설치하는 동시에 즉각 구명운동에 돌입했다. 허세욱 조합원이 회원으로 활동했던 단체들이 모여 공동대책위를 구성하고 모금운동을 비롯한 한미에프티에이 전면무효화 투쟁 등을 결정한다.

제주도에서 민주노총 2007년 현장대정정 2차 일정에 돌입할 순간이었던 이석행 위원장이 일정을 유보하고 상경해 허씨 분신에 따른 대책과 한미에프티에이 전면무효 투쟁 계획 수립을 위한 비상회의를 주제한다.

또 민주노총은 민주노총 중상상근 간부들 중심으로 2일부터 매일 낮 12시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한미FTA무효, 허세욱 조합원 쾌유기원 집회>를 열기로 결정한다.

이석행 위원장은 집회 등에서 허씨의 분신을 보면서 "미치겠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며 "민주노총이 특단의 대책을 수립하고 독자적 투쟁계획을 마련해 한미에프티에이를 막아내겠다"며 분노에 찬 의지를 천명한다.

초조함과 분노로 얼룩진 시간들이 병원 현장과 서울 세종로를 달구고 있다. 양쪽에서 한미에프티에이 협상강행과 일방타결에 저항하며 허세욱동지 조속 회복을 염원하는 촛불집회가 시작됐다. 민중의 저항이 촛불을 따라 일렁 거린다.

허씨 분신 3일째인 4월3일, 낮 면회시간에 맞춰 한상렬 목사 등이 병원을 찾았다. 가족들이 허세욱 조합원에 대한 수술을 거부한다는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54세에 이르도록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홀로 살면서 사회이슈에 대한 걱정과 근심으로 현장 실천운동을 벌였던 허 조합원이다, 9남매 중 5째인 허 조합원은 특별한 날을 빼고는 가족 친지들과 자주 내왕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가족들은 그런 허씨에 대해 원망과 눈물을 숨기지 않았다. "아주버니의 뜻(허세욱 조합원이 분신에 앞서 쓴 글)을 따르겠습니다."

"만일 수술을 하지 않을 경우 괴사된 피부가 썩어 들어가고 결국 장기 기능에까지 악영향을 미쳐 생사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는 의사 소견이 등장했다. 허세욱대책위는 최대한 가족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는 한편,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허세욱 조합원을 살려낸다는 각오아래 비상방침을 결정한다.

3일 오후 6시30분 한강성심병원 신관 2층 중환자실, 이곳에 오종렬 한미에프티에이저지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소위 '운동권 어르신'들이 가족을 직접 만나 허씨를 살려야 한다며 설득을 벌인다.

3일 저녁 8시, 한강성심병원 1층 로비 한구석에서 민주노총 이용식 사무총장, 민주노동당 신장식 민생특위 집행위원장, 참여연대 최인숙 간사, 평통사 김종일 사무처장, 운수노조 택시본부 구수영 본부장 등이 즉각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허세욱 조합원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 모든 경로를 통해 가족과 병원을 설득하거나 압박해 반드시 수술을 실시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갖고 민주택시연맹 소속 조합원들이 한강성심병원 병원장 사무실을 기습 점거한다.

또 일부는 허세욱씨 주치의인 김종현 한강성심병원 화상센터 소장을 직접 만나 수술을 종용하기 위해 연락을 취하는 한편 가족에게도 끝까지 설득작업을 벌인다. 이날 병원장과 주치의는 만날 수 없었다. 가족들 역시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용식 총연맹 사무총장이 얼굴을 붉히며 소리친다. "이래저래 방법은 없습니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관련 소식 등을 언론에 알려 버립시다." 하지만 다음 날 오후 1시까지는 최대한 가족을 자극하지 않고 설득한다는 의견이 대두됐고 이런 사실은 아주 조심스럽게 다음 날까지 '키핑' 된다.

3일, <노동과세계> 취재진은 수술거부 등에 따른 이후 대책과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문제를 조사해 대책위에 전달했다. 특히 유기치사죄와 관련된 판례를 찾아 현장대책위에게 알린다.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는 허세욱 조합원을 살리기 위해 모든 노력들이 경주되고 있었다.

4일을 넘기면 허씨 생사를 장담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를 것이라는 의사 소견 앞에서 그 누구도 4일을 넘기지 않을 태세로 밤을 맞았다. 초조한 시간이 이어졌고 모두들 입술이 타들어 간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4일 아침 9시, 민주노총 발행 전국신문 <노동과세계> 취재진은 병원 로비에 취재거점을 마련하고 우선 김종현 주치의 위치를 수배했다. 그와 전화통화가 이뤄졌다. "조용한 곳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2층 중환자실 대기실로 올라 오세오. 이걸 끝으로 아무도 안 만날 겁니다" 아침 10시 한강성심병원 2층 중환자실 대기실에서 <단독인터뷰>가 이뤄졌다.

"환자를 살려도 손가락 일부를 절단해야 하고 오랫동안 치료도 해야 합니다. 정상인으로 되돌아오지는 못할 상황인데 가족들은 뒷감당에 상당한 부담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을 설득하시면 수술동의도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취재진은 즉각 이 사실을 정리해 취재거점 옆에 대기하고 있던 신장식 민주노동당 민생특위 집행위원장에게 전달했고, 신 위원장은 이후 낮 12시경 허씨 주치의 소견을 바탕으로 환자상태와 수술집행의 중요성 등을 정리해 기자 브리핑을 실시한다.

그 시각,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민주택시연맹, 평통사, 참여연대 등은 주치의 단독인터뷰에서 드러난 사실을 보고 받으면서 "허씨 수술에 따른 모든 책임을 진다"는 내용의 <각서>를 작성해 가족과 협의에 들어간다.

수술 예정시각이었던 오후 1시가 가까워오자 한강성심병원 1층 로비에 진을 치고 있던 단체성원들과 기자들 모두 수술집행 여부에 관심을 집중시킨 채 초조하게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노에 찬 긴 침묵은 무뚝뚝하게 서로의 얼굴 표정을 확인하는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오후 1시46분 민주노총 <노동과세계> 취재진이 병원현장에 나와 수술여부를 놓고 대기 중이던 KBS 보도본부 사회팀으로부터 "수술한다"라는 소식을 현장에서 듣는다. 취재진은 즉시 참여연대 간사에게 수술재개 사실 확인을 요청한다. 그러나 그 시각 "아니다. 아직 수술을 결정하지 않았다. 논의 중이다"는 답신이 들려왔다.

취재진은 현장에 있던 민중의소리 기자로부터 "주치의가 병원장을 만나기 위해 올라갔다"는 말을 접수했다. 현장 취재진은 김종현 주치의에게 수술시행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수술합니다." 공식적으로 수술집행 소식이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이 사실은 급속히 로비에 있던 단체 성원들에게 공유됐고 모두는 일제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 소식은 곧 민주노총 홈페이지 메인화면을 통해 <허세욱 조합원, 한 고비 넘기나>라는 헤드타이틀과 함께 속보로 보도됐다. "이제 허세욱 조합원이 살 수 있게 되는 걸까".

운수노조 택시본부 구수영 본부장이 병원현장에 상주하는 <노동과세계> 기자들을 찾았다.

구 본부장은 "그동안 분신하셨던 분들을 봤었는데 대개 입원 후 3일 안에 큰 위기가 오는데 허세욱 조합원은 그런 징후를 보이지 않았었고 이제 수술을 하게 돼 소생 확률이 높은 것 아니냐"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또 "주치의의 비상한 결단에 대해 감사한다, 보답하고 싶다"는 말도 꺼낸다.

"한미에프티에이 폐지, 졸속굴욕협상 중단"을 외치며 허씨가 분신한지 70여 시간, 수술집행 여부를 놓고 펼쳐진 25여 시간의 각본 없는 드라마에는 "허세욱 조합원을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는 비장한 결단들의 순간이 적혀있다. 가족들이 느끼는 고통과 애환이 스며있고 그 앞에서 "허동지를 살려야 한다"며 수술을 거듭 요청하며 원망과 호소를 거듭하던 이들의 눈물이 스며있다.

"응급환자치료원칙에 따라 가족 동의가 없어도 수술에 들어갑니다. 수술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4일 오후 1시46분, 주치의와 병원 측은 수술집행을 결단했다. 4일 오후 2시부터 한강성심병원 본관 2층에서 대수술에 들어갔다. "이제 한 고비를 넘었다"는 안도의 분위기가 병원 로비를 휘감은 가운데 모두들 수술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소생을 염원하는 많은 이들이 허씨의 분신을 통해 4천만 민중의 모습을 엿봤을 것이다. 그를 살리는 길이 민중을 살리는 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도 없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국민의 참여정부를 주창했던 대통령 노무현은 한미FTA협상 타결의 축배를 들어 올리며 텔레비전을 통해 장밋빛 미래를 설명하고 있다. 그를 위시해 한미FTA협상과 타결을 주도했던 이들에게 이름 없는 택시기사인 한 민중의 분신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을까.

수술을 시작한지 2시간 30여 분이 흐르고 있다. 환자가족과 우리는 분신 전 허세욱 조합원의 수줍고 정겨운 얼굴을 다시 못 볼 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심장에 새겨진 허 조합원의 목숨 건 뜻과 꿈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수술이 성공리에 끝나기를 바라며 허세욱 조합원의 조속한 회복을 기원한다.

<노동과세계 특별취재팀/한강성심병원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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